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유튜브 전성시대다. 한 유튜브 채널의 하루 수익이 지상파 방송사의 하루 광고 매출과 같아졌으며, KBS와 MBC는 모두 비상 경영 체제를 선포했다. 어디 그뿐인가. 여러 해에 걸친 적자 운영체제는 더 이상 특별한 현상이 아니게 되었으며, 제작비 절감을 위해서라면 드라마 시간대에 예능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월화드라마를 폐지하기도 한다. 단순한 지상파의 위기라고 볼 수 없는 실재하는 위협임을 인정해야 할 때다. 생각해보면 너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아니, 심지어는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당장의 시장경제 정론만 살펴봐도 그렇다. 수요를 확보하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퇴출된다는 것. 이제 지상파는 차별화를 걱정하기보다 당장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
방송사들의 적자 운영은 곧 광고수익과 연결된다. 그리고 광고수익은 철저하게 시청자의 움직임을 따른다. 답은 사실 이미 나와있다. 시청자들이 지상파를 더 이상 선택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떨어지는 시청률, 늘어나는 제작비, 그리고 계속해서 줄어드는 수익에 말 그대로 사면초가인 상황이다. 여기서 고민이 하나 생긴다. ‘그렇다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지상파가 가지는 고유의 성격들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가?’ 사실 정확한 해답은 없겠지만, 진지한 숙고를 바탕으로 지상파만이 가지는 공공성과 이를 현 시장 체계에서 경쟁력으로 작용하게 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만은 명확해 보인다.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과연 어떤 지점에서 어떤 방식으로의 콘텐츠 소구가 필요하고, 또 혁신이 필요할까, 총 두 가지 측면에서 정리를 해보았다.
지상파의 위기가 비롯된 지점은 바로 ‘주류 플랫폼의 변화’다. 집단화되었던 매스미디어 시대의 지상파 소비는 하나의 보편적인 흐름이었다. 예컨대 모든 요일을 지상파의 프로그램 하나로 대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금요일엔 뮤직뱅크를 보고, 토요일엔 쇼 음악중심, 일요일엔 인기가요를 보며 가요 무대를 즐겼고, 토요일은 곧 가족들과 무한도전을 시청하며 저녁을 먹는 시간이었다. 한 마디로 암묵적인 룰이었다는 것이다. 더러운 드립으로 토크가 난무할 때면 유재석이 ‘다들 저녁 드시고 있을 시간에 비위 상하게 그게 뭡니까’하며 저지했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만큼 철저하게 집단화된 충성심 넘치는 시청자들을 겨냥한 연출이, 당시 프로그램의 주를 이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엔 이런 연출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플랫폼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이를 체감할 수 있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본방 사수’다. 요즘 지상파 프로그램을 본방사수하기 위해 TV 앞에 모여 앉는 시청자들은 거의 없다.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매체 환경 자체가 시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약 없는 매체 환경의 영향과 함께 ‘본방’을 꼭 챙겨 보아야 한다는 이유가 옅어지면서 너무 당연하게 콘텐츠 소비는 파편화되고 개별화되는 양상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다양해지는 매체 환경 속에서 주류 플랫폼은 커다란 TV가 아닌 즉각적인 시청과 온라인 소통이 가능한 OTT 플랫폼(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콘텐츠를 이용하는 서비스)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이는 자연스레 지상파 TV와 같은 레거시 미디어들의 혁신의 당위성으로 이어진다. TV 지상파도 타 OTT 사업처럼 상업성을 갖춰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타 OTT 서비스를 이용하는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보며 거기서 밖에 얻을 수 없는 경쟁력 있는 효용을 지상파의 영역으로 가져오려는 접합의 시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MBC는 사실 이러한 고민을 꽤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예능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 그리고 뉴미디어 채널인 <14F>, <5분 순삭>등이다. <마리텔>은 지난 시즌, ‘다음TV팟’에서 생중계를 진행하며 큰 호응을 하에 종영한 바 있다. 이제는 VOL2로 찾아왔다. 그리고 바로 그 중심엔 신 플랫폼, ‘트위치’가 있었다. 보다 쉬운 접근성으로 인해 많은 시청자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시청자들의 실시간 참여가 가능하다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신플랫폼 ‘트위치’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는 없어 보이며, VOL1 당시 활용한 카카오 팟의 개편으로 인해 떨어진 이용자 수를 보완하기 위해서도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떨어진 영향력과 시청자 수를 확보하기 위한 고민 하에서 플랫폼을 다변화시키는 시도는 확실히 납득이 갈만한 것들이었다. 그럼 TV 밖에서의 시도는 어떨까? 아예 TV를 벗어나 보자.
14F는 MBC 사옥의 14층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해당 층에 위치한 뉴미디어센터 제작팀이 선정하는 아이템들을 중심으로 업로드하는 뉴스 콘텐츠를 일컫는 말이다. 이들의 타깃 시청자들은 다름 아닌 20대 중반들. 그래서인지 다루는 소재 또한 오피셜 라이프와 헬스&뷰티, 다양성, 컬처 등이 주가 되며, 이들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의 채널을 통해 방송이 된다. <14F>만이 가진 또 다른 독특한 점 중 하나는 바로 세로 형식의 화면이다. 본 콘텐츠가 주로 모바일 기기를 비롯한 온라인 채널에 업로드된다는 점을 살려 스마트폰의 액정 비율에 착안한 화면대로 콘텐츠를 바꾼다는 것, 다시 말해 아예 콘텐츠가 유통되는 플랫폼 형태에 맞게 콘텐츠의 형식을 바꿔버린 것이다. 이처럼 플랫폼의 혁신은 콘텐츠의 형식뿐 아니라 내용도 바꿔버린다.
<5분 순삭>은 말 그대로, 제목에 충실한 콘텐츠를 업로드한다. 말 그대로 과거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렸던 구작 예능들ㅡ하이킥 시리즈, 무한도전 시리즈 등ㅡ을 단 5분이라는 시간으로 쪼개어 유튜브 채널에 재업로드하는 것이다. 특히나 본 채널의 인기 요인 중 하나는 바로 자막일 것이다. 과거의 콘텐츠를 편집해 올릴 뿐이지만, 현시대의 흐름과 트렌드에 맞는 다양한 자막들을 사용함으로써 시청자들을 다수 확보하고 있다. 유튜브라는 신 플랫폼에서, 구 콘텐츠를 성공적으로 이식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시청률과 가장 직관적으로 연결되는 전략 중 하나가 바로 ‘편성 전략’이다. 지상파의 드라마가 확실히 비지상파의 드라마보다 화제성 측면에서도, 실질적인 시청률에서도 뒤쳐지는 상황에서 날카로운 편성 전략은 차라리 돌파구이자 대안이 될 수 있다. 경쟁 방송사보다 5분만 먼저 방영을 시작해도 선점 효과로 인한 우위 시청률을 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MBC는 이러한 편성 부문에서도 매서운 개혁을 단행했다. 무려 30년 넘게 이어오던 저녁 10시 드라마를 9시로 앞당긴 것이다. 이는 JTBC나 TVN 등의 종편 드라마들이 구축한 9시 30분 편성을 염두에 둔 공격적인 편성 방식으로, 그 첫출발은 바로 <봄밤>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시즌제 드라마의 활약도 있었다. MBC의 <검법 남녀>는 시즌1부터 촘촘한 전개와 탄탄한 연출 및 구성으로 작품성을 검증받으며 시청자들의 많은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시즌2가 방영되었다. 민감한 사안들을 풀어내면서 꾸준히 10%대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한 현재, 시즌3 제작까지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드라마의 일회적 편성이 아닌 지상파에서 성공한 시즌제 편성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의의가 크다.
결국 이는 매일같이 쏟아지는 드라마들과 그 속에 부재한 경쟁력을 개혁하는 과정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시청자들의 콘텐츠 소비방식은 한없이 달라지는 가운데, 방송사들은 똑같은 편성 방식만을 고수해서는 안된다. 이는 특정 방송시간을 기다리는 시청자들을 겨냥하는 것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며, 10시는 곧 드라마라는 암묵적인 공식을 깨버려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OTT와 IPTV 등을 비롯한 다양한 스트리밍 서비스로 본방사수라는 개념 자체가 옅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연한 편성의 흐름을 만들어 내야 한다.
진부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 답은 명확하다. 확실한 답이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도전을 한다고는 하지만 어떤 개혁 방식이 또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명확하지 않은 현시점에서 과연 지상파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걸까, 우선 과거의 영예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약화된 플랫폼 파워와 기존의 고착화된 시스템 등은 경쟁력 하락의 주원인임을 인지하고, 또 인정해야 한다. 변화는 그러한 인지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너무 당연하게도 답은 콘텐츠에 있다고 본다. 경쟁력 있는 창작자들을 확보하고, 그들을 끊임없이, 그리고 안정적으로 지원해 주어야 한다. 아무리 플랫폼이 접근성 좋게 혁신하고, 편성 방식이 소비자들의 생활 및 휴식 주기와 적절히 조화될지라도 콘텐츠가 경쟁력이 없다면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탄탄한 콘텐츠는 곧 다수의 시청자 확보의 토대가 된다. 지상파가 끝까지 가져가야 할 공공주파수를 활용해 공공성을 제고하려는 노력이 수반된다면 더더욱 좋을지도 모르겠다. 변화의 물결에 맞춰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지상파에 일단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이러한 경쟁의 흐름 속에서 MBC만의 색과 감을 살린 콘텐츠들을 기대해본다. 이제는 그들이 말했던 바와 같이 정말 새로움을 탐험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