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7년 전 영화론 기말 과제..
- <노아 Noah> (2014년 작), <2012> (2009년 작), <딥 임팩트(Deep Impact)> (1998년 작) 세 영화를 중심으로 -
성경에서 과거 지구에 홍수가 들이닥쳤을 때, 노아가 방주를 만들어 전 지구의 생명체를 한 쌍씩 태워 생존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온 세상의 씨앗들과 온 세상의 생명체 각 한 쌍씩, 그리고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생존하여 홍수 이후 과거와 같은 생태계를 만들었다고 한다.
● <노아 Noah> (2014년 작)
노아의 이야기는 현대에서 많은 영화의 모티브로 작용한다. 특히 2014년에 개봉한 대런 애러노프스키의 영화 <노아(Noah)>에서 그 이야기가 자세히 나온다. 성경에 나오지 않는 구체적인 부분은 감독의 상상력으로 더했지만 기본적으로 뼈대는 같다. 또한 성경에 대한 감독의 해석도 일부 덧붙여졌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노아로 방주를 만든다. 특이한 점은 성경과는 다르게 노아는 방주를 타락천사인 감시자들(Watchers)의 도움으로 건설하게 된다. 아벨을 죽인 카인을 보호해주었던 천사들이 타락하여 지구에 남게 되었는데, 특이한 건 인간들이 이들을 감시자들(Watchers)라고 불렀다는 설정이다. 감독에 의도에 따라 타락천사에게도 ‘임무’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작품에서 감시자들은 인간에게 자신들의 지식을 전수해 주었지만, 카인의 후손들은 그 기술로 그들을 사냥하고 죽였다. 이 일로 인해 감시자들은 인간과 더욱 멀어지게 되지만, 아담과 이브의 자손 ‘셋’의 후손인 노아가 창조주(Creator)의 부름을 받는 꿈을 꾸었다는 얘기를 듣자 그를 도와 방주를 만든다. 방주(Ark)의 건설에 타락천사들이 일조한 셈이다. 노아가 ‘임무를 부여받은 자’라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인데, 그들은 방주를 건설하는 ‘임무’를 받고 건설한다. 다시 말하자면 노아의 가족들은 ‘선택받은 자’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신(God)을 신이라 부르지 않고 창조주(Creator)라고 부르는데, 타락천사들은 ‘창조주’를 부르며 신이 부여한 임무에 응한다. 또한 이 임무로 인해 그들이 구원받기를 원한다. 이는 현대에 나타난 기독교인으로 보이기도 하고, 현대 사회에 나타난 ‘바보 같은 인간 상’을 그리기도 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임무를 다하고 방주를 지키기 위해 방주를 빼앗으려는 사람들과 싸우는데, 결국 인간들에게 전멸당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창조주’의 곁으로 간다. ‘창조주’의 부름에 응한 보답이라고 할 수 있다. 덕분에 창조주는 타락천사들에게 임무를 부여함과 동시에 기회를 주고, 관용을 베푼 셈이 되었다. 성경 내에서 인류의 적 또는 천사들의 썩은 물 정도로 보이는 이들이 방주 건설의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우리가 생각하던 방주의 이미지와는 조금 거리가 멀어진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면서 ‘모든 인간은 죽어야 한다’라는 가정 하에 임무를 진행한다. 덕분에 가족들의 반발은 극을 이룬다. 결국 노아의 후손들은 살아남고, 그들은 ‘선택받은 자’로 새로운 인간의 씨앗이 된다. 여기서 방주에 탑승했던 자들은 ‘생존권’을 부여받은 자가 아니다. 노아는 자신의 가족들 역시 모두 죽어야 하는 존재로 보았고, 자신들(인간)을 제외한 다른 생명들을 보존하는 임무를 가진 존재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들의 생존은 그들 스스로의 의지로 결정하게 된다.
카인의 후손인 ‘두발카인’도 자신의 노력으로 방주에 탑승한다. 이는 방주에 탑승할 수 있는 자는 ‘신의 선택’ 보다는 자신의 의지가 최우선의 기준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생존권’ 역시 동일하다.
여기까지만 해도 기독교인들의 반발이 심하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반(反) 기독교적 영화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상에서 지구상의 생물을 구원한 방주는 변하지 않는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 <2012> (2009년 작)
방주가 인간의 구원자들로 나오는 또 다른 영화로는 재난 영화인 <2012>(2009년 작)이 있다. 여기서의 설정은 마야인들이 미리 예견했던 ‘2012년 지구 종말론’을 소재로 지구 내부의 이상 현상으로 전 지구에 지진과 화산 폭발 등 재난이 겹쳐 발생하자, 그들은 ‘Ship’을 건설하기로 한다. ‘Ship’의 건설과 동시에 ‘Ship’의 승선 티켓을 돈을 받고 팔기 시작하는데, 여기서 그들(치자)은 자신들의 임무를 ‘인간들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자신들의 계층이 그러한 책임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들은 ‘선택받은 자’ 혹은 ‘선택받은 계층’이라는 의식이 숨어있다. 좋은 의미로 본다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이지만 그런 의식 속에서 그들은 돈과 지식과 계층으로 ‘Ship에 탈 수 있는 자’들을 선별하고 있던 셈이 된다.
이는 위 영화인 <노아(Noah)>에서 주인공으로 나온 노아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 노아 역시 자신들이 ‘선택받은 자’라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덕분에 타락천사인 감시자들(Watchers)의 도움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2012>에서 감시자들(Watchers)의 역할은 돈을 주고 티켓을 구입한 이들과 건설에 일조한 사람들, 그리고 지구의 종말을 예측한 이들과 비슷하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 ‘Ship’을 건설하고 그들에게 ‘승선권’을 준다. 이들의 ‘승선권’은 ‘생존권’이며, <노아>의 감시자들이 죽어서 창조주의 곁으로 간 것과 비슷하다. 바로 자신의 역할에 대한 ‘보답’이라는 것이다.
<2012>에서 나왔던 ‘Ship’의 정체는 불분명하게 나타나다 마지막엔 반전이 나온다. 승선권을 비행기를 타고 ‘Ship’에 승선할 장소로 이동하는데, 이동수단으로 ‘비행기’만을 유독 고집한다. 덕분에 관객들은 ‘Ship’의 존재가 ‘비행기’보다 상위의 문명인 우주선(Space Ship)으로 생각하도록 유도하지만, 이후엔 배(ship)의 형상을 한 방주(Ark)로 드러난다. 감독의 의도에는 결국 인간이 살 곳은 지구이며, 그 지구가 위험해진다면 역시 바다로 온 세계가 뒤덮일 것이라는 생각 또한 담겨있다.
배의 건조 직후 ‘Ship’을 ‘Ark(방주)’라고 부르며 그 배에 승선하는데, 이들 모두 각 국의 정상-통수권자나 전문가들, 그리고 돈이 있는 이들이다. 또한 이들의 티켓은 색깔로 구분 지어진다. 즉 ‘탑승권’을 지닌 이들 사이에서도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영화의 절정 부분에서 방주는 파손이 되어 출항할 수 없는 배로 드러난다. 덕분에 각국의 정상들은 이 배의 티켓을 가진 사람들조차 탑승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데, 여기서 주인공 중 한 명은 인류애를 드러내며 결국 탑승게이트를 열게 된다. 이러한 설정은 결국 인류를 구원하는 자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위의 영화인 <노아>에서 노아가 인류의 생존 유무를 결정하였듯이 각국의 정상들, 말하자면 책임 있는 우두머리들이 사람들의 구원 유무를 선택하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재밌는 점은 사람들의 ‘구원자’가 누구고 또 어떻게 그려지느냐 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3호 Ark’에 몰래 탑승하며 일으킨 실수로 게이트는 닫히지 않는데, 그렇게 되면 배는 출항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거기에 해일의 위험이 닥쳐오자 주인공이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물속으로 들어간다. 이러한 ‘시련’을 주인공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게 되자 그의 아들인 노아(Noah)가 도와준다. 여기서 ‘노아’는 구원자로 나선 셈이다. 단지 보조적인 역할에 불과했지만, ‘3호 Ark’에 탑승한 이들의 목숨을 ‘노아’가 구한 셈이다. 성경에서 나온 ‘노아의 방주’가 역시 이 영화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 <딥 임팩트(Deep Impact)> (1998년 작)
위 두 영화처럼 인류의 생존 유무를 ‘결정짓는 방주’로 등장하는 영화가 있기도 하지만, 마지막 대책으로 절망에 가까운 이미지를 가진 방주가 나오는 영화도 있다. 바로 1998년 개봉한 <딥 임팩트(Deep Impact)>이다.
작품에서 그들의 위험은 위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홍수’나 ‘지구의 변화’가 아니라, 외부로부터 날아온 소행성이 지구와 부딪치려고 하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우주로 핵폭탄을 실은 우주선을 쏘아보기도 하고 미사일로 총공격해보기도 하지만 전부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마지막 대책으로 ‘Ark’라고 명명지은 방공호의 입주를 계획하는데, 물론 방공호에 탑승할 자들은 미국인들 대상이지만 정부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다시 선택하기 시작한다.
정부는 국민들을 추첨하여 전화를 걸어 선택되었다고 통보하는 방식으로, ‘Ark’에 태울 이들을 선별하기 시작한다. 이들 역시 ‘선택받은 자’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영화에서도 정부는 특정 계층들을 위한 ‘티켓’을 미리 마련해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몇몇 중에서도 자신의 티켓을 양보하거나 포기하는 이들이 나타난다. 바로 ‘생존권’보다 ‘사랑’을 택한 이들이다. 이것은 이 영화의 주제로, 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귀중한 아이템으로 작용한다.
혜성을 막을 첫 번째 방법으로 혜성을 파괴할 핵폭탄을 실은 ‘메시아(Messiah)’를 올려 보낸다. ‘메시아(Messiah)’는 성서에서 나온 단어로 구주 또는 구세주를 가리키는 말이다. 바로 인간들에게 ‘구세주’의 역할을 하는 존재는 ‘방주’가 아니라 핵폭탄을 실은 우주선 그 자체인 셈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점은 이들의 임무 명이 그리스 신화에서 나온 ‘오리온(Orion)’이라는 점이다. 서로 다른 이야기에서 이름을 따온 것을 보면 아마 그만큼 절박했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에서는 종교에 관한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분명 ‘방주(Ark)’를 차용하고는 있지만, 그들은 단지 모티브만 따온 것이다. 덕분에 ‘인간의 사랑’이라는 주제가 부각되었다. 다수의 인물들이 생존을 포기하고 가족들과 함께 최후를 맞는 선택을 한다. 서로의 오해를 풀고 함께 최후를 맞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가족사진을 보며 평화로이 죽음을 맞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메시아’는 그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여기서 ‘메시아’호의 탑승자들은 자신들이 희생하여 인류를 구원하려는, 말 그대로 ‘인류애’를 실현한 용자들로 그려진다. ‘방주’는 형상만 갖추었지 실질적인 기능을 하기도 전에 지구의 종말이 끝이 나버린다.
‘방주’는 작품에서 얘기한 그대로 ‘최후의 보루’로 나온다. '방주'의 기능조차 확실하게 보장할 수 없어 '최후의 보루'가 되었던 것이지만, '선택된 자'와 '선택되지 못한 자'로 나누는 매개체가 되었다. 인류를 구원하는 존재가 이별을 주는 존재가 되어 하나의 아이러니를 만든 것이다.
이 작품은 1990년대 종말론의 공포를 힘차게 드러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종말론이 더욱 힘을 입었던 것은 바로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으로 갈 수 있는 기술력의 부족 때문이었다. 또한 지구 외에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다른 행성이 없다는 것도 일조했다.
<2012>의 경우에는 다른 행성으로 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았다. 덕분에 ‘Ship’이 우주선이 아닌 배라는 점이 반전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20여 년 전에 개봉한 <딥 임팩트>와 비교했을 때 대중이 생각했던 기술력을 생각한다면 굉장히 큰 발전을 이루었다고 얘기할 수 있다.
● 세 영화에서의 방주
세 영화는 모두 ‘방주(Ark)’가 인류의 최후의 보루로 나온다. 다만 방주의 역할과 상징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인류를 구원하는 존재’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또한 재밌는 점이라면 모두 ‘선택받은 자’들이 탑승 또는 입장한다는 점이다. 영화 <노아>에서는 창조주의 임무를 부여받은 이들이 탑승했다. 창조주의 임무를 부여받지 않고 탑승한 자는 카인의 후손인 ‘두발카인’ 단 한 명뿐인데, 이 인물은 이후에 칼에 찔려 죽는다.
<2012>에서는 ‘선택받은 자’는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이거나, 각 국의 정상, 또는 정부 고위층, 그리고 돈이 많은 사람들이 ‘탑승권’을 부여받는다. 그에 비해 <딥 임팩트>에서는 각 국의 정상과 정부 고위층이 ‘방주’에 들어가지만 그 외의 인원들은 자국민들 중에서 무작위 추첨을 실행한다. 그리고 그들 역시 ‘선택받은 자’가 되어 방주로 들어간다.
이렇듯 <2012>와 <딥 임팩트>에서는 방주의 ‘탑승권’을 가진 ‘선택받은 자’들은 계급 중에서도 상위 계층에 속해있다고 볼 수 있다. ‘탑승권’이 자본주의와 계급주의의 상징으로 나타난 것이다. <노아>에서는 노아로 인해 표면적으로는 ‘생존권’을 신이 내려준 권리로 그려지고는 있지만 사실 그런 표식은 뚜렷하게 나오지 않는다. 때문에 그들의 생존권은 그들이 결정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이런 <노아>에 비해 다른 두 영화는 사회가 점점 문명권으로 발전해 감에 따라 인간의 ‘생존권’에 있어서 계층과 자본이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나타나는 것이다.
● 다른 영화에서의 방주는?
최근 2014년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Interstellar)>에서 비슷하게 등장하기도 한다. 이름이 ‘Ark’로는 나오지 않지만, 지구의 모든 존재들을 보존하는 DNA창고 역할을 한다. 그리고 또한 ‘선택받은 자’라는 개념에 부합되는 존재로 나오지 않고, 인간의 DNA와 인공자궁까지 장착된 절대적 방주로 나타난다. 거기서 탑승자들은 단지 그들의 보금자리를 찾아주는 역할도 나온 것이다.
이처럼 ‘방주(Ark)’의 개념은 문명의 발달에 따라 점점 바뀌어가며 영화 속에서 등장하고 있다. 또한 이 소재로 현대 사회의 모습과 가치가 투영되는 것을 보며 현대 사회의 현재가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있다. 덕분에 앞으로 등장할 영화에서 나타날 방주의 모습은 현대사회의 모습을 어떤 시선으로 어떻게 풀어냈을지 궁금해진다.
7년 전 영화론 수업 때 기말 과제로 썼던 레포트입니다. 3개의 영화를 비교하여 글을 작성하라는 과제였는데 평소에 관심 있게 보던 주제라서 즐겁게 써 내려갔던 것 같아요. 교수님 수업도 참 재미있었는데... 지금 보니 글이 좀 많이 부끄럽긴 하지만 한 번은 공유하고 싶던 글이었어요. 그 당시 교수님께서 주셨던 피드백도 좋았고... 브런치에 올리기 위해 수정도 조금 했습니다. 교수님은 잘 지내고 계실런지...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