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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자리작가 May 29. 2024

이해에 관하여

사진 출처 : leolo212



오늘도 글감을 떠올리며 책상에 앉아 고민하던 중 문득 한 분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름 없는 그분들의 삶을 이해하고 싶어요. 그래서 그분들에게 ‘땅 위의 어부’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러닝이란 공통된 취미를 가졌던 그분이라 기억에 오래 남았다.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과 거리를 방황하는 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세상 모든 것들에 이름이 있지만 그분들을 가리키는 말은 없다며 안타까워하시며 했던 말이었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도 다른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볼일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말할 것이다. 아무리 미치지 않는 이상 나는 그럴 일이 없다고.


그럼 물어본다. 내가 이런 행동을 한다면, 그런 행동이 익숙해진다면 내 가치관과 신념들이 얼마나 무너져야 그렇게 될 수 있는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역시 하루아침에 그렇게 될 수 있다. 가령 몸이 아프게 된 경우다.


병든 이의 삶이 아프고 고달프다는 건 생각할 수 있어도 그분들의 정신적 고통까지 이해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거다.


지금 내가 일하는 병원의 경우 노화로 인해 병을 얻은 분 환자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병의 종류에 따라 어느 정도 나이를 탄다. 보통 7, 80대 노년의 환자분들이 대부분이지만 의외로 장년분들도 계시고, 심지어 20대 어린 환자분들도 있다. 그분들에게 이러한 삶은 일상이다. 우리는 이런 분들에게 안타깝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고 포기하며 받아들였는지 헤아리지 못한다.


과거엔 사람들의 마음을 알려고 많은 애를 썼다. 역사의 위인들과 미디어에 나오는 업적을 남긴 유명한 사람들부터 강도와 살인 등 극악무도한 범죄자까지도 이해하려 애썼다. 발자국을 따라 걷듯이 그들의 삶을 이해한다면 장점을 배워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고, 나쁜 점들은 그 기준 삼아 주변 사람들을 통찰하여 가려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그들의 마음을 안다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선한 이의 마음도, 악한 이의 마음도 내가 이해하게 된다면 그들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 노력에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여전했고, 그 이유를 내의 부족함에서 찾았다. 시간이 지나 내가 타인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나서야 자책을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는 세상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 아무리 책을 보고, 그들의 삶이 담긴 다큐프로그램을 본다 해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으니까.

그냥 말해주고 싶었다. 타인을 이해하지 못해 스스로를 탓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건 당신들 탓이 아니며 욕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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