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보다 더 소중한 마음의 연결고리
잊혀진 생일, 다시 피어난 마음
어릴 적, 생일은 기다림 그 자체였다. 달력 위에 빨간 크레용으로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그 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시절. 그 동그라미는 단순한 표시가 아니라, 설렘과 기쁨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그 동그라미는 점점 흐려졌다. 생일은 어느새 두려움과 책임의 그림자 속에 묻혀갔다. 결혼 후, 내 생일과 장인의 제사가 같은 날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게 천생연분인가?’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봤다. 그러나 현실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장인의 제사에 함몰된 내 생일은 십수 년간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늦은 귀가길에 예약해둔 두 마리의 통닭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하얀 A4용지에 검은 매직으로 쓰인 “경축 아빠 생신”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초등학생 아이들이 요리 시간에 만든 빵, 통닭, 그리고 시원한 생맥주로 작은 생일 파티장을 꾸며놓고 있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아빠~”
아이들의 박수와 노랫소리, 그리고 아들이 건네는 하얀 편지 봉투. 그 순간, 잊고 지냈던 생일의 의미가 다시 살아났다.
그날 밤, 우두커니 누워 오래전 서울 생활 중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바쁘고 지친 하루 끝에 걸려온 어머니의 전화.
“미역국은 먹었니?”
“뭔 미역국?”
“네 생일이잖아.”
그 짧은 대화 속에 담긴 어머니의 마음은, 그 어떤 선물보다 깊은 울림을 주었다. “가까운 식당 가서 미역국이라도 사 먹어.”라는 말에 담긴 사랑은, 생일을 잊고 살던 내게 다시금 생일의 본질을 일깨워주었다.
생일을 기억해주는 사람, 축하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삶은 따뜻해진다. 물질보다 더 소중한 마음의 연결고리. 오늘, 그 연결고리 덕분에 나는 참 행복하다.
- 시간을 건너온 생일
2017년 8월 26일, 그날 나는 생일을 맞아 글을 썼다.
그때는 몰랐던 감정들이, 오늘 다시 읽으니 새롭다.
빨간 크레용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던 어린 시절의 생일,
장인의 제사에 묻혀 잊혀졌던 생일,
그리고 아이들이 꾸며준 작은 생일 파티.
그 모든 순간이, 오늘의 나를 만든 조각들이었다.
그날의 글은 단지 기록이 아니라,
내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주는 선물이었다.
2025년 8월 29일 김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