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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선

엽서 1989

詩는 매장당했고 낙서는 금지되었다

by 김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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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 1989


6-26

밝은 날, 집으로 가는 길

낯선 골목에서 길을 잃을 뻔했다

밤늦게까지 떠돌며

사람을 만나고 술을 마시는 일도

이젠 버겁다

술값은 올랐고

절주의 다짐은

일주일짜리 약속


6-28

비는 오지 않는다

계획은 흩어지고

대전의 중심가는 먼지 속 경주장

덩치 큰 차들만 달린다

질퍽한 비라도 그리운 날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는

10%의 희망

우리, 기우제를 지내자


7-3

詩는 매장당했고

낙서는 금지되었다

그러나 비는 부슬부슬

신이 나는 날

금지된 언어 속에서

마음은 춤춘다


7-6

장마라지만

비는 오지 않고

더위만 미친 듯이 몰아친다

어젯밤,

잠깐의 소나기

그것이 전부였다


7-8

말하고 싶지 않다

짜증스럽고 부질없다

자만과 허영, 오기로

나를 감싸던 껍질

그 사람 앞에서

나는 나에게 환멸을 느낀다

물러설 수 없는 거리

생각과 행동은 어긋나고

가을이 오기를 바란다


7-11

양산도 없고

우산도 없다

비는 쏟아지고

깨비 우산을 훔쳐 쓴다

맨발로 걷는다

양말도, 운동화도 없이

샌들 하나

나는 왜

없는 것 투성이일까


7-13

병에 걸렸다

거액을 주고 받은 약

사약처럼 손에 쥐고

두려움과 불안 속에

정신을 놓아버린다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엽서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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