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에
어느날 한통의 편지를 받는다. 하나
- 비 오는 날에 -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 흐릿하게 번지는 가로등 불빛이, 그녀의 방 안까지 스며들었다.
J는 책상 앞에 앉아, 오래된 만년필을 손에 쥐고 있었다.
편지를 쓰는 건 오랜만이었다.
아니, 사실 그녀는 매일 밤 편지를 썼다.
단지, 한 번도 보내진 않았을 뿐이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비는 점점 거세졌고, 그녀의 마음도 함께 요동쳤다.
“아저씨,”
편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녀는 그를 아저씨라고 불렀다.
이름도, 나이도 정확히 몰랐지만, 그를 그렇게 부르는 것이 편했다.
그는 색안경을 끼고 있었고, 늘 조용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그녀에게는 너무나 익숙했다.
그 사람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
지난달, 땅속 깊은 곳에 묻은 그 사람.
J의 사랑이었고, 그녀의 세계였다.
그를 잃은 이후, 그녀는 밤마다 편지를 썼다.
그 사람에게, 혹은 그를 닮은 누군가에게.
그리고 그 누군가가, 이제는 아저씨가 되어 있었다.
“사는 게 이런 건가 싶어요,”
J는 편지에 적었다.
“의미 없는 것들을 붙잡고, 좌절하고, 슬퍼하다가 결국엔 아무것도 아닌 채로 흘러가는 것.”
그녀는 자신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모자란 것 같기도 하고, 특별히 잘난 것 같기도 하고.
그저 제 편한 것만 추구하며 살아왔기에,
이룰 수 없는 것들에 더 집착하게 된 것 같다고.
그녀는 창문을 열었다.
어둠뿐이었다.
열한 시가 넘은 늦은 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아저씨, 우리 비 오는 날에만 만나요,”
그녀는 그렇게 썼다.
“그럼 장마 때는 매일 만나겠네요.”
그 말에, 그녀는 혼자 웃었다.
조금은 슬픈 웃음이었다.
편지의 끝자락에서, 그녀는 고백했다.
그 사람은 죽었고,
그 사람을 닮은 아저씨에게 미안하다고.
그를 보며 자꾸만 그 사람을 느껴버린다고.
그래서 언젠가, 그 사람의 그림자가 아닌
오롯이 아저씨만을 느낄 수 있을 때가 오면
그때는 진짜로 그와 마주하고 싶다고.
“꿈속에 놀러 갈게요. 아저씨 방에,”
그녀는 마지막 문장을 적었다.
“그럼 기타를 쳐주세요.”
편지를 접은 그녀는, 그것을 서랍 속에 넣었다.
그곳엔 이미 수십 통의 편지가 있었다.
보내지 못한 말들,
전하지 못한 마음들.
그리고 그날 밤,
J는 기타 소리를 상상하며 잠들었다.
비는 여전히, 그녀의 창밖에서 조용히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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