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I가 밝혀내지 못한 허리 통증

내 허리통증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by 림보

안 믿긴다. 사람마다 통증을 느끼는 정도가 다르다는 건 뭐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생전 허리 한번 아파본 적 없는 사람도 MRI 검사를 하면 반 이상이 디스크에 이상소견이 나온다고? 심지어, 아프기 전후 MRI 결과가 다른 경우가 고작 4%에 불과하다니.


하지만 난 아닐 거다. 이렇게 한번 잘못 걸으면 눈물 나게 아픈데 고작 남들보다 근육이 없어서라거나 예민해서 일리가 없다. 정선근 교수님과 이경석 원장님 말이니 믿어는 보겠지만, 난 디스크든 뭐든 터져야 맞다.


다들 내게 그럴 리가 없단다. 내가 아프지 않을 이유는 백 가지였다. 그래, 아픈 게 이상하긴 했다. 난 무려 6개월을 허리에 좋다는 건 착실하게 수행 중이었으니까. 눕는 게 좋다면 욕창이 생길 정도로 누웠고걷는 게 좋다면 매일 밥 먹고 하루 3번씩. 한 번도 빠짐없이 걸었다. 한의사 언니가 보내주는 한약도 삼시세끼 꼬박꼬박. 수영이 좋다니, 바로 아침 7시에 달려가 등록했다. 수영 안가는 나머지 3일은 병원을 갔다. 부항, 봉침, 추나 점심 메뉴도 아닌데 오늘은 뭘 할지 골라 가며 치료했다.


그럼에도 얼굴만 보고 접수해주는 병원만 늘어갔다.


이때부터 점점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정선근 교수님과 이경석 원장님의 말들을. 유튜브 홈 화면이 온통 허리 영상으로 도배되고 나서야 찾아낸 믿을만한 허리전문가들이었다.


나였다, 별거 아닌 상처에도 아프다고 소리지르는 사람. 어쩌면 이미 염증은 사라졌는데도 계속 몸이 땡깡 부리는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내가 뭘 더 해야할 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허리환자에게 남은 선택지라고 별다를 게 없다.


동네 정형외과에서 디스크라는 진단을 받은 지 6개월 만이었다.




그렇게 고심했던 MRI 마저 내가 안 아파야 한다는 선고를 내렸다.


“너무 깨끗한데요. 아이고 할머니 할아버지들 척추보다 보니까 어우 깨끗하다.

4번 5번이 조금 튀어나오긴 했네요.

도수치료를 받으시고 약 드릴게요”


겨우 이 말을 듣자고 70만 원을 쓴 게 아닌데.


진료실 문을 닫고 돌아섰다. 엄마는 한시름 놓인다며 언니에게 신나서 전화를 걸었지만 내 귀에선 엄마 목소리가 윙윙댔다. 걷고는 있는데 발이 딛고 있는 바닥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 발밑만 저 아래로 떨어져 있는 기분이었다. 병원의 눈부실 정도로 흰 형광등이 어질어질했다.


진짜 디스크가 없다고?

그렇다면 난 뭐 때문에 아픈 거지?


“문제가 없다”는 말이 마치 “당신 문제 덩어리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문제가 없는데도 이렇게 아픈 게 문제가 아닐 리 없지 않은가. 물론 문제가 있다고 해도 문제였겠지만 말이다.


결국 맞았다. MRI는 통증의 원인은 밝혀내지 못했다. 애초에 MRI로 보이는 디스크가 통증과 관계가 없다면 MRI를 찍는 의미가 있었을까. 디스크의 원인은 있어도 통증의 원인은 없었다.




그럼에도 검사는 계속됐다. 부모님은 다른 병이라도 있으니까 아픈 거 아니겠냐며 종합병원에 가보라며 성화셨다. MRI의 결과를 듣고 치료 슬럼프 빠진 난 공휴일에 회사 나온 직장인처럼 영혼없이 병원을 돌아다녔다.


신경과의 근전도 검사, 류머티즘 내과의 강직성 척추염 새로운 병을 찾아 진료실을 다녔다. '또 이상 없다 하겠지'라며 부루퉁해 있다가도 예상했던 답을 들으면 왠지 눈물이 나려 그랬다. 내내 사춘기 소녀처럼 굴었다.


아빠는 자꾸만 알 수 없는 병이 나오는 유튜브 영상을 보냈고, 재활의학과에선 이번엔 골반 MRI를 찍어보라고 했다. 그것도 아니면


“기분 나쁘게 듣지 마세요.

정신과적인 문제일 수 있어요.”




진짜일까 가짜일까. 허리가 아플 동안 가장 의심을 많이 했던 건 나 스스로였다. 어떤 날은 이 통증이 가짜라는 게 이해가 가다가도 어떤 날은 가짜일 리 없었다. MRI 찍을 시기에만 디스크가 잠깐 흡수된 거겠지 싶었다.

아니다. "니가 자꾸 아프다고 생각을 하니까 아픈 거지." 언니가 말할 땐, 아니라고 박박 우기다가 혼자 있을 땐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떠올랐다.



검사되지 않는 통증은 환촉같았다. 이 통증이 가짜인 이유가 백 가지라면 진짜인 이유는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내가 느낀다. 내가 아프다.


환각이나 환청은 외부감각보다 내부에서 자신이 만들어낸 감각을 더 강렬하게 받아들일 때 생겨난다. 뇌의 신경신호가 잘못 반응하는 것이다. 나의 감각을 재배치할 필요가 있었다.


그떄쯤 다시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 친구가 PT 받고 허리디스크가 좋아졌다는데 함 찾아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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