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無量)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의 크기

by 룡하

초기불교에서 4무량심(四無量心, catvāri apramāṇya)이란 수행자가 타인을 대할 때 지녀야할 4가지 덕목이나 바른 마음가짐을 말한다.


4무량심은 ①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자애심(慈, maitrī) ②모든 존재가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연민심(悲, karuṇā) ③남의 즐거움을 함께 기뻐하는 마음(喜, muditā) ④모든 사람을 친소관계를 떠나 평등하게 대하는 평정한 마음(捨, upekṣā) 등이 한량없이 베풀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4범주(梵住, brahmavihārāḥ) 혹은 4범행(梵行, brahmacārya)으로도 불린다. 한편 이 4무량심은 대승불교에서 붓다가 지녀야할 중요한 덕목으로 지혜와 자비가 강조되듯이, 보살이 원력을 가지고 실천해야할 덕목으로 계승된다.


4무량심은 초기경전에서 수행의 보조적 수단으로 쓰이거나 해탈로 인도하는 수행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출처 : 김재권, "37. 4무량심의 의미", 법보신문, 2018.10.10, 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2129


보살의 네 가지 큰마음


불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웃을 대해야 할까. 이를 알고 싶다면 사무량심(四無量心)을 살펴보자.


사무량심이란 중생을 향한 보살의 네 가지[四] 한량없는[無量] 마음을 이른다. 그 첫째가 자(慈)무량심이다. 즉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자 하는 자애로운 마음이다. 성내거나 원망하지 않고, 어질고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 즐거움을 주는 마음이다.


둘째가 비(悲)무량심으로, 슬퍼하는 마음이다. 즉 남의 고통을 내 아픔처럼 함께 나누고 고통을 없애며 도우려는 연민의 마음이다.


셋째가 희(喜)무량심으로 누군가의 행복을 함께 기뻐해 주는 환희로운 마음이다. 다른 사람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사심 없이 즐거워하는 것이다.


넷째는 사(捨)무량심이다. 일체 구애받는 마음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대하는 평등한 마음이다. 타인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얽매이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공정한 마음가짐을 뜻한다. 이 넷을 사무량심 외에도 사등(四等)·사범주(四梵住)라고도 한다.


출처 : 배희정, "⑮사무량심(四無量心) - 불교교리상식", 금강신문, 2008.10.10, https://www.ggbn.co.kr/news/articleView.html?idxno=7755


4무량심은 자·비·희·사의 마음을 객관계에 펼치는 것을 의미한다. 초 기불교는 4무량의 4가지의 마음이 방향 중심으로 무량의 의미가 실현되었다. 대승경전에 이르면 무량의 의미는 모든 중생계에 이르는 과정으로 설명되며, 보살과 불의 행법으로 설명된다. 4무량심은 반야지혜와 바라밀의 실천으로 이해되며, 중생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선정이라고 보았다. 2승의 선정을 비판 하고 대승의 선정은 4무량심이라고 한다.


출처 : 강명희. (2019). 대승경전의 사무량심 수행 연구 - 4무량심의 무량(無量) 개념과 무연(無緣) 개념 중심으로 -.



우리는 늘

마음의 크기를 정한다.


이 사람에게는 베풀고,
저 사람에게는 아끼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선을 긋는다.


사무량심(四無量心)은 이렇게 말한다.

"헤아릴 수 없는 마음으로 대하라"

무량은 좋은 마음을 가지라는 말이 아니다.

그 마음의 범위를 정해 두지 말라는 뜻이다.


그 선이

마음을 작게 만든다.


무량은

그 기준을 없앤다.


얼마나 베풀 것인가,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가를

계산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은

넓어진다.


불교에서 말하는 사무량심(四無量心)은
자비희사,
네 가지의 넓은 마음이다.

그 시작에는
이 말이 붙는다.

무량(無量)
헤아릴 수 없다는 뜻이다.

채식도
무량의 관점에서 보면
조금 다르게 보인다.

무엇을 먹지 않는 선택이 아니라
무엇을 살리는 선택으로 바뀐다.

덜 해치는 방향,
덜 소비하는 방식,
조금 더 남겨두는 태도.

그 선택은
눈에 보이는 결과보다
더 멀리까지 이어진다.

못난이 농산물을 고르는 일도
같다.

모양이 다르다는 이유로
버려질 뻔한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선택.

그 하나의 선택이
생산, 유통, 폐기의 흐름 속에서
조금씩 균형을 바꾼다.

우리는
그 영향을 다 셀 수 없다.

얼마나 줄였는지,
얼마나 살렸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래서
무량이다.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작다고 말할 수도 없고,
크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그저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무량은
결과를 계산하지 않는다.

좋은 일을 했는지,
얼마나 기여했는지
확인하지 않는다.

그 대신
방향을 본다.

지금 이 선택이
조금 덜 해치고 있는가,
조금 더 살리고 있는가.

그 방향이 맞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무량의 마음은
크게 하려고 애쓸 때가 아니라
제한을 두지 않을 때 생긴다.

그래서
작은 선택도
작지 않게 된다.

채식을 하고,
못난이 농산물을 고르는 일도
어쩌면 거창한 실천이 아니라
하나의 방향일 뿐이다.

하지만 그 방향은
헤아릴 수 없는 곳까지
이어진다.

무량은 말한다.

얼마나 했는지를 보지 말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보라고.

그 흐름 속에서
이미 충분히
넓어지고 있다고.



생활 속 실천


1. 일주일에 하루, 한 끼를 계산하지 않고 먹기


2. 먹는 도중,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보기


3. 먹고 난 뒤 생각하기

"오늘 나는 무엇을 헤아리지 않았는가"



올랭프 드 구쥬를 생각하며


우리는 무엇을 차별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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