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무너진다는 건, 날 버티게 한 건

허리 환자도 몰두할 게 필요하다

by 림보

친구가 오랜만에 고향으로 내려왔다. 온 김에 볼 수 있냐는 메세지.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머리에 떠오른다. 그래도 몇 개월간 내 행동반경에 없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생각만으로도 도파민이 막 샘솟았다. 침체한 하루들에서 날 구원해 줄 사람이 나타났는데!


우선 의자가 있는 곳, 버스로 30분 안쪽, 버스 정류장에서 도보 10분을 넘지 않는 곳, 카페까진 어렵고 밥만 먹을 수 있다고 부랴부랴 설명을 붙여 보냈다.


그리고 친구의 답장이 왔다.


내 생각엔 우리 다음에 보는 게 좋을 것 같음. 너 좀 더 낫고 나서! 나야 괜찮은데 너가 안 좋아질까 봐…. 우리가 앞으로 또 안 볼 것도 아니고 오늘만 날인 것도 아니니까~


맞다. 친구 말이 다 맞다. 솔직히 나도 무리한 걸 인정한다.


그런데도 마음이 무너졌다. 그제야 내 상황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고향 온 친구 얼굴 보기도 힘든 사람. 사람들과 어울려 밥 먹고 카페가고 대화하고 놀 수 없는 상태.


병의 기준은 통증이 일상생활을 방해하는지다. 그러니까 인간이 하는 기본적인 행위는 어느 정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약간의 보너스가 없는 채로 간간이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끔찍스럽다.




그래도 하루는 어떻게든 채워야 내야 한다. 그때의 하루는 이랬다.

최대한 허리는 굽히지 않는다. 밥도 최대한 빨리 먹는다. 앉아 있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세수도 다리를 벌려서 세수하느라 끝나면 항상 옷이 흠뻑 젖어있다. 이중 세안을 할 땐 오래 서 있기 힘들어서 한 번 누워있다가 다시 시작한다.


신발은 서서 벗기 스킬 마스터. 무언가를 집을 때도 한 쪽 다리를 들어 발레한다. 삼시세끼 먹은 후 삼시 산책, 그 전날 걸은 수만큼 딱 한 걸음씩만 늘려보기가 나의 매뉴얼이다. 수영도 마찬가지. 그렇지 않으면 또 다리를 부여잡고 끙끙대야 하니까.


참 하루가 살얼음판 같았다. 통증 또는 무기력 그리고 외로움과 사투였다. 이런 일상을 버텨낼 수 있었던 건 콘텐츠 덕이다. 영화, 드라마, 예능, 라디오, 음악 그리고 덕질까지. 아니, 이런 도파민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고 해야 할까.


누워있으면 정말 시간이 안 간다. 부랴부랴 태블릿 침대 거치대를 구매했다. 처음엔 유튜브 판 극장 코미디인 메타 코미디 클럽과 엠지 세대 여자 연예인들의 여행 예능인 지구 오락실을 많이 봤다. 웃지 않던 시기에, 사람과 한마디도 하지 않던 시기에, 소리 내서 웃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영화는 애프터양, 그린북,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을 그만둔대, 펀치 드렁크 러브 이렇게 떠오른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누워서 생각하고 곱씹고, 섬망을 보듯 잔상이 아른거렸다. 힘든 건 사람들과 같이 영화 감상을 나누고 싶다는 것. 생각과 감정이 누워있는 내 몸 안에서 터져 나올 것 같아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제야 내가 얼마나 표현하길 원하는 사람인지 알았다. 난 사람들과 대화하길 힘들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얘기를 하고 싶은지. 결국 내가 찾아낸 방법은 녹음이었다.


1인 팟캐스트. 내가 출연자고 피디고, 나만 청취자인. 처음 몇 번은 영화 감상을 담아냈고, 허리 치료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담은 일기기도 했다. 지금도 그 녹음을 들어보면 그때의 감정이 담겨 있어 애틋하다.




결국 뭔가를 보는 행위는 목에 힘이 들어가고 무리를 줬다. 보는 것조차 뺏어간단 말이야? 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래도 내겐 아직 귀가 있다. 소리의 세계로 빠졌다. 책도 오디오북 30여 권을 섭렵했고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라디오 타임라인을 곧잘 따랐다.


어쩌면 행복한 시기라고 생각했다. 복에 겨운 시기다. 언니가 한의원에 가보면 허리가 아픈데도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고. 나는 지금 이렇게 누워서 좋아하는 노래도 듣고 경제적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감사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참 자족할 줄 모르는 게 사람인가 보다. 나는 내 상황대로 그 안에서 스트레스를 찾아서 받고 있었다. 비교하면 나는 참 한심한 생활을 한다, 싶었다.


그렇다고 뭔가를 하려면 아파지고, 겁이 나고 치료 기간이 늘어나는 것만 같고. 그럴 때마다 다시 도파민으로 도피.



좋아하는 걸 발견할 땐 생각지도 못한 힘이 난다. 한의원 가는 버스에서 찾게 된 ‘넌 아만다’라는 밴드. 너무 좋아서 희열에 찼던 기분. 우울할 때 같이 있어 줬던 신해경잠비노의 노래. 무엇보다 덕질을 하면 하루하루가 신난다. 아침에 일어나면 또 달라진 바 없는 몸 상태에 착잡한 기분 대신 좋아하는 가수의 콘텐츠를 보면 된다. 그리고 누워서 클립을 만들고 블로그도 쓰고 영상도 만들었다. 세상에. 그래서 더 아파지기도 했다.


무언가에 몰두하는 건 환자에게 필요한 일이다. 통증을 잊을 수도, 지금 상황을 바라보지 않게 해준다. 나를 싫어하거나 하루를 싫어하는 데 시간을 덜 쓸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건강까지 잊어버리기도 한다. 정신없이 영상을 만들다 보면 결국 손이 저리고 다리가 저려온다. 새벽에 하는 라이브 방송을 본다고 잠을 제대로 못 잤다.


너무 좋아하니까 지금 상황이 더 싫어졌다. 공연장을 가고 싶고, 영화를 보면 사람들이랑 얘기하고 싶고, 여행 라디오를 들으면 여행이 가고 싶어서 슬펐다. 물론 열심히 나아야겠다는 자극은 됐다. 하지만 치료는 대체 어떻게 열심히 하는 걸까? 몇 개월이 다 되어가도 아직도 감이 잡히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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