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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자리작가 Sep 14. 2024

상가의 추억

스치는 기억

90년 대. 아직은 서로 간의 정이 있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 시기 경비아저씨는 우리 얼굴과 이름을 외고 계셨고, 한 동에 사는 사람이라면 서슴없이 집에 놀러 다니던 때였다. 항상 노는 곳이 같았기에 우린 연락이나 약속 없이도 한 곳에서 만나 놀았다. 그곳은 바로 상가였다. 상가엔 시멘트 향과 먼지 특유의 꿉꿉한 냄새가 났다. 지금 생각해 보니 지하 주차장 나는 냄새와 비슷했다. 우린 항상 그곳에서 모여 놀았다.


놀이터보다 상가를 더 선호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첫 째는 학원이다. 일단 상가에는 학원이 모여 있었다. 여러 학원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피아노 학원이었다. 내 뜻은 아니었고, 그저 부모님의 뜻에 따라다녔다. 의외로 내 주변엔 상가의 피아노 학원을 다녔던 친구들이 잘 없었는데 아마 피아노는 여자애들이 주로 배웠기 때문이다. (당시 남자애들은 여자애들과 친하면 이상하게 놀림받는 시대였다) 그 외 학원들이 몇 있으니 학원 끝난 아이들은 자연스레 상가에서 만나게 된다. 그럼 거기가 우리 놀이터가 된다.


두 번째 기억은 슈퍼마켓과 문구점의 존재다. 그때는 이상하다는 걸 못 느꼈는데 슈퍼마켓이 지하상가 끝에 있었다. 거기서 먹었던 군것질거리가 생각났다. 봉지과자는 비싼 군것질에 속해 잘 안 먹었고, 짝꿍이나 새콤달콤 같은 저렴은 것들을 먹은 게 기억난다.

그리고 슈퍼마켓은 지하에 있지만 문구점은 1층에 있었다. 다양한 놀거리가 있으며 100원 이 내의 군것질거리를 살 수 있는 잔치집이었다.


마지막 이유로 우린 어른들에게 혼나면서도 상가에서 노는 걸 고집했는데 바로 ‘놀이방식’ 때문이었다.


그 당시 우리의 주 놀거리는 바로 ‘팽이’였다. 우린 줄팽이세대의 마지막이었고, 그래서였는지 나름 진지하게 팽이를 갖고 놀았다.

자고로 줄팽이를 돌리려면 일단 바닥이 단단하고 수평이 맞아야 하며, 표면이 매끄러워야 한다. 이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곳이 어디였냐, 바로 상가였다. 상가는 줄팽이를 돌리기에 가장 이상적인 곳이었다. 그래서 항상 팽이를 들고 상가에 가면 친분이 있는 아이든 없는 아이든 거기서 팽이를 돌리고 있다. 설령 아무도 없더라도 나 혼자 거기서 팽이를 돌리고 있으면 어김없이 친구들이 나와 팽이를 돌리곤 했다. 그 정도로 우린 팽이에 진심이었다.


팽이치기가 아니더라도 거기서 놀 건 많았다. 바로 딱지치기. 한쪽에서 팽이를 치면 한쪽에선 딱지를 치기도 했다.

아까도 말했듯이 상가는 바닥이 평평하게 잘 다듬어져있다 보니 딱지를 칠 때 공평하다는 메리트가 있다. 팽이치기를 하다 지겨우면 다들 가지고 있는 딱지를 챙겼다.

딱지도 다 같은 딱지가 아니었다. 정성스럽게 풀을 먹인 딱지도 있었고, 테이프를 감은 딱지도 있었다. 그렇게 ‘잘 안 넘어가면서 잘 넘기는 딱지’를 지향하는 자신만의 소중한 딱지를 갖고 다니다 패배해서 뺏기는 날이면 울면서 집에 가기도 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시간이 지나 종이 딱지는 에나맬 재질의 캐릭터 딱지가 나오며 변하기도 했다.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작은 딱지부터 뽑기 상품으로 나오는 어른 손바닥만 한 딱지까지, 딱지로서의 가치보단 인기 캐릭터의 상품을 소유하고 있다는 기쁨, 지금의 피규어 같은 느낌이 더 컸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그 모습도 변해갔다. 줄팽이는 ‘블레이드’라 불리는 다른 팽이로 바뀌었고, 미니카 같은 장난감이나 다양한 놀거리가 나왔다. 그럼에도 우린 상가를 벗어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친구들이 하나 둘 이사를 갔다. 이제 막 떠올랐는데 이 시기에 경비아저씨가 바뀌었다. 그 아저씨는 우리에게 상냥하고 인자한 웃음을 보여주지도, 우리 얼굴을 알아봐 주지도 않았다. 낯선 관계니 어쩜 당연한 건데도 서운했던 기억이 난다.




얼마 후 우리 집도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사 간 곳은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새 아파트로 입주를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새 아파트에는 복도가 있는 커다란 상가건물이 없었다. 집 앞에 길게 늘어선 1층 상가만이 있었고, 거기엔 거주지의 필수 요소인 마트, 정육점, 미용실, 세탁소가 들어섰다.

상가가 없으니 놀이터를 찾았다. 친구들은 다 거기서 만났으니까. 어쩌면 내 또래 친구들이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놀이터는 이 전 아파트의 3/1 가량 밖에 안 되는 크기였다. 대신 그런 놀이터가 아파트 내 4곳이나 있었다. 전에 있던 놀이터보다 수는 많았지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처음엔 신축 아파트라 사람들이 없어서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놀이터엔 아무도 놀러 오는 이들이 없었다. 그렇게 개학만을 기다리며 친구를 만날 때를 기다렸다.


그 시기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며 난 새로운 놀거리에 적응했다. 축구나 농구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학교 운동장에 모였고, 그 외는 PC방에서 게임을 즐겼다. 컴퓨터와 인터넷만 있으면 즐길 수 있는 온라인 게임이 나오며 더 이상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문구점에 들려도 팽이나 딱지 대신 온라인게임 재화를 위해 문화상품권을 샀다.


그 후 한 번도 상가나 놀이터를 찾은 기억은 없었다. 가끔 하굣길에 지나치는 보이는 놀이터를 보면 삭막했다. 아이들이 있어야 할 곳에 아이들이 없으니까. 그 시기가 어쩌면 마지막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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