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사람들처럼 우리의 유년기 추억은 디즈니 만화를 즐기며 자랐습니다. 일요일 아침이면 tv앞에 앉아 디즈니 미니시리즈를 봤고, 대여점에 들러 만화영화를 봤으며 가방과 필기구엔 미키를 비롯한 디즈니 캐릭터들이 그려져 있었죠. 우리의 유년시절은 늘 디즈니 캐릭터들과 함께였습니다.
그 아이들이 크고 자라 가정을 이루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말합니다. 시대를 넘어 여전히 디즈니는 아이들의 사랑을 받는다고요. 웃으며 말하는 그들을 보며 느꼈습니다. 그들 역시 어린 시절의 그때처럼 디즈니를 애정하고 있음을 말이죠.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 이야기를 동경하는 한 사람으로서 디즈니는 무엇을 추구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에드 캣멀은 이렇게 말했다. “창의성은 직급에 따라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저 나오는 곳에서 나올 뿐이지요.” 이 말은 그와 존이 디즈니사에 몰고 온 조직 문화를 설명해 준다.
몸소 한층 더 노력하고 여러분의 직원들도 그렇게 하도록 격려하라. 위험을 감수해도 괜찮다는 사실을 알게 하여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마음껏 솟아오르게 하라. 무엇보다도 모든 이들이 즐길 수 있도록 격려하라!
아이디어는 자유로워야 한다.
그들은 아이디어의 중요성을 말하며 덧붙여 말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아이디어 가치에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과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지금 내가 쓰는 글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오래전 쓴 글을 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개연성은 부족하고 형식도 맞지 않아 엉망진창인 글이지만 자유롭고 즐거운 느낌과 함께 저도 놀랄 만큼 아이디어가 깃들어 있습니다. 비록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그 안에선 나름의 아이디어가 빛을 발했던 거죠.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그중 하지 말아야 할 것들도 배우게 됩니다. 처음엔 저마다 달랐던 가치관들이 경험이 쌓이며 서서 평이해지는 거죠.
그러니 아이디어는 자유로워야 합니다.
꿈꾸고 믿고 도전하고 실행하라.
수십 년 동안 디즈니가 성공을 거둔 곳에는 어김없이 이 네 단어가 있었다.
꿈이라는 건 참 묘한 존재입니다.
누군가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한편으론 부럽지만, 그 길이 너무 험난해 보이면 ‘그만두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말하게 되죠. 그 길이 얼마나 힘든지 짐작되기도 하고, 실패하면 가진 걸 잃을지도 모릅니다. 또 오랫동안 품어온 꿈은 현실과 멀어지며 환상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현실적인 고민이 따르고,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과연 내가 이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만약 이루지 못한다면, 나는 쓸모없는 존재일 뿐일까?”
사실 내 성공을 다른 누군가가 대신 챙겨주지 않듯, 내 실패 또한 누가 대신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꿈을 포기하는 것이고요.
하나 속내를 가장 잘 아는 이는 바로 꿈을 꾸는 사람일 겁니다.
가장 무섭고 두려워하지만 그럼에도 나아가는 미련하지만 용기 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니 혹시 누군가의 꿈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따뜻한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세요.
그 작은 격려 하나가 누군가의 발걸음을 일으키고, 마음속 희망의 불씨를 지펴 줄 수 있습니다.
꿈을 꾸는 이에게 필요한 건 꿈을 이루어줄 요정 대모가 아닌, 빛이 되어줄 누군가가 필요할 뿐이니까요.
디즈니사의 성공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디즈니사가 다른 기업을 점검할 수 있는 판단의 기준이며 다른 기업들이 배울 만한 모범기업이 될 수 있었던 요인은 일관적인 경영방침, 집요한 고객 서비스, 사람들에 대한 헌신, 탁월한 독창성이었다.
과연 지금의 디즈니사 작품들을 보면서 과연 그들이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지에 대한 의문이 듭니다.
제작자들은 본인이 지향하는 가치와 다르면 틀렸다 비판하고 조롱합니다.
주연 배우들은 원작에 대한 존중이 없어 보여요. 자신의 정체성을 억지로 작품에 끼워 넣는 행위들로 그것을 증명하려는 행위에 진절머리가 납니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우월성을 증명하는데 작품을 이용했을 뿐이에요. 거기엔 관객에 대한 존중은 없죠. 과연 그런 사람들이 만든 작품이, 우리가 느꼈던 행복과 사랑을 느끼게 해 줄 수 있을까요?
언젠가는 우리가 사랑했던 디즈니로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