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아파 누워있으니 생겨버린 역류성 식도염
언니 집에서 훨씬 활동적이었지만 동시에 강박은 좀 더 심해졌다. 어쨌든 내가 땡깡부릴 수 있는 공간은 더 이상 없었다. 나는 이 집안에서 언제나 막내였으나, 이제는 나보다 25, 23살이나 어린 new 막내.. 말이 이상한가. 아무튼 가장 어린이 위치에 속하던 나는 자리를 뺏겼다. 어른이어야 했다. 안 그래도 이제 말을 재잘재잘하는 첫째 조카가 이모는 몇 살이냐고, 이제 어른이냐고, 무슨 학교 졸업했냐고 초등학교냐고 고등학교냐고 물어대는 통에. 애매한 내 위치를 머쓱하게 느끼고 있었다. 더 이상 우울하게 늘어져 있을 순 없었다.
항상 부모님 테두리 바깥에서는 누구보다 FM으로 살았다. 그래서 어린 시절 오빠는 나를 척척박사라고 놀려댔지만(잘난 '척'을 한다고) 어쩌면 정확하게 나를 파악한 말이었다. 강박적으로 남들 앞에서는 바른생활 사나이였다. 그래서 언니 집에서도 “내가 도와야지” “애들 먼저” 이런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분명 오늘은 몸도 아프고 애들의 울음소리를 방문 뒤로 밀어버리고 모른 척하고 싶은데 결국 몸을 끌고 거실로 나갔다. 애들한테 붙잡힌 언니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집안일을 찾아냈다. 그래봤자 떨어진 장난감 한 개 다시 정리함에 넣고 다시 앉기. 정도였다. 말 그대로 척척박사의 도와주는 '척'에 불과했다.
음식도 더 철저하게 가렸다. 실은 역류성 식도염이 생겼다. 병이 낫기는커녕 풀옵션을 향해 계속 업그레이드가 되고 있었다. 언니 집으로 도망쳐오기 직전에 밥 먹자마자 그대로 눕는 생활이었다. 자포자기 또는 오기로 위장을 내어주고 허리를 살려보겠다는 알 수 없는 결심이었다. 그리고 귤의 계절이 왔다. 따뜻한 방안에서 차가운 귤을 꿀떡 삼켰는데, 이상하다. 속이 아프기 시작했다. 산성을 위에 때려 붓고 내려가지도 못하게 그대로 누워있으니 안 쓰린 게 더 이상하겠다만 그 이후로 조금 맵거나, 신 음식은 다 가슴이 아파져 왔다. 하지만 또 다른 병을 키웠단 사실을 부모님께는 숨기기 위해 본가에선 아픈 음식도 억지로 먹곤 했다. 언니 집에 왔으니, 해방이라면 해방이었다. “윤이는 이거 싫어해” 하며 반찬 골라내는 조카 옆에서 나도 부산스럽게 반찬을 덜어냈다.
꽤 몸도 열심히 움직이고, 먹는 것도 조심하며, 또 아이들과 정신없이 지내고 있었지만 나를 꽉 조여 매주던 주변 사람들이 사라지면 순식간에 힘이 빠졌다. 어쩌다 혼자 집에 있는 날이 오면 또 눈물이 비직비직 났다. 벌써 12월이었다. 연말은 아픈 사람들에겐 존재만으로 괴로운 시기다.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고 새해를 맞이한다니. 한 해를 아프기만 하며 보냈고, 그렇다고 내년에 희망이 있기라도 한 지 가늠이 안 갔다. 언니네는 모두 총출동해서 조카 어린이집 친구들과 부모님이 함께하는 모임을 갔고, 나는 불 꺼진 휑뎅그렁한 집에서 거실 창에 비치는 간판 네온사인들만 바라봤다.
써브웨이, 치킨 연구소, 베트남 쌀국수, 공차…
내가 뭐 알프스산맥을 가고 싶어 울고 있는 거라면 말도 안 한다. 엎어지면 코앞인 저런 가게들도 못 가서 그렇게 서럽게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렇게 공차 로고만 10분을 쳐다보다가 결국 뛰쳐나갔다.
카페인이란 함정을 피했건만, 결국 신 맛 메뉴에 당첨되어서 테이크아웃 잔에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기분 좋았냐고? 기분이야 좋았지만 한순간의 감정을 불안하게나마 맛본 숙취는 끔찍했다. 다리를 부여잡으며 또 끙끙대고 있을 때쯤 기절해 버린 아이들을 안아 매고 언니와 형부가 들어왔다. 일탈은 끝났다.
어른 행세라는 변신이 풀리자, 곧 더 무시무시한 게 찾아왔다. 아기들은 어찌나 병균에 약한지. 그리고 나도 딱 그 아기들만큼의 면역력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됐다. 겨울 내내 아이들은 콧물을 항상 줄줄 흘려댔고 그 콧물에 달고 온 독감 바이러스는 내 몸을 너무나 손쉽게 점령했다. 물론 언니도 형부도 옮았지만 나만 연달아 두 번 걸렸다. 1번 독감이 방을 빼자마자 바로 2번이 이 몸을 차지하고 앉았다. 컹컹거리며 가슴을 울려대는 기침은 끝나지 않고 먹으면. 토하고, 먹으면 토하고, 열 때문에 머리는 팽팽 돌았다. 신맛, 매운맛은커녕 그 어떤 음식물도 장이 거부하기 시작했다. 미음, 죽을 지나 쌀밥을 먹게 되기까지 3주가 걸렸다. 그런데 또 배는 너무 고팠다. 괴롭기 그지없었다.
끔찍한 한 달을 보낸 후, 더 이상 이따위의 면역력으로 살 순 없겠다는 생각으로 등록한 필라테스 센터에서 인바디 검사지를 내줬다. 딱 10kg이 빠진 체중이 찍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