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운동회의 뭉클한 추억 한 스푼
저녁밥을 먹는데 아이가 다리가 욱신 거린다고 마사지를 해달라고 했다.
"갑자기 다리가 왜?"
"오늘 체육대회 연습했어"
"아~운동회 같은 거? 엄마 때는 늘 가을에 했었는데...."
"엄마는 근데 체육대회 때 달리기 몇 등 했어?"
"음~~ 항상 꼴찌?"
내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부모님들이 가을 운동회에 늘 참석하셨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이 6년 동안 한 번도 오지 않으셔서 그렇게 크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날도 달리기 출발선에 섰다.
우리 담임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중간에 넘어져도 끝까지 달리는 거야"
"탕" 둔탁한 출발 신호 소리에 일제히 앞을 향해 달려 나갔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달렸지만.... 점점 아이들의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바닥에 튀어나온 돌부리에 그만 넘어지고야 말았다.
'으악... 너무 창피해. 어쩌지?'
하지만 나는 말을 아주 잘 듣는 학생이었다.
'아!! 선생님이 끝까지 뛰라고 했잖아'
그래서 나는 벌떡 일어나서 결승선까지 뛰어갔다.
담임선생님이 쫓아오셨다.
무릎이 까져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던 거다.
양호 선생님이 오시고 나는 간단한 처치를 받고는 꼴찌 줄에 다시 조용히 앉았다.
옆에 있는 1,2,3등 줄이 앉은 아이들이 너무 부럽다.
그 당시는 등수별로 앉혀서 공책을 상품으로 주었기 때문에 올해가 6학년 마지막인데도 나는 여전히 꼴찌 줄에 앉아있었던 거다.
단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한 공책.... 나는 늘 6등 줄, 꼴찌 줄에 있었다.
잠시의 휴식을 뒤로하고 또 다른 달리기 시작!! 이번 달리기는 뛰다가 바닥에 적힌 종이를 하나 들고서 그 종이에 적힌 사람과 같이 뛰는 달리기였다.
출발선에서 두근두근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드디어 출발!!! 후다닥 뛰어가 남은 종이 한 장을 펼쳤다.
' 부모님과 함께 달리기 '
' 아.... 부모님 안 오셨는데.....'
그 당시 아버지는 도시 큰 병원에 입원하셨고 엄마는 간병을 하러 가신 상태였다.
넘어졌을 때도 울지 않았던 내가 펑펑 울기 시작했다.
멀리서 누군가 바람같이 달려와서는 내 종이를 보고는 내 손을 잡고 마구마구 뛰기 시작했다.
우리 반 담임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이 어찌나 빨리 뛰셨는지 나는 태어나서 생전 처음으로 3등 줄에 앉게 되었다.
너무나 흥분되고 기뻤다.
나도 드디어 공책을 받게 되는구나 하는 마음에 구름 없이 높은 하늘에 나 혼자서 구름을 타고 나는 기분이 들었다.
드디어 공책을 주신다.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는 달리기 상품 공책
나는 그걸 받고서 또 한 번 눈물을 훔쳤다.
그 모습을 보고 선생님이 물으셨다.
"왜 그래? 다리가 아프니?"
"......."
그 당시 수줍음이 과도한 시골학생이라였던 때라 대답을 하진 못했다.
그렇게 즐겁던 운동회가 끝나고 일기로 나의 마음을 적어서 냈다.
'늘 달리기 꼴찌 해서 공책 구경만 하다가 선생님 덕분에 공책을 받으니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선생님께 너무 고맙다고 말해야 하는데 부끄러워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라고 말이다.
그다음 날 수업이 마치고 선생님이 잠시 부르셨다.
아이들이 다 간 걸 확인하신 선생님은 서랍에서 뭔가를 꺼내신다. 그러고는 내 손에 말없이 쥐어주신다.
무려 공책이 5권이었다.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고맙습니다." 하고 꾸벅 인사를 했다.
운동장으로 나온 나는 너무 행복했다.
가방에서 들어 있는 공책을 계속 쳐다봤다.
친구들이 같이 놀자고 부른다.
"얼른 와."
"응."
가을 운동회만 하면 나는 그 선생님이 생각난다.
키가 멀대같이 크고 검은색 안경을 썼던 6학년 때 우리 담임선생님.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은 바로 달리기 3등과 총 6권의 공책
그렇게 아껴둔 공책은 이사 올 때 엄마가 버렸지만 그 기억은 생생하게 지금도 남아있다.
이제는 직접 감사하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직접 뵙지는 못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또 한 번 이야기해 본다.
그나저나 우리 아이들은 달리기를 몇 등 할까? 내 딸이니깐 나를 닮았겠지!!!
아니다~~ 신랑은 늘 1등 했다고 하니 아빠를 닮았으면 1등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