허리 환자가 살 길은 그래도 운동 뿐
언니집으로 도망쳤어도 실은 알고 있었다. 어쨌든 답은 운동이라고. PT를 배울 때는 지지부진한 것 같았던 몸 컨디션이 안 간 지 한달이 넘어가니까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덩달아 부모님과의 불화 그래프도 고점을 향해 솟구쳤다.
처음 운동 센터를 알아봤을 때 보단 수월하게 정착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이미 한번 해봤으니까. 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가. 같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반품까지 한 물건을 2년 후에 고대로 사서 똑같이 반품하는 실수를 정기적으로 치르는 사람이다. 처음 운동을 다닌 6개월 전처럼 똑같이 필라테스 1회, PT 1회 맛보기수업을 신청했다. 이미 척추 분절 마디 하나하나를 분리시키는 필라테스랑은 상종 안하겠다고 다짐해놓고 말이다.
본가에서 언니집으로 차에 꾸겨진 채로 이동한 것 만으로 회복하는데 3주가 걸렸다. 필라테스를 한번 수업도 긴장될 수 밖에 없다. 통증을 경험한 사람들은 뇌의 장기 기억 시스템에 공포감이 새겨져있다. 이번에 자칫 잘못하면 또 몇 주를 앓아누워야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깜빡하고 본가에서 안 챙겨온 패딩 대신 언니 옷을 빌려 입고 나선다. 항상 바깥을 나서는 기분은 맨발로 밖을 걸어다니는 기분이다. 불안하고 불안정하다. 이미 걸어서 10분을 넘어가는 곳은 제외했다. 버스 한 정거장만 가는데 1200원? 지금 가성비를 따질 때가 아니다. 얼른 버스에 올라선다.
지도 어플로 확인한대로 3분 거리를 걸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했다. 화이트 톤에, 노란 조명 인테리어가 딱 요즘 느낌 필라테스 센터였다. 때는 한겨울, 약해진 면역력를 채우려 빈틈없이 둘러맨 나의 방어구를 하나 둘 풀어내자 오한이 밀려왔다. 이 의자에 앉으면 아프지 않을까, 인바디 재느라 서 있으면 안 좋아지지 않을까. 긴장감을 떨치지 못한 채 몸 상태를 확인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그리고 본격적인 수업 전, 양말을 벗으니 더 몸이 떨려온다. 호흡을 배우며 한기를 떨쳐내려 노력했다. 갈비뼈를 모든 방향으로 부풀렸다고 배꼽을 쏙 조여주고.
‘생각보다 잘하시는데요?’
라는 말에 으쓱해지며 살짝 마음이 풀어졌다. ‘요즘 내가 명상으로 호흡훈련을 엄청 하는데’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 마음을 비집고 갖가지 기구들이 등장한다. 반 잘린 공 위에서 엎드려 호흡도 하고 종아리를 기구 위에 올려서 햄스트링도 늘리면서 겉으로 웃는 얼굴과 속으로 초조한 마음이 왔다갔다 정신이 없었다.
‘이거 분명 아플 것 같은데‘
몇번 신호가 와서 동작을 바꾸긴 했지만 여전히 맘이 놓이질 않는다. 그리고 대망의 폼롤러가 등장했다.
”여기에 위에 누워보세요. 그리고 허리를 최대한 붙이려고 노력해보면서 호흡을 하시고…“
컷. 웃는 연기는 여기서 중단. 무언가 날개죽지에서부터 얼굴까지 확 달아오른다. 아직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목소리가 쭈뼛쭈뼛한다. ‘아파서 안될 것 같아요’ 라고 말하고 내려오니 이미 손이 시렵다. 어디가 어떻게 아프냐, 이것 저것 물어보시고는 임시 처방으로 팔을 벌린 채로 손 끝을 폈다 접었다 하는 동작을 알려주셨다. 실은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그렇게 2주를 또 앓아누웠다. 시림, 작열감이 없어지길 기대하면서. 조금만 걸어도 그때의 아픈 감각이 살아날 때마다 짜증이 벌컥 난다.
인간은 실수를 반복하는 동물이라고는 안 하겠다. 그보다는 망각하는 동물이다. 정해진 패턴을 그대로 이어갈 뿐이고, 다만 통증도 잊어버려서 그대로 할 뿐인. 물론 망각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공포감으로 위축된 근육이 풀리기 위해선 다시 까먹고 몸을 움직이는 수 밖에 없다. 물론 2주 전 통증을 금붕어처럼 그새 까먹진 않았고, 이대로 다시 운동을 놔버렸다간 정말 답이 없을 것 같아서 다시 온 동네 PT 센터에 전화를 돌렸다. 그렇게 몇 번의 전화와 방문 상담이 이어지고, 한 곳으로 향했다.
이전 필라테스 센터를 떠올리면 여긴 정확히 그 반대편 끝 쪽에 있다. 복싱장이 떠오르는 빨강 검정 매트가 깔려있고, 센터 정면 가장 위쪽에 궁서체로 적힌 4글자의 압박.
하면된다
저절로 마이클 잭슨 문워크가 되려하는 발걸음을 다시 고쳐매고 문을 열었다. 관장님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PT 선생님이 등장했다.
자신이 10회만으로 통증을 다 없애줄 수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분들이 의외로 많다고. 근육이 너무 오랫동안 힘을 써보지 못해서 조금만 움직여도 통증으로 느껴지는 경우들. 그런 분들이 운동하고 정말 많이 통증이 나아졌다고들 말한다고. 나도 의심하고 있던 부분을 짚어주니 마음이 동했다.
그리고 체험 수업시간. 긴장했던 것과 달리 시작은 마사지 침대였다. 누워보라고 하신다. 처음엔 ‘마사지 좋지’로 시작했다가 점점 ‘언제까지 하는 거지 이거?’하는 생각이 들 때쯤 ‘오늘은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들렸다. 얼굴엔 빨갛게 마사지 침대 구멍 자국이 가시지 않은 채로 ‘나 운동하러 왔는데...’하는 물음표 떠올렸지만 어영부영 집으로 돌아왔다.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은 상쾌했다. 지겹게 온몸을 자극하는 저린 감각이 사라졌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다.
그렇게 운동을 다니기 시작했다. 두번째 날은 다행히도 마사지 침대에서 선생님 손을 다리로 밀어내는 저항 운동을 하긴 했고, 엉덩이 근육 운동도 함께 했다. 그리고 어느새 기구까지. 진도는 훅훅 나갔지만 내 몸 역시 척척 적응했다. 물론 작열감, 통증이 있는 날도 있었지만 ‘상쾌’한 느낌. 몸을 움직인 뻐근한 감각이 돌아왔다. 엔돌핀이 솟구쳐서 운동을 다녀와선 언니에게 어땠는지 우다다 쏟아내곤 했다.
본가에서 PT를 다닐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정말 운동을 하고난 그 당일에는 통증이 없어져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일 센터를 다닐 수 있었다. 휴무일인 일요일 빼고 항상 10시 반에 와서 몸이 그 시간을 움직이는 시간으로 새겨놓게 하라고. 내 몸이 ‘움직임’이라는 뉴노멀에 적응할 수 있게 하는 일상 패턴을 만들어주셨다. 내가 3회 수업을 할 동안 운동을 간 횟수는 7번을 갔으니 운동량의 차원이 달랐다
느낌이 좋았다. 몸을 움직이고 보니 모든 게 다 잘 되는 기분이었다. 우리의 두뇌는 사실 움직이기 위해 진화되었다고 한다. 감각, 기억,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 모두 움직이는데 도움이 되는 정보라고 한다. 결국 움직이면 인지능력과 정서 능력이 향상된다는 뜻이다.
어쩐지 그 시기에 새롭게 해나가는 게 많았다. 우선 언니집에 온 다음날부터 써내려간 일일 통증 기록표, 또 언니가 알려준 김주환 교수님의 명상 영상. 그리고 앉아있는 시간을 줄여보기, 배꼽 엘리베이터 운동. 아무것도 안 할 때는 하나라도 꼼짝하기 싫었지만, 하기 시작하니 여러 퍼즐들이 착착 맞물려 굴러가고 있었다. 고여있던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변함없는 인간이라도, 들어있는 공간이 달라지니 한개씩 변화의 틈이 생겼다. 그리고 언니의 머릿속에도 새로운 생각이 하나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