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에 나를 맞추는 법은 없다
잘 참는 게 장기가 되려면 내 직업이 스쿠버 다이버라면 말이 된다. 심지어 스쿠버 다이버에겐 산소통이라도 주어진다. 난 산소통도 없이 해저 몇 미터로 들어간 프리 다이버 수준이었다.
하고 싶은 말도 할까 말까 망설이다 하지 않았고, 하기 싫은 것도 울면서 꾸역꾸역했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잠도 참다가 이젠 자고 싶을 때 잠이 안 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의대생의 침술 실험체 경력 4년, 20년 동안 생리통약 섭취 경험 10번 이하, 바깥으로 휜 갈고리 뿌리 사랑니를 인형 없이 발치한 경력 등이 있다.
그런데 이 새로운 한의원은 참기 경력에 도전을 걸어왔다. 내가 참기를 잘한다고 했지. 무통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건 아니기에.이곳 침은 정말 아팠다.
뼈가 침을 맞는 느낌이었다. 침수저로써 얘기해 보자면, 침 맞을 때 피하고 싶은 부위가 몇 군데 있다. 그 중 하나가 손가락, 발가락이다. 여긴 살이 없다. 침이 들어가서 앉아 있을 공간이 없다. 어쩌다 손가락 발가락을 문틈에 찧었을 때 그 끔찍한 통증을 기억하시는지?
‘좀 아파요.’라는 말과 함께 선생님의 침이 내 손 쪽에 다가오기 시작할 때 유체이탈을 시도한다. 이 손은 내 손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손을 빼버릴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참는 값을 했다. 신기했다. 엉덩이나 꼬리뼈가 아픈 게 침 맞은 날은 사라졌다. 물론 다음 날이 되면 조금 다시 아파졌지만 한결 편안했다.
어느날부터 조금만 잘못 움직이면 금세 아파졌다. 조금만 얼룩이 생겨도 티가 금세나는 새하얀 티셔츠가 된 기분이었다.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병원에서 침을 맞고 누워있다가 찌뿌둥해서 팔을 잠깐 들면, 몸이 화르르 불탔다. 집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관에 들어간 것 마냥 꼼짝 안 하고 누워있어야 했다. 점점 신경은 곤두섰고 온몸은 긴장했다. 휴대전화 메모장에는 해서 안 되는 자세나, 행동이 159개는 됐다. 강박이 생기고 나를 계속 탓할 뿐이었다
사실 난 잘 참지 못했다. 내가 느껴온 불편함, 슬픔, 아픔은 참아지지 않고 언젠간 터져 나왔다. 참고 참다가 물 밖에 나오는 순간 그 숨이 한꺼번에 팍 터지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나는 모든 걸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깎아가며 치료하려 했다. 치료에 나를 맞추려고 욱여넣었다. 한의원에선 거의 울 지경이 되던 때가 많았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됐다. 하지만 내 숨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었을까? 그렇게 참아서 얻는 게 뭐란 말인가.
너의 모든 상황을 한의사 선생님께 털어놔보라는 언니의 말. 그랬더니, 허무하게도 꼼짝도 안 하려고 하는 건 (당연히) 몸에 안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안 아픈 사람도 그렇게 긴장하고 있으면 아픈데, 더구나 환자가 그러면 병이 안 낫는 게 당연한 수순이라고.
몇 주 있다가 난 치료 파업을 했다. 쉬고 싶었다. 아무것도 안 하면서 뭘 쉬냐고 하겠지만. 내 몸은 치료를 참아내느라 탈진해 버렸다. 번아웃이었다. 그제야 몸이 편안했다. 그 아픈 걸 왜 그렇게 견뎠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