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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연 Sep 19. 2019

MBC가 언론 신뢰도를 회복하려면





최근에 감명 깊게 본 미드가 하나 있다. 바로 HBO방송사가 자체 제작한 <뉴스룸>이다. 제목에서부터 감이 왔겠지만, 그렇다. 바로 방송 뉴스를 만드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드라마에선 자본의 흐름과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진정한 팩트만을 전하고자 하는 가상의 방송국, ACN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건들이 보도되고 또 전개된다. 지주회사의 부당한 이익을 외면해야 하는가, 시청률과 뉴스의 질은 반드시 비례하는가 등 방송 언론에 관심이 있는 누구라면 생각해보았을 딜레마와 고민들은 한국 언론의 현실과도 많이 닮아 보였다. 


결국 모든 소재와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것은 바로 ‘뉴스 신뢰도’였다. “방송은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뉴스룸>은 이같이 단호한 신념 하에 방송을 제작한다. 일례로 분초를 앞다투는 속보 경쟁 속에서도 정확한 팩트가 체크되지 않는다면 경쟁 방송사들이 속보를 내더라도 저들은 유보한다. 속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함으로써 얻게 되는 시청률보다 더 숭고한 가치가 바로 뉴스 자체의 질과 신뢰도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나는 이를 보며 너도나도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속보라며 뿌리는 한국의 방송 언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옥스퍼드 대학교 부설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는 매해 디지털 뉴스 생태계를 분석하고 이에 관한 전반적인 언론 신뢰도를 평가한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올해의 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조사 대상국인 38개국 중 꼴찌인 38위를 차지했으며 이는 3년 연속 꼴찌라는 충격적인 결과의 연장선이었다.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가 보자. 국내의 방송 및 신문 언론 신뢰도를 평가한 자료에 따르면 JTBC가 방송 언론 중 신뢰도 1위를, 그리고 MBC가 지상파 신뢰도 꼴찌를 기록했다. 뉴스 이용 빈도에서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일주일간 JTBC에서 한 번 이상 뉴스를 시청하는 응답자의 비율이 가장 많았으며(50%), MBC에서 한 번 이상 뉴스를 시청하는 응답자의 비율은 가장 저조했다. (21%) 사실상 MBC는 JTBC와 지상파 3사 중 채널 및 뉴스 신뢰도와 이용률이 가장 낮았던 것이다.  


사실 가장 어렵고 복합적인 개념이 바로 ‘언론 신뢰도’이다. 하나의 명료한 개념 한 줄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많은 현상을 포괄하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더더욱 신중하고 진지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이다. 공영 뉴스를 신뢰하지 않고 떠나는 시청자들, 그리고 온갖 뉴미디어 플랫폼에서 부지기수로 생겨나는 가짜 뉴스에 열광하는 시청자들. 이런 상황에서 MBC는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와이드 뉴스로의 편성이 딱 6개월을 맞이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추락한 신뢰도 회복을 위한 방법은 지체 없이 마련되어야 한다. 과연 그 방법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방송뉴스의 정체성 확립이 필요하다. 


소위 현재 MBC 뉴스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라고 할 때, 그 어느 누구도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않는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말 그대로 시청자들의 기억에 명확히 남는 이미지가 없기 때문이다. 과거 MBC 뉴스가 사랑받았던 이유는 촌철살인과 같은 멘트들의 덕이 컸다. 예컨대 신경민 앵커는 소신을 담은 대담하고도 직설적인 뉴스 클로징 멘트로 유명했으며, 해당 멘트는 아직까지 회자될 만큼의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허나 요즘은 그러한 멘트를 찾아볼 수 없다. 변화하는 매체 환경과 쏟아지는 정보들로 인해 수용자들이 나름대로 클로징 멘트를 정립할 수 있다는 점, 그래서 더더욱 클로징 멘트의 선정에 조심스럽다는 점 등이 그 이유라면 이유일까, 허나 그만큼 직설적으로 시청자들에게 화두를 던지는 MBC만의 촌철살인이 옅어졌다는 점만은 분명하며, 이는 해당 뉴스의 정체성 부재를 부추길 뿐이다.


현 뉴스데스크의 왕종명 앵커에 따르면, 과거 MBC 뉴스의 DNA는 ‘삐딱함’이었다고 한다. 낮은 곳에 있으며 체험으로 체득한 DNA는 약한 자들을 대변하고 또 강자들을 감시하고 비판하며 또 꼬집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MBC 뉴스만이 가지고 있는 독보적인 특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매일매일의 뉴스에 이와 같은 아이템만을 선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이러한 기본 정신 하에 신설된 코너가 있다. 바로 ‘바로 간다’ 코너이다. 일단 부딪혀보고 경험하기 위해 가보는, MBC만의 삐딱한 정신과 맥을 함께 하는 코너. 어느 정도의 납득은 가지만 사실은 부족하게 느껴진다. 방송뉴스의 정체성은 무엇보다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코너의 신설을 넘어서 과거 시청자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던져주며 잘못된 현실을 꼬집는 촌철살인 같은 한마디처럼 강력한 정체성이 수반될 때 시청자들은 이들을 신뢰할 수 있는 매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저 무난한 취재 소재를 바탕으로 정말 ‘바로 가서’ 취재하는 것을 리포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권력을 감시하는 진정한 방송언론으로서의 정체성 정립이 필요하다.




팩트체킹 코너가 필요하다. 


신뢰도의 가장 기초적인 기반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보도에 관한 팩트 체킹이다. 모든 것을 떠나 해당 보도의 진위여부 자체가 명확하지 못하다면 이는 언론 신뢰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팩트체킹의 시대’라는 말에 걸맞게 지상파들과 종편 방송사들이 프로젝트성이든, 아니든 관련 코너를 신설하고 있는 상황은 꼭 그러한 현상들을 대변해주는 것만 같다. 허나 MBC는 현재 그러한 팩트체킹 코너를 가지고 있지 않다. 조금 더 정확히 짚어보자면 존재했었으나, 방송 4회 차만에 폐지가 되었다. 


@팩트 설명해주는 기자


올해 3월 개설된 ‘팩트 설명해주는 기자(팩 설기)’라는 코너가 바로 그 예다. 이는 사실 관계를 조금 더 쉽고 자세히 설명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팩트 체크의 코너로 양효걸 기자의 전담코너이기도 했다. 하지만 본 코너는 안타깝게도 방송 4회 만에 폐지되고 말았다. 물론 이후 가짜 뉴스 타파를 위한 팩트 체킹 프로그램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가 편성되기는 했으나,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측면이 강하고 또 탐사형 저널리즘이라는 점에서 뉴스 프로그램에 편성되는 팩트체킹 코너와는 결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수강했던 미디어 저널리즘 수업이 생각난다. 교수님께서는 요즘의 뉴스 팩트 체크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하시며 본 코너엔 많은 말들이 필요 없다고 하셨다. 진실 혹은 거짓임을 판단하기 이전에 늘어놓는 부연 설명은 필요가 없는 것이며, 팩트 체크라는 것은 말 그대로 ‘팩트’를 ‘체크’하면 되는 것이라는 거다. 당시 들었던 그 말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 어쩌면 그 말이 정답이지 않을까. 범람하는 가짜 뉴스 시대에서 방송 뉴스는 온갖 번잡한 수식어들을 갖다 대며 진실과 거짓을 뭉툭하게 가려내기보다, 각각의 이슈와 사건들에 대한 현상이 팩트인지 아닌지를 명료하게 판단하는 바로미터와 같은 기능을 해야 한다.  


물론 진위의 판정이 칼로 자르듯 명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안에 따라 당시엔 주장했던 팩트인 사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거짓으로 변할 수도 있을 수 있다. 허나 그러한 변명이  ‘팩트체킹은 필요 없다’는 주장을 정당화시켜선 안된다. 언론사만의 독자적인 결정을 보여주지 않고,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자료들을 충분히 시청자들에게 제공하며 시청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해당 보도의 투명성을 높이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지금 시대에 필요한 것은, 그리고 저조한 신뢰도를 가진 MBC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러한 팩트 체크이다. 





| 와이드 뉴스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MBC는 올해 3월 18일 뉴스데스크의 시작 시간을 기존의 8시에서 30분 앞당긴 7시 30분으로 정했다. 이는 지상파 3사 및 방송 뉴스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JTBC를 통틀어 가장 빠른 시간대로, 대다수의 방송 뉴스가 8시 동시간대 방영한다는 점에서 출혈경쟁을 피하고 조금이라도 속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노력이 돋보이는 전략이었다. 물론 그로 인한 시청률은 조금 올랐다. 허나 내용은 다소 아쉬운 수준이었다. 


실제로 와이드 뉴스로의 개편 직후는 깊이 있는 보도가 주를 이루며 단발성 사고 기사의 비율은 적은 편에 속했다. 허나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런 시사하는 바가 없는 단발성 사고 및 사건들이 ‘85분’ 뉴스를 채우기 시작했다. 물론 그러한 사고와 사건의 보도가 의미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연 방송 시작 시간을 앞당겨서 확보한 30분이라는 시간이 굳이 이러한 단발적인 보도를 채우는 정도의 가치냐는 것이다. 심지어는 방송에 쓰이는 실제 자료 화면 또한 사고 현장의 CCTV나 블랙박스 영상이 대다수인 단순 리포트식의 보도였다. 조금 더 깊이 있는 맥락의 보도가 필요한 시점이자, 와이드 뉴스라는 전략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지점이다. 


물론 와이드 뉴스로 인해 MBC가 성취해낸 성과도 있다. <장미와 빵>, <엉터리 석면지도> 등 그들만이 구축해 낸 독자적인 의제를 중심으로 깊이감 있는 기획 보도를 전개했던 것이 바로 그 예시다. 실제로 해당 보도 및 취재는 각종 기자상 수상과 관련법이 발의라는 지대한 영향력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는 와이드화 전략으로 인해 강화될 수 있었던 경쟁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MBC가 이를 기억하며 초심을 찾고, 깊이감 있는 보도로의 혁신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MBC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는 무형의 위협이 아닌 실재하는, 그리고 대응해야 하는 위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양이 아닌 질로 승부하는, 깊이감 있는 기획보도로 채워진 와이드 뉴스가 필요하다. 






언론 신뢰도가 가장 낮은 대한민국, 하지만 이는 다시 말하자면 그만큼 언론에 대한 비판이 강한 환경, 그리고 높은 저널리즘 품질을 요구하는 시민이 많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신뢰도가 중요한 것은 그러한 시민들이 언론을 통해 사회를 조망하기 때문이며 이는 곧 사회 신뢰도의 향상과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이다. 


“100명이 보는 좋은 프로가 좋지, 100만 명이 보는 나쁜 프로는 안돼.” 미드 <뉴스룸>에서 PD 맥킨지와 앵커 맥어보이가 고수하는 이 철학은 마치 한국뿐 아니라 자극적인 옐로 저널리즘에 빠지게 되는 전 세계의 방송언론들을 겨냥하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MBC가 한 때 말했던 것처럼, 그리고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당장의 단기간적 성과에 휘둘리기보다 자체적인 뉴스의 퀄리티에 신경을 썼으면 한다. 분명 진지한 숙고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잘 만들어진 뉴스는 결과적으로도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이 직접 찾아보는 뉴스 프로그램이 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바로 방송 뉴스의 책무 아닐까. 


신뢰라는 것은 쉽게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는 다시 해석하자면 한 번 잘 쌓은 신뢰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기본에 충실하자. 시청자는 신뢰할 수 있는 뉴스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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