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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유담 Feb 27. 2018

임순례, <리틀 포레스트>

브런치 무비패스 1.

기회도 운이다.

 업무 중에 누군가 내 브런치를 구독한다는 알림을 보고 들어왔다가 저번에 실패했던 <무비 패스>가 있어 냉큼 지원했다. 대학교 때 썼던 논문 수준의 '킹덤 오브 헤븐' 글이 운좋게 영화 관련 글이라 보냈는데 감사히도 뽑혔다.

 

 무비패스 안내에 박찬욱의 히로인으로 신인부터 일약 스타가 된 김태리 사진이 있기에 첫 영화는 "리틀 포레스트" 겠구나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였다.


 일에 치여서 글을 바로 써내야 했는데 그사이 또 잊어버려 이것은 숙제를 위한 글쓰기이고, 시사회와 별개로 한 번 더 감상 후에 보완 글을 써내야겠다. 초안이라 글을 두서 없이 생각 나는대로 쓴다.

 결론부터 쓰면 돈 주고 두 번, 세 번 봐도 아깝지 않은 좋은 영화다.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올려야 하는데,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시사회를 통해 평을 남겼을터이니, 좀 더 희소성 있는 글을 쓰려고 애써본다.

 리틀 포레스트의 정식 개봉은 18년 2월 28일. 이틀 앞선 오늘 언론에 배우들이 포토존 앞에 선 사진이 나오는 것을 보니 제대로 시사회가 한창인 듯하다. 브런치 덕분에 그보다 더 이른 지난주 24일에 영화를 봤다.

 장소와 시간은 신촌 메가박스. 평소 신세를 많이 졌던, 그리고 연대 출신이라 주변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KHS 선생님과 함께 했다. 갑작스런 요청이었는데 흔쾌히 와주셨다.

 을씨년스러운 신촌 기차역사 옆에 부도난 것으로 판단되는 쇼핑몰에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조명의 메가박스 입구. 상영 1시간 전임에도 사람이 물밀듯이 들어왔고,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가득 찼다.

 브런치 외에도 여러 곳에서 동시에 이벤트성 시사회를 하는 듯. 이전에도 시사회 경험은 있지만 뭔가 글을 써야한다는 전제로 영화를 보게 되는 것은 처음이라 포스터를 보고도 바로 앞에 배우가 있는 것처럼 설렜다.


원작이 존재하는 리메이크작이다. 콘텐츠 전반이 단순 창작보다 리메이크 되는 것이 더 많아 우려가 크다. 이제 더이상 무에서 유는 어려울까.

 희한하게도 이번 설 연휴에 개봉한 영화 대부분이 원작이 존재하는 리메이크 풍년이었다. 이미 원작을 넘어 독보적 시리즈를 구축한 마블의 <블랙팬서>부터,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과 사카이 마코토 주연의 영화를 각색한 <골든 슬럼버>, 수 백년 전의 판소리로 전 국민이 다 아는 <흥부>.  여기에 리메이크라고 하면 억지스럽지만, 벌써 3편째에 뱀파이어 소재를 차용한 <조선명탐정3>까지.

 갈 곳이 없어 연휴 동안 이 4편을 다 봤다. 슬프게도 마음에 드는 영화가 한 편도 없었다. 특히 강동원 주연의 '골든슬럼버'는 이럴거면 굳이 왜 원작을 가져오려고 했나 싶을 정도로 안타까움만 남는 영화가 되었다(이걸로 글을 한 편 또 쓰겠다).


 임순례 감독 영화는 '제보자' 밖에 보지 못했다. 가장 유명한 '우생순' 같은 영화는 그냥 스포츠 그 자체로 보는 것이 더 감동적이어서 기피하는 성향이다. 그래서 감독의 특색을 잘 몰라 공부가 더 필요하다. 소재의 무거움 때문인지 제보자는 그냥 덤덤하고 편안했던 것 같다. 본 지 너무 오래되서 출연한 이경영 배우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원작을 먼저 보고 새로 나온 콘텐츠를 보는 것과, 신작을 먼저 보고 뒤에 처음의 창작물을 보는 것 중 뭐가 더 낫다고 아직 스스로 확답을 짓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설 연휴를 거치면서 원작을 나중에 보는 게 나았을 거 같다는 아쉬움뿐이었기에 앞으로는 순서를 바꿀 듯하다. 원작을 알고 나면 계속 어떻게 바뀌었는지, 저 연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숨은 그림 찾기 처럼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노리고 영화 나올 즈음 표지와 광고를 때리는 서점가. 책을 미리 사는 편이라 군더더기 없는 표지의 책을 살 수 있다. 장단이 있고, 영화 보는 순서에 나름의 재미가 있다.


 '리틀 포레스트'는 엄밀히 원작이 2개다.

 영화 크레딧에도 올라오는, 만화 이가라시 다이스케, <리틀 포레스트>가 원작이다. 책을 빨리 산 덕분에(?) 김태리가 아닌 일본 하시모토 아이의 띠지가 둘러진 책을 받았다. 일본 만화가 일본 영화로 나왔고 다시 한국 영화로. '골든슬럼버' 역시 일본 소설이 일본 영화로, 다시 한국 영화의 각색 과정이 있었어서 좋은 참조가 되었다.


 <리틀 포레스트> 일본 버젼은, 재미있게도 지금까지 바로 시나리오를 연출해서 만든 영화가 아닌 소설이나 만화 등에서 나온 작품 중 가장 원작에 충실한 영화다. 영화를 먼저 보고 만화를 봤는데, 영화 콘티로 착각될 정도로 대사, 구도, 내용이 똑같다. 작가가 직접 체험한 것을 만화화 한 듯한데, 엔딩에 춤추는 것까지 그림으로 떠올리는 것을 그대로 영상화했다. 챕터의 순서가 뒤바뀌고, 딱 봐도 영상으로는 연출이 어려운 것은 피하고 그대로 다 담았다.

 만화/영화 둘 중 하나만 봐도 다른 한 편은 안봐도 될 정도의 그대로. 개인적으로는 만화 보다 영화가 더 좋았다. 생각했던 느낌의 배우가 아니라 이질감이 있지만, 하시모토 아이는 농촌의 소녀 연기를 자연스럽게 해냈다. 이 역할은 20대의 어느 배우가 했어도 그 나름의 '맛'이 있었을 듯하다.


 영화는 컴포트관에서 시작됐다. 광고도 없이 8시에 칼 같이 시작했는데 그 때 들어오는 사람들 때문에 초반에 몰입을 못했다. 늦게 오면 입장이 안된다는 조항을 넣으면, 내가 걸리겠지...?


 첫 시작을 어떻게 할까 궁금했다. 오프닝부터 원작 그대로 가면, 내용도 그대로 가겠구나. 대신 원작은 농촌을 배경으로 한 요리 영화로, 시즌 6까지 나온 <고독한 미식가>의 농촌 여성판이라, 그대로 가면 김승우 주연의 <심야식당> 리메이크처럼 될 거라 분명 스토리 중심으로 갈 거라는 예상.

 안타깝게도 그대로 전개. 김태리가 산의 비탈길을 자전거로 내려가는 장면. 총 2편으로, 정확하는 1계절씩 나누어 구성된 내용을 1편에 다 담아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호흡이 빠르다. 한참을 따라 내려가야하는 일본의 자전거 앵글은 한국에 와서 금방 끝난다.


 원작의 마을 이름은 '코모리(小森-こもり)' 이름 그대로 '작은 숲'이다. '리틀 포레스트'를 대놓고 일본어로 썼다. 설마 소림리, 소림마을 이렇게 갈까 했는데 딱 한 번 언급되지만 내가 듣기로 '미성리'로 들었다. 전혀 안 웃긴 장면에서 혼자 킥킥거리니 옆에서 참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관객은 여성 비율이 높고, 의외로 40대 이상의 분들이 많았다. 뭔가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색채가 살짝 묻어있는, 거기에 삼시세끼와 효리네 민박 느낌이 얽혀있는 정서. 분명 리메이크인데 감수성이 다르다.

 일본판은 요리 재료를 채취하는 과정과 요리하는 과정이 중심이다. 그 안에 간간히 에피소드를 넣었지만 남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본 적이 없는 열매와 아주 일본스러운 재료로 서양식을 만들어낸다.   

 반면에 한국판은 가장 기본적인 재료로 가장 기본적인 요리를 만들어내는 느낌. 요리 메뉴가 다를 거라는 것은 예측했지만 임순례 감독은 참 영리하게 잘 반영시켰다.

 

 뭔가 나레이션이 듬성듬성 들어가있어 전반, 후반 영화가 나뉘는 느낌이지만. 대놓고 음식 만드는 걸 계속 보여주는 시도가 신선했던 듯. 곳곳에서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리고 관객 뒷모습만 봐도 배고파 하는 것이 느껴졌다.

 

 겨울 배추를 바로 뽑아 만든 국에, 콩국수 같은 음식을 적재적소에 넣은 것이 포인트. 양배추로 케이크를 만들려는 시도와 엄마가 누텔라로 한 귀여운 거짓말을 오꼬노미야끼로 만드는 능력. 원작의 2편 영화를 압착하여서 우리 식으로 잘 만들었다.

 원작에서 진짜 조연인 남 후배와 여 친구를 한국 영화니까 당연히 더 비중을 두고, 류준열과 진기주로. 사랑에 대한 언급이 많다. 일본판의 '엄마'는 요리를 가르쳐주는, 왜 떠났는지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쿨한 캐릭터인데, 문소리 배우는 쿨하면서도 딸을 더 살뜰히 챙기는 중요한 캐릭터. 엔딩이 엄마가 돌아왔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또 어떻게 보면 사랑+모성애의 뻔한 공식일지도. 이게 먹혀들어가니까 이런 전개가 가는 것이고.

 

 일본에서 1년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너 뭐 될래? 너 무슨 일 할래? 언제 결혼할래?"

 그러나 이번 <리틀 포레스트> 에서는 편의점, 고시생, 직장상사 스토리가 부각된다. 안타깝다. 현실이긴 하지만, 자꾸 더 그 부분만 확대해서 또 이전의 '힐링'을 다시 불러오는 듯하여.

 일본 원작을 봤을 땐 나도 시골 가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것이 없다. 배가 고프거나 무엇이 먹고 싶다는 생각도 없다.

 원작을 무시하고 그 자체로는 풋풋하고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지만, 비교를 하면 아쉽다. 분량의 문제라고 본다. 원작을 보고 한 번도 웃지 않았지만, 이 영화를 보고는 간간히 웃을 수 있어 좋았다.


 곤들메기를 잡는 씬을 밤에 고디(다슬기의 경상도 사투리) 잡는 장면으로, 막걸리와 감주의 중간 맛이 나는 아마자케(甘酒-アマザケ)를 그대로 막걸리로 해서 친구 셋이 술에 취한다는 설정도 훌륭했다.

 원작을 봐버리면 영화 감상평이 이렇게 되버린다.


 일본판에서 동물은 오리 밖에 안나왔는데, 심지어 잡아먹는다. 닭이 나오길래 닭도 잡아먹는구나 했는데 예상에 없던 강아지 '오구'가 나와서 이것만으로 임순례 감독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태리 때문에 잔인하고 기괴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를 봤는데, 참 독특한 마스크다. 10대부터 60대까지 모든 역할을 아우를 수 있는 얼굴을 갖고 있다. <1987>에서도 역할을 잘 만났는데, 고등학생을 왔다갔다 해야하는 역할에도 어색함이 없다.

 진기주라는 보물 발견. 곧 중요한 역할로 톱스타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제목이 <리틀 포레스트>인데 아이러니 하게도 숲이 별로 안나온다. 절반은 원작에 충실하고, 영리하게 잘 비틀어 꼭꼭 채워담았고, 추가적인 우리나라의 정서를 잘 살렸다.

 이모가 아닌 고모다.

 편지를 보지 않을 권리, 무조건 배달해야만 하는 의무.

 잊을 수 없는 대사들.


 수작이다. 1월의 베스트는 <1987> 이었는데, 2월의 베스트는 <리틀 포레스트>다. 올해의 베스트가 될 지도 모르겠다. 둘 다 김태리 배우가 등장한다.

 복이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잠시 스트레스를 잊고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영화가 되었으면 한다.

 청춘을 위한 영화지만, 극장에서는 연세 있으신 분들의 웃음소리가 더 많았다.

선물로 스티커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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