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MRI 안 찍고 싶어요

허리가 아프면 MRI를 꼭 찍어야 할까?

by 림보

MRI를 찍는다는 건 나의 패배를 의미했다. 그러니까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아버지와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다. 문득 침대를 보고 분노가 폭발해버렸던 그날 이후, 소강된 줄 알았던 아버지와의 싸움은 드러나지만 않았을 뿐이었다. 여전히 내 마음 속 불만은 꽁꽁 숨겨두고 대신, 증명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내 방식대로 완치해내면, 아버지를 이기는거라고. “내가 맞았죠?” 그 한마디를 하고 싶었다.


아무리 봐도 MRI를 찍고 수술 할 필요가 없는 병이었다. 디스크는 자연치유된다. 관절 질환 카페 첫 공지에 적혀있는 문장이다. 조금이라도 돈과 시간 낭비 없이 슬기롭게 병을 치료하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디스크가 더 이상 터지지 않게 누워서 안정을 취해주고, 4~6주가 지나면 서서히 증상이 호전된다. 디스크 걸렸다고 하면 지인들도 추천해줄 정도로 유명한, 정선근 교수님 역시도 그랬다. 물론 하반신에 마비 증상이 일어날 정도로 심하다면 곧장 병원을 가서 수술하는 게 맞다. 다행히 내 다리는 아플 뿐이지, 아직 잘 움직였다.


물론, 수술 단 한번으로 순식간에 통증이 사라진다면 나도 기꺼이 마음을 먹겠다. 그런데 수술은 마법도 아니었고, 그럼에도 마법을 부린 사람에게나 줄 법한 돈이 들었다. (허리 삐끗한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병원가기'보다 '실비보험들기' 라고 누구라도 붙잡고 얘기하고 싶다.) 심지어 척추 유합술은 무려 40%나 재발 가능성이 있었다.


또, 수술 후에도 재활 운동을 해야 했다. 지금부터 재활 운동을 하면서 낫는 것과 500만원, 1000만원 어치 수술 후에 지난한 재활 운동 기간을 거쳐야 하는 것 중 전자를 택하는 게 당연했다. 추운 수술실에서 깨어나서 통증을 견디면서 재활을 하고. 더 좋아질지 아닐지 불안한 마음을 견디며 사는 게 더 못할 짓 같았다.




아버지는 물론 내 생각을 일정 부분 이해한다고 했다. 정말 MRI와 수술이 내게 의미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왜 그렇게 시간을 죽이는 짓을 하냐고 하셨다.


매듭이 손으로 안풀리면 가위로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라이터로 불 붙여봐야 하는 게 아니냐.

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아버지 눈엔 내가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밤이 새도록 손으로만 매듭을 풀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도 여전히 내가 아버지께 할 수 있는 말은 “시간을 조금만 더 주십시오” 였다.


매듭을 손으로 풀어볼 충분한 시간이 아직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내가 고이싸서 내밀었던 시간이란 카드 역시 처참하게 지고 돌아왔다. 이론상으로는 완벽한데 현실에서는 들어먹질 않았다. 도저히 낫지 않았다. 치료 슬럼프에, 한의원가는 것 마저 그만둬버린 이상 고집을 부릴 수가 없었다. 나의 패배를 인정해야했다.


MRI 찍자고 말씀드렸다. 그러면서도 떨렸다. 정말 내가 수술을 해야하는 상황이면 어떡하지? 언니는 그렇지는 않을거라며 나를 다독였지만 무서웠다. 동시에 이것만 찍으면 아빠에게 날 압박할 수 있는 카드 역시 다 소진될거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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