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불훼석도 범하지 못한 아름다움 / 동대사에 가거든 삼월당까지 오르시오
사진도 제대로 찍지 않았고, 내부에 들어가서 제대로 본 곳은 동대사 뿐이어서 한 번에 모두 기록한다.
벌써 2년이 흘렀다. 안정적으로 일을 구해 돈을 모으기 시작한 시점에 여자친구가 부모님을 모시고 일본에 오셨다. 그러다 부모님은 먼저 가시고, 여자친구와 또 열심히 오사카 시외로 여행을 다녔다.
우리나라의 '나라' 그대로 전해졌다는 나라(なら, 奈良). 교토역과는 달리 나라는 역 주변이라도 한적하고 조용하다. 도시의 유명세에 비해 여전히 시골스러워서 더 좋다. 보통 유명 관광지는 JR을 이용하는 것이 더 편리한데, 오사카에서 출발한다고 했을 때 나라만큼은 킨테츠(近鉄) 철도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킨테츠나라 역이 JR나라역사보다 나라 공원에 더 가깝다.
역에서 내리면 이곳이 중국인지 일본인지 혼란스럽다. 중국인이 많다기보다 억양에 의해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듯하다. 분명 여러 국가에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오는데, 유난히 중국인이 눈에 띈다.
역에서 밖으로 나가는 순간 도로에 '사슴 사고 주의'라는 경고가 눈에 띈다. 사진으로만 보던 곳을 실제로 왔을 때, 대부분 건물 중심이지만 나라에는 동물인 사슴이 있기 때문에, 가장 기대되는 곳이 아닐까.
킨테츠나라역에서 바로 나와 공원 방향으로 작은 상점가(쇼-텐가이, 商店街, しょうてんがい)가 있다. 11시쯤 도착하여 배가 출출할 때라 점심을 먹고 돌아다니기로 했다. 유독 한 곳에 사람이 줄을 서있길래 뭔지도 모르고 같이 섰는데 유명한 우동집이었다.
입이 아닌 눈으로 먹는 집이었는데, 보통의 유부우동에 비주얼적인 요소를 넣었다. 사슴 문양의 유부와, 유부 주머니 안에 면을 넣어 실상 맛이 특별히 좋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좋았다. 일상적인 음식에 살짝만 변형을 가하면 근사한 특산물이 된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상점가를 벗어나면 엄청난 규모의 공원이 이어진다. 그리고 길고양이 보다 더 많은 엄청난 수의 사슴도 함께. 관광객 수만큼 사슴도 있는 듯하다. 얼마 전에 너무 개체 수가 늘어나서 농작물 피해를 막기 위해 이제는 사냥도 가능하다고 하니, 무엇이든 과유불급이라.
동대사(東大寺, とうだいじ, 토-다이지)와 흥복사(興福寺, こうふくじ, 코-후쿠지)를 비롯 나라국립박물관이 모두 함께 있는 나라공원에서는 사실 문화재는 관심 밖이다. 동물원에서 철창 너머로만 만날 수 있는 사슴을 바로 옆에서 만지고 쓰다듬을 수 있는 경험에 모두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야생성은 찾아볼 수도 없는 사슴 무리들. 가까이 가도 도망 치지도 않고 사진 찍으면 마치 포즈를 잡아주는 듯 웃고 있는 듯한 느낌까지 준다. 사슴은 일본어로 "시카(鹿, しか)". 치과(歯科)도 발음이 '시카'이므로 나라 이외의 도시에서 '시카'가 어디에 있냐고 물으면 병원을 알려줄 지도 모른다.
사슴이 사람을 겁내지 않는 것은 특히나 '사슴전병(鹿せんべい, 시카센베이)' 의 영향이 크다.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지만 음식물을 함부로 동물에게 주어서는 안된다. 유일하게 이 사슴전병을 구입하여 사슴에게 줄 수 있게 되어있는데 사슴들이 호시탐탐 이것을 얻어먹으려고 사람에게 달라붙는 것이다. 가격은 무려 150엔. 굳이 주지 않더라도 사슴은 지천에 널려있고, 사진 찍는데 아무 무리가 없으니 더운날 음료수나 사드시라고 권하고 싶다.
흉한 글쓴이의 얼굴도 올린다. 이런 다양한 셀카 연출도 가능하다. 언뜻 보면 송아지 같이 생겼는데, 사슴 몇몇은 정말 사진을 찍어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기도...
킨테츠역에서부터 이정표를 따라 걸어가면 가장 첫번째 만나게 되는 문화재는 흥복사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아예 전체를 들어갈 수 없게 막아버려서 더 돌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바보같이 그냥 건너뛰고 말았다. 다시 갈 수 있는 기회가 있겠지, 라고 하는데 그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는 것 같다.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다. 시간은 한정적이고 볼 것은 많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선택해야하는지를 배우게 되는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이니. 봤더라도 절반만 본 것이니 의미가 없었을지도.
나라 공원에 수많은 절과 신사가 있다. 그 중 사찰에서의 메인은 역시나 동대사이고, 그 다음이 흥복사. 신사 중에서는 춘일대사(春日大社, かすかたいしゃ, 카스카타이샤)를 가장 강조한다. 그냥 신사도 아니고 큰 대자가 붙는다. 한국어로도 잘 번역이 된 홈페이지(http://www.kasugataisha.or.jp)에 유래를 그대로 옮겨봤다.
가스가타이샤(春日大社) 신사는 지금으로부터 약1300년전, 나라에 도읍이 탄생되었던 시기에 일본의 국가 번영과 국민 행복을 기원하여, 멀리 가시마 신궁(鹿島神宮)에서 다케미카즈치노 미코토(武甕槌命)신을 신산 미카사야마 (神山御蓋山) 산의 산정(山頂) 우키구모노 미네(浮雲峰)로 모셔왔습니다. 이윽고 화려한 덴표(天平)문화가 꽃필 무렵인 진고케이운(神護景雲 ※일본의 연호) 2년 (서기768년) 11월9일에 쇼토쿠천황(称徳天皇)의 칙명에 의해 좌대신 후지와라노 나가테(藤原永手)에 의해 산 중턱인 현 위치에 장려한 신전을 조영하여 카토리 신궁(香取神宮)에서 후츠누시노 미코토(経津主命)님, 또한 히라오카 신사(枚岡神社)로부터 아메노코야네노 미코토(天児屋根命)님• 히메카미(比売神)신 등 존귀한 신들을 초빙하여 함께 모신 것이 당 신사의 기원입니다.
창건이래 당 신사는 천고의 숲속에 주홍색 기둥, 백색 벽, 그리고 자연의 노송나무 껍질 지붕인 본전과 사전(社殿)이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장려하고 생생한 면모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20년마다 행해지는 시키넨 조타이(式年造替 ※20년에 한번 실시되는 신전의 대수리)라는 제도에 의해 사전(社殿)의 집물을 새롭게 조달하고, 제례를 엄수함으로서 일본인의 생명이 연면히 이어저 왔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청명하면서도 존엄한 기(氣)가 경내에 가득하여, 신의 광대무변(広大無辺)한 힘과 감사함을 절실히 느낄 수 있는 명 신사로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 전국에 3000에 달하는 가스가 분사와 봉납된 3000기에 달하는 등롱은 그 깊은 신앙의 정도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도 옛날과 변함없이 매일 아침 저녁으로 신에게 드리는 제사를 시작으로 연간 1000회에 달하는 축제가 행해지고 있으며, 일본뿐만이 아닌 세계 평화와 만민의 행복, 그리고 공존공영를 위한 기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1998년12월에는 가스가타이샤 신사와 가스가 산 원시림을 포함한 (고도 나라의 문화재)가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에 등록되었습니다.
춘일대사로 향하는 길에 석등과 낮은 돌계단이 잘 어우러져 어떻게 사진을 찍어도 이쁘다. 확실히 신사 쪽이 절에 비해 일본인 관광객 비율이 많고, 인원이 적어서 상대적으로 차분하다. 그 때문에 사슴의 수도 적다. 먹이를 주는 사람 수에 비례하는 듯.
20년마다 한 번 한다는 수리일이 걸린 것인지, 이곳도 또 공사중. 내가 가는 곳마다 항상 공사를 한다. 복이 없는 것인지, 전국적으로 문화재에 대대적인 투자를 해서인지 아무튼 부러우면서도 아쉬웠다. 입장료 내기도 아까울 뿐더러 특히 신사에는 민족정서상 반감이 들어, 세계문화유산임에도 내부까지 들어가지 않았다. 각 신사마다 고유의 복을 기원하는 표찰을 쓰는데, 역시나 이곳은 사슴이다. 문화콘텐츠에 있어서는 독보적이다.
춘일대사에서 길을 잘못 들면 엄청나게 걸어야 한다. 미리 계획을 잘 세워서 어디를 보고, 어디를 지나칠지 잘 결정해야한다. 아무 준비도 없이 가서 당연하지만 형편없는 글을 남긴다.
동대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인파가 가장 많다. 상점들과 노점상도 이쪽에 주로 분포해있다. 사슴까지 가득하여 더 정신이 없다. 사진 속의 고요함은 실제에서 느낄 수 없다. 전세계의 모든 인종을 다 만날 수 있는 듯하다. 일본에서도 수학여행을 비롯 전국에서 온 사람들. 음식 냄새와 온갖 언어가 혼재되어 시장통이 따로 없다. 이 또한 하나의 볼거리겠지.
동대사의 규모는 실로 엄청나다.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가까이 갈수록 그 규모와 웅장함에 입이 벌어진다. 저 엄청난 인원이 줄을 서지 않고 들어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본인은 아기자기한 것만 잘하고 작은 것을 더 잘 만들 것이란 편견은 과거의 건축물에서 모두 깨지게 된다. 대불전의 높이만 48.71m, 그 안의 불상도 거의 15m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