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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선

혼자된 사랑

외로움의 잔재를 조심스레 씻어낸다.

by 김진호


혼자된 사랑 _ 2025-09-04 copilot.png


혼자된 사랑


Ⅰ.


딸깍—문이 열린다.

어둠 속, 익숙한 손길로 불을 켠다.

그제야, 진짜 혼자가 되었음을 느낀다.


마른 기침이 벽을 타고 퍼진다.

오랜 진통처럼,

능청스러운 가래가 목을 긁는다.


한기가 스며든다.

보일러 스위치를 올린다.

낡은 기계음이 지하에서 울려 퍼진다.

늙은 보일러가

묵직한 울음을 토해낸다.


냉기를 몰아내려면

꽤 시간이 걸릴 듯하다.

그저 멍하니 앉아

기다려 보기로 한다.


Ⅱ.


가슴을 씻는다.

이빨을 닦고,

발을 씻고,

얼굴도 씻는다.


무엇보다 소중한

내 몸 구석구석에 남은

외로움의 잔재를

조심스레 씻어낸다.


Ⅲ.


낡은 천장 아래,

형광등 불빛이 깜빡인다.

눈이 출렁거린다.


라디오에서는

10대들의 웃음 섞인 이야기만 흐른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숫자를 센다.

코끼리 하나, 코끼리 둘, 코끼리 셋...

코끼리 백, 백하나...

코끼리 십사만팔천구백이십삼...


어느새 날이 밝아온다.

아침이 온다.


#혼자의밤 #고요한진통 #외로움씻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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