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不二)

재료를 차별하지 말라

by 룡하

불가(佛家)의 얘기를 해볼까 한다. 불이(不二)라는 게 있다. 둘이 아니라는 말이다. 즉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고, 생과 사, 만남과 이별 역시 근원은 하나라는 의미다. 꽤 유명한 절엔 서로 이름은 다르게 부르지만 불이문(不二門)이 존재한다. 금당에 들어서는 마지막 문으로, 이 곳을 통과하면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에 들어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세워뒀다.


그런데 불이는 원래 불일불이(不一不二)에서 나왔다. ‘다르지 않다(不二)’를 말하려면 하나가 아니라는 것, 그러니까 ‘같지 않음(不一)’을 알아야 한다.


원효는 불일불이를 「금강삼매경론」에서 쉽게 설명한다. “열매와 씨가 하나가 아닌데, 이는 그 모양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르지도 않은 것은 씨를 떠나서는 열매가 없기 때문이다”고 했다. 씨와 열매는 별개이므로 다르지만(不一), 열매는 자신의 유전자에 씨를 남기기 때문에 둘도 아니다(不二)는 표현이다.


출처 : 김형훈, "불일불이(不一不二)", 제민일보, 2004.06.25, https://www.je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114413


‘못난이 농산물’은 농산물 표준규격에서 벗어난 등급 외 농산물을 가리킨다. 맛과 영양은 일반 농산물과 다르지 않지만 ‘못생겼다’는 이유로 팔리지 못한다. 모양, 색깔, 크기 등이 규격에 맞지 않아 버려지는 농산물은 국내 전체 생산량의 10~30% 정도다. 최대 5조원 규모의 농산물이 매년 도로 땅에 묻힌다.


멀쩡한 농산물이 그냥 버려지는 것도 아깝지만 버려진 농산물이 땅속에서 썩으면서 토양을 오염시키고 메탄 등 온실가스를 내뿜는다는 점도 문제다. 먹지 않는 채소와 과일을 생산하기 위해 토지·물·노동력이 낭비되고, 버려진 농산물이 환경을 오염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출처 : 김채운, "‘못난이 농산물’로 지구를 살린다", 더나은미래, 2023.08.21, https://futurechosun.com/archives/79500


2. 중도불이행(中道不二行): 평등심의 실천


우리는 흔히 조리를 할 때에 결과물에 중점을 두어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만을 생각할 때가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아끼지 않고 쓰는 것이 비결이라고 한다. 또는 귀하고 비싼 재료를 사용하여 조리한 음식을 고급음식, 훌륭한 음식, 맛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판단은 식재료나 음식에 대해 ‘좋다·나쁘다’ 또는 ‘최고다·최하위다’라고 하는 이분법적 사고에 의한 번뇌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도겐은 이러한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전좌는 음식을 만들 때에도 식재료나 음식에 대해 분별심을 내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다음의 예문을 살펴 보자.


재료의 많고 적음을 논하지 말고, 재료가 거친지 부드러운지 생김새를 상관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정성으로 준비하는 것만이 옳을 뿐이며, 싫어하는 낯빛을 하거나 재료의 많고 적음을 말하는 것을 삼가하고, 재료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 (중략)재료를 고르고 준비할 때에는 범부의 눈으로 살피지 말아야 하며, 망상으로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풀 한 포기로 불국토를 세우고, 작은 티끌 속에 들어가서 대법륜을 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풀국을 끓이더라도 싫어하거나 가벼이 여기는 마음을 내서는 안 되며, 우유국을 끓이더라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마음을 내서는 안 된다. 이미 탐착하는 마음이 없는데 어떻게 미워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있겠는가. 아무리 나쁜 재료를 대하여도 태만함이 없고, 아무리 좋은 재료를 만나더라도 더욱 정진하여, 절대 재료에 따라 변심하지 말아야 한다.26)


위의 내용을 풀이하면 부드러운 재료나 우유국은 좋은 재료, 싱싱하거나 값비싼 고급재료, 또는 그런 재료들로 만든 음식을 상징한다. 반대로 거친 재료나 풀국은 나쁜 재료 즉 시들었거나, 재료의 모양이 못생겼다거나,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거나, 값이 싼 재료들을 가리킨다. 도겐은 풀국이 보잘 것 없는 재료로 만든 음식이라고 하찮게 생각하고, 싫어하는 마음을 내고, 불평이나 불만을 표시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우유로 만든 음식이 귀하고 좋은 음식으로 높게 평가하고, 그런 음식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분별과 집착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풀 한포기로 불국토를 세우고 작은 티끌로 대법륜을 굴린다’는 것 역시 번뇌가 일어나거나 머물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예를 들면 오이가 성장할 때에는 하질(下秩)·상질(上秩)로 나뉘어 자라지 않는다. 그러나 조리를 할 때에 때때로 오이의 생김새를 기준으로 재료를 차별하여 선택할 때가 있다. 오이의 모양이 길쭉하고 곧은 것을 상질의

오이라고 생각하여 그런 오이만을 식재료로 사용하려고 하고, 굽었거나 크기가 작은 것은 하질이라고 여겨 재료로 사용하기를 꺼려한다. 설령 길고 곧은 오이를 선택했다 하더라도 보관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부패가 되거나 시들어지게 마련이다. 그것은 재료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재료의 상태가 변화되게 만든 것에 원인이 있다. 굽은 오이나 곧은 오이나 채를 썰어 놓으면 모두 가는 모양을 하고 있고, 오이의 맛도 동일하게 나기 때문에 좋은 오이와 나쁜 오이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이의 생김새와 상관없이 전좌는 주어진 재료로 최선을 다해 음식을 조리하면 되는 것이다.

도겐은 이러한 불이(不二)의 이치를 이해하고, 전좌가 음식의 메뉴를 정하거나 식재료를 대할 때에는 재료의 종류에 상관없이 어떤 재료에 대해서든 차등을 두지 않아 어느 한쪽으로 마음이 쏠리지 않는 평등심을 유지하

고, 소홀히 대하지 않고 소중하게 생각하며,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는 중도의 실천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도겐은 ‘좋은 음식[醍醐味]을 준비한다고 해서 반드시 최고의 전좌가 되는 것은 아니며, 보잘 것 없는 음식[莆菜羹]을 만들었다고 해서 반드시 하위의 전좌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부들로 음식을 만들더라도 진실한 마음, 성실한 마음, 번뇌가 없는 정결한 마음을 갖는 것을 최고가 되는 본보기로 삼으라.’27)고 한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불법의 청정한 큰 바다와 같은 대중에게 흘러갈 때에는 최고의 맛도 보지 않고, 최하의 맛도 두지 않는다. 오직 하나의 큰 바다의 맛만 있을 뿐인데, 하물며 보리심의 싹을 키우고 불성을 기르는 일을 하겠는가. 최고의 맛과 더불어 최하의 맛은 하나이지 둘인 적이 없다. 비구의 입은 부뚜막과 같다는 말이 있으니 반드시 알아야 한다. 부들로도 능히 선근을 기를 수 있고, 보리심의 싹을 기를 수 있음을 생각하여 (부들을) 천하게 여기고 가벼이 여기지 않아야 한다.28)


‘최고의 맛도 보지 않고, 최하의 맛도 두지 않는다’는 것은 좋은 음식과 하찮은 음식이란 없으므로 음식에 대해 차별을 두는 마음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아궁이에 나무를 넣어 태우면 어떤 나무라도 상관없이 모두다 타버리고 재만 남는다. 그런 이치와 같이 최고의 음식도 최하라고 생각하는 음식도 수행자의 입을 통해 들어가면 모두 소화되어져 필요한 영양소만이 몸에 흡수되고, 불필요한 성분은 몸 밖으로 배설이 되므로 음식에는 우열이 없다는 것이다.

가령 콩나물무침과 더덕구이를 만들어 상을 차릴 경우 콩나물보다는 더덕구이를 맛있고 귀한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두 음식에 차등을 두는 것은 더덕을 쉽게 구하지 못하기 때문에 귀하게 생각하여 좋은 식재료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콩나물이나 더덕은 재료들이 자라는 환경이나 방법이 다를 뿐이지 두 재료 모두 건강을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것은 동일하다. 비싸고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이라고 해서 더 좋은 영양분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재료나 음식에는 상·하가 없는 것이다. 좋은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은 결국은 번뇌이다. 전좌가 그러한 집착과 차별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만든다면 결코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전좌의 궁극적 목표인 깨달음을 얻는 일은 더욱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도겐은 이러한 마음을 갖지 않도록 주의를 요하고 있는 것이다.


26) 永平道元禪師淸規 (TD 82) p. 320b-c. “不論多少。不管麁細。唯是精誠辨備而已。切忌作色口説料物多少。竟日通夜。物來在心。心歸在物。(중략)凡調辨物色。莫以凡眼觀。莫以凡情念。拈一莖草。建寶王刹。入一微塵轉大法輪。所謂縱作莆菜羹之時。不可生嫌厭輕忽之心。縱作頭乳羹之時。不可生喜躍歡悦之心。既無耽著。何有惡意。然則雖向麁全無怠慢。雖逢細彌有精進。切莫逐物而變心也。逐物而變心。”

27) 永平道元禪師淸規 (TD 82) p. 322a. “所謂調醍醐味。未必爲上。調莆菜羹。未必爲下。捧莆菜。擇莆菜之時。眞心・誠心・淨潔心。可準醍醐味。”

28) 永平道元禪師淸規 (TD 82) p. 322a. “朝宗于佛法清淨大海衆之時。不見醍醐味。不存莆菜味。唯一大海味而已。況復長道芽養聖胎之事。醍醐與莆菜。一如無二如也。有比丘口如竈之先言。不可不知。可想莆菜能養聖胎。能長道芽。不可爲賤。不可爲輕。”


출처 : 한수진 (2018). <전좌교훈(典座敎訓)>을 통한 사찰음식의 의미 고찰. 보조사상, 52, 155 - 183.



부엌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이미 판단을 시작한다.

곧은 것과 휜 것, 윤기 나는 것과 상처 난 것.

아직 칼을 들지도 않았는데, 마음은 먼저 재료를 나눈다.


도겐 선사는 <전좌교훈>에서 이렇게 말한다.

“재료를 차별하지 말라.”

맛있어 보이는 것만을 존중하지 말고,

모양이 모자란 재료라 하여 마음을 덜 주지 말라고.


못난이 농산물은 그 가르침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비에 맞아 흠집이 났고, 휘어졌다는 이유로

못난이 농산물을 우리는 낮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의 실패가 아니라,

우리가 만든 기준에서 벗어났을 뿐이다.


못난이 농산물을 손에 쥐는 순간,

우리는 한 가지 선택을 한다.

차별의 기준을 내려놓을 것인가, 그대로 따를 것인가.


요리는 그 선택이 가장 정직하게 드러나는 자리다.

껍질을 벗기고, 썰고, 불 위에 올리는 동안

그 채소는 더 이상 ‘못난이’가 아니다.


냄비 안에서는 모두 같은 온도를 견디고,

같은 시간 속에서 익어간다.

냄비 안에서 모든 재료는 같은 열을 견딘다.

차별은 항상 아주 작은 곳에서 시작된다.
식탁에서, 장바구니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선택의 순간에서.

오늘 내가 버린 것은 정말 쓸모가 없었을까.
아니면 내가 쓸모라는 말을 너무 쉽게 썼을까.

음식을 만드는 일은
그 질문을 매일 반복하는 수행이다.


그리고 그 수행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나의 세계를 바꾼다.


생활 속 실천

1. 오늘 장을 볼 때, 일부러 못난이 농산물 한 가지 고르기


2. 모양을 감추지 말고, 있는 그대로 조리하기


3. 먹고 난 뒤 생각하기
“오늘 나는 무엇을 차별하지 않았는가.”



올랭프 드 구쥬를 생각하며

우리는 무엇을 차별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