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엔 허리 아픈 이모도 환영이야

언니 집으로 도망쳐서 맛본 육아지옥

by 림보

으앙아아앙

어디선가 울리는 소리에 저절로 잠에서 깼다. 뭐야 화재경보기야 휴대폰 알림이야 뭐야. 현실과 꿈의 경계가 흐릿한 순간, 물싸대기같은 현실이 다시 한번 더 날 깨운다.


덜컹하는 문고리 돌아가는 소리, 촵촵촵촵 조그만 발바닥이 마룻바닥과 부딪히는 거침없는 소리. 이제 곧 시작된다. 하나, 둘, 셋


엄마아아아악

안아줘 안아줘 안아줘

흐어흐어흐어엉엉


엄마 뺏기 전쟁 발발이다.


Welcome to the hell


육아 전쟁에 들어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랬다. 도저히 본가에서는 허리 치료에 진전이 없는 나를 언니가 이곳으로 끌고 왔다. 리틀 언니와 형부가 있는 이곳. 그런데 내가 심상치 않은 곳에 발을 내딛였다는 느낌이 확 끼쳐왔다.


내가 바로 어제 저녁, 그러니까 불과 12시간 전에 했던 얘기가 뭔가.



언니야, 애기들이 왜이렇게 사랑스럽지 진짜?



물론 그러면서도 혹시 이 말을 취소하게 될 순간을 위해, 비상문을 열어뒀다.


“내가 아직 이틀밖에 같이 안 지내서 그런가?”


언니는 오묘하게 웃었다. 내가 지금 뭔 말을 해봐야 너는 모를 거야 하는 얼굴로 냉큼 대답했다.


“응. 이틀밖에 안 지나서 그래.”


너는 분명 그 말을 취소하게 될 거라고.



언니를 앞뒤로 붙잡고 우는 애기들을 보며 어제 그 말이 귓가에 어른거린다. 한바탕 울던 아이들이 진정되고 나면 언니가 새벽에 준비해 놓은 밥을 내가 아기들용 밥그릇에 퍼담는다. 밥을 먹으면서도 세상에 있는 모든 동물이 다 나와서 먹어주고 나야 식사 시간이 끝이 났다.


이 친구들에겐 모든 게 처음이다. 옷을 입는 방법을 몰랐던 때가 있었다는 사실을 근 30년 만에 알게 됐다.


”구멍에 머리를 넣어”

“구멍이 어딨써어~ 모르겠어~ 못 하겠어 못 하겠어”


땡깡을 부리며 널부러져버린 아이를 보면 화를 벌컥 내며 입혀주고 말아버리고 싶은 마음을 굴뚝같다.


마음을 가다듬고 내게 최면을 건다. 이 '옷'이라는 물건을 처음 본 인간이다 나는.. 그렇다면 구멍같은 건 없고 겹쳐져있는 두 천이 있을 뿐. 이걸 열어야 한다. 총동원한 나의 상상력과 씨름하니 드디어, 이 작은 인간이 해냈다.


엄마~~~를 부르며 달려가 티셔츠 입었어!!! 하고 자랑하는 조카를 보며, 어깨가 으쓱한다. 이게 다 누구 덕이냐 짜식.



이 닦기, 신발 신기, 잠바 입기, 가방 챙기기, 수많은 난관을 거쳐서 드디어 어린이집에 간다. 나도 드디어 의자에서 벗어나 배웅한다. 하지만 빠르게 다시 그 의자로 돌아와야 한다. 기능을 잃은 다리가, 조금만 서 있어도 배터리가 다 됐다고 난리가 나기에.


한바탕 폭풍이 몰아치고 남은 잔해가 식탁에 널려있다. 바라만 볼 수 없기에 삐걱거리는 몸을 일으켜본다. 내 모든 근육은 한번 휘두르고 나면 쿨타임이 찰 때까지 다시 의자에 앉아 충전을 시켜야만 하는 극악의 가성비가 됐다. 식탁 한번 닦고 앉고, * 10번. 반찬통 한번 냉장고에 넣고 앉고 *3번. 식탁 밑에도 난장판이다. 닦고 앉고 5번 … 생략


겨우 할 수 있는 만큼만 설거지하고 앉아 있는다.


두 아이 모두 등원을 시킨 언니가 온다. 언니는 이제 한 술 뜬다. 언니는 내 가장 오래된 친구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있었던 친구. 언니가 오고 나서도 나의 집안일 하기는 계속 이런 식이었다. 내 거점은 화장실 변기와 식탁 의자, 그 두 의자에서 충전을 해가면서 오갔다.


“근데 너 그거 좀 이상하지 않아? 한번 앉으면 다시 괜찮아진다는 게”

심리적인 거 아니야?


“아이 심리적인 거 아니라니까. 진짜 아픈데 어떡하냐고오”


짜증을 내려다가 웃음이 난다. 언니가 먼저 킥킥대니까 나도 저절로 얼굴에 힘이 풀린다.


“그러고 보면 니가 좀 강박이 있는 것 같다. 한번 움직이고 다시 앉고 이러는 게 강박 같은데”

“응 나 좀 그런 강박이 있어. 근데 이건 내가 수~많은 실험을 통해 안 아플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건데"


내 몸, 허리, 그리고 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언니는 아이들 양육에 대해 이야기하다 언니 얘기를 한다. 또 우리는 서로 각자 어렸을 때 얘기로 빠진다. 요즘 어떤 걸 느끼고 어떤 걸 알게 됐는지.


아 이런 시간이 되게 고팠다. 내 생각을 얘기하고, 상대 얘기를 들어주고.



주말이면 형부도 같이 저녁을 먹는다. 다 같이 둘러앉아서. 배달의 민족 주문! 언니도 쉬고, 아이들도 좋아하는 시간.


옆에 앉은 조카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이모랑 같이 사니까 좋다.”

나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이 새어 나오면서 물어본다. 왜?

엄...우리가 엄... 다 같이 밥 먹으니까 좋아. 엄마랑 아빠랑 엄... 윤이랑 이모랑 연이랑 이렇게. 다 같이


뭐랄까. 떠듬떠듬 생각하면서 말을 하는 5살 아이가 이런 문장을 뱉어낼 때 너무 놀랍다. 그래서 더 감동이고 행복감에 마음이 붕 뜬다.


정말 이런 이모도 좋아?

일어나서 안아주지도 못하고, 옷도 입혀주기 힘들어하고, 같이 뛰어다니면서 놀아주지도 못하는데,

이런 이모라도 괜찮아?


또 애들의 이상한 행동, 말투에 깔깔대며 웃었다가 ‘치카’해야할 시간이라고 으름장도 냈다가 그렇게 하루가 또 마무리됐다.



그러니까 나는 일이 필요했다. 일을 하며 받는 피로감, 같은 동료와 대화, 나로 인해 성장하는 아이를 보며 느끼는 보람,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섞이며 와하학 터트리는 웃음.


나는 그동안 어디에 있었을까?

난 집 안의 냉장고처럼, 쇼파처럼 존재하기만 했다. 또는 도서관, 스터디 카페의 숨막히는 공기 속에서 내 근육은 움직이지 못하고 수명을 다해갔다. 누군가를 위해 움직이고, 사람에게서 느끼거나, 웃지 못했다.


본가로 돌아온 이상, 부모님 말고 어떤 인간관계도 없었다. 그런데 경상도인에게 부모님과의 관계? 그냥 밥 먹었나, 밥 먹어라. 로 끝낼 수 있다. 가사일, 회사로 부터 은퇴하신 엄마 아빠의 시선은 내 뒤의 티비를 향했고, 그 티비에선 정치, 수영, 탁구, 탈북민, 여행 유튜브가 돌아가며 틀어졌다.


그러니까, 고립지옥육아지옥 중에 고르라면, 난 기꺼이 이 소란스러움으로 들어올거다. 불편하고 부대끼는 이곳. 여기선 움직일 수 있었다. 함께하는 언니가 있었고. 보람이 있었고, 웃었다.


인생은 마음의 상태라고들 한다. 사실 육아지옥에서 내 마음 상태는 천국이었으니, Welcome to the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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