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無名)

남지 않는 이름

by 룡하

‘죽간본’ 10장은 ‘道恒亡名(도항무명)’으로 시작되고 있다. 이 넉자는 그대로 모순이면서 역설이다. 이름이 없다면서 ‘도’라고 부르고 있으니, 모순이다. ‘도’라고 부르고는 있으나 실상이 아닌 ‘이름’에 지나지 않으므로 속지 말라고 하는 것이니, 역설이다.


이를 더 자세하게 표현한 것이 통행본 ‘도덕경’ 1장 첫머리에 나오는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이다.

“도를 도라고 말할 수 있으나, 그것은 한결같은 도가 아니다. 이름은 이름이라 할 수 있으나, 그것은 한결같은 이름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죽간본’에는 나오지 않는다.

공자의 언어관을 ‘正名(정명)’이라 한다면, 노자는 ‘無名(무명)’이라 할 수 있다. ‘이름을 바르게 한다’는 정명은 복잡한 관계를 정리하고 질서를 유지하며 정치와 사회, 경제가 효율적으로 돌아가게 하려는 문명화 과정이다. 따라서 공자도 도를 말하지만, 그것은 문명적 질서로서 도를 가리킨다.

반면에 노자는 자연이자 혼돈으로서 도를 말하므로 이름이 있을 리가 없다.


출처 : 정천구, "정천구의 도덕경…민주주의의 길 <217> 名非常名", 국제신문, 2018.09.17, https://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000&key=20180918.22025006493


중국에 4대 도인이 있습니다. 공자, 맹자, 노자, 장자입니다. 공자 (BC551~BC479)는 춘추시대의 사상가이며 나머지 세 사람은 전국시대(戰國時代)의 도인입니다. 난세에는 전란이 그치지 않는 어지러운 세상이요.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사회기강이 무너지고 인심이 흉흉한 황폐한 시대였습니다. 장자(莊子)는 (BC369~BC289) 중국 송나라 사람으로 세속을 벗어나 대자연인(大自然人)이 되는 것이 그의 목표였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인간은 어떤 것인가!” 장자는 이렇게 말하고, 지인무기(至人無己) : 지극한 경지에 있어도 이기심은 버리는 일. 신인무공(神人無功) : 신과 같은 경지에 이른 도통한 사람이라도 자기의 공을 내세우지 않는 일. 성인무명(聖仁無名) : 허(虛)와 위(僞)가 없는 사람이라도 명예를 구하지도 자랑하지도 않는 일. 이라고 했습니다. 장자의 3무(三無)는, 무기(無己), 무공(無功), 무명(無名)이며 자유로운 인간, 초연한 삶, 평상심으로 자유인이 되라는 장자의 가르침이 결론입니다.


출처 : 장영래, "【장지원 칼럼】 장자의 3무(三無) - 코리아플러스", 코리아플러스, 2020.07.23, https://www.kplus.kr/news/articleView.html?idxno=326949


우리는 매사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습관처럼 하다 보니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욕심을 챙기기 마련입니다.


어떤 이가 누군가에게 크게 실수를 했다고 합시다. 실수한 사람은 실수에 대해서 우선 사과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사과하기가 싫어서 저 사람이 어떻게 나올까에 대해 상상하면서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 각본을 씁니다. 그러나 각본대로 일이 흘러가는 법은 그리 많지 않으며 그로 인해 마음은 더욱 복잡해지고 일은 더욱 꼬이게 됩니다. 사과해야 할 때를 놓쳐 난감해지면서 번뇌에 휩싸이게 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수행하는 불자라면 즉시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를 했어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면서 일어난 일에 대해 덧대거나 빼는 습관을 버리세요. 그리고 짧게는 몇 초, 길게는 몇 분의 여유를 갖고 이미 일어난 일을 그냥 바라보세요. 그러면 조금은 객관적인 사고가 싹트게 되며 여유를 갖는 시간을 조금씩 더 늘려가다 보면 의미를 부여하는 버릇도 조금씩 사라질 것입니다.


출처 : 법보시론, "[법보시론] 의미 부여하지 않기", 법보신문, 2010.05.24, 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61253



우리는 무엇이든

이름을 붙여야 안심한다.


이건 좋은 선택,

이건 의미 있는 행동,

이건 가치 있는 삶이라고.


노자는 <도덕경>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고, 도는 언제나 이름이 없다."

장자 또한 말한다.

"성인은 이름을 남기지 않는다."
무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굳이 이름으로 붙잡지 않는 태도다.


이름이 붙는 순간
그 행동은
기록이 된다.

그리고 기록은
다시 평가를 부른다.

잘했는지,
충분했는지,
계속해야 하는지.

무명은
그 과정을 끊는다.

행동은 남기되
이름은 남기지 않는다.

채식도
그렇게 놓을 수 있다.

건강을 위한 선택,
환경을 위한 실천,
윤리적 소비라는 이름들.

그 이름들이
때로는
행동을 무겁게 만든다.

무명이 되면
그 모든 설명이 사라진다.

그저
오늘 먹은 한 끼가
있을 뿐이다.

못난이 농산물을 고르는 일도
마찬가지다.

착한 소비,
의미 있는 선택,
가치 있는 행동이라는 이름 대신
그냥
필요해서 고른다.

그 순간
선택은 가벼워진다.

무명은
의미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의미를
붙잡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행동은 더 오래 간다.

무명은
억지로 남기지 않는 것이다.

남기지 않으려 할수록
더 순수해진다.

설명하지 않아도,
증명하지 않아도,
이미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명은 묻는다.

이 선택에
정말 이름이 필요한가.

그 질문이 남는 순간
행동은 조용해지고,
삶은 가벼워진다.

그래서 노자와

장자는 말한다.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영원하지 않다고.

남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계속되는 것.

그것이
무명(無名)이다.


생활 속 실천


1. 일주일에 하루, 한 끼를 선택에 이유 붙이지 않기

2. 먹는 도중, 좋은 행동을 했더라도 말하지 않기

3. 먹고 난 뒤 생각하기
"오늘 나는 무엇을 남기지 않았는가"



올랭프 드 구쥬를 생각하며


우리는 무엇을 차별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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