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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왼손잡이앤 Nov 29. 2021

특수학급은 제자가 없다니 누가 그래요

둘째 아이의 밀접접촉자 판정으로 나까지 졸지에 자가 격리자가 되었다. 급한 일들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가고 있자니 문득 마음이 무거워졌다. 유난히 에너지 넘치는 연년생 아이 둘의 삼시 세 끼와 수발드는 문제는 둘째 치고, 우리 반 (특수학급)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내가 없으면 그 아이들 지원은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나도 이젠 진짜 선생님이 되어가는가 싶어서 내심 놀라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사실 나는 비혼 주의자였고 아이 없이 인생을 즐기는 딩크족을 꿈꾸던 사람이다. 내가 낳은 아이 두 명도 벅차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시작된 초등학교 특수학급의 특수실무원의 역할을 하다 보니 이제 우리 반 아이들까지 마음에 품는 사람이 되었구나 싶다.


나는 자가격리 기간 10일 내내 우리 반 아이들이 보고 싶고 그리웠다.

등교 지원을 해주던 A의 따뜻한 손, 수업 지원을 했던 B의 귀여운 표정, 유난히 화장실을 무서워하는 C의 손떨림, 먹성이 매우 뛰어난 D, 모두가 궁금하고 보고 싶기도 했다.


드디어 10일간의 자가격리를 마치고 학교로 복귀를 했다. 

나를 많이 반겨주던 우리 특수 선생님과 다른 동료들과 안부인사를 뒤로한 채 학생들에게 달려갔다.

유난히 손이 따뜻한 A를 보자마자 반가움에 손을 잡아주었다. 누구는 보자마자 보고 싶었다며 안아주고 잘 지냈냐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반응이 없었다. 물론 선생님이 잘 지내셨는지 코로나에 걸리지는 않았는지 이런 질문을 기대했던 건 아니다. 그 학생들은 나의 10일간의 부재에 대한 질문이 없었다. 

안다. 나만 홀로 짝사랑하듯이 그립고 보고 싶었던 거다.


처음 이 일을 할 때 특수학급에는 제자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그게 무슨 뜻인지조차 몰랐고 그냥 스쳐가는 말이었다.


'아.. 이런 거였구나'


어디선가 서운한 감정이 꼬물거리며 올라오는 찰나 나는 생각을 멈추었다. 내가 없었던 것을 몰랐을 것 같은 아이들, 알지만 무심해서 모른척하는 게 아니라 어쩌면 선생님이 있고 없고 조차 몰랐던 걸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부끄러워서 차마 물어보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도 들었다. 또 나의 부재를 못 느낄 만큼 누군가가 대신 학생들에게 잘해준 것이라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괜스레 동료들에게 고마움이 밀려왔다.


"나 너희들 정말 너무 보고 싶었어"


그래서 나는 자발적으로 나는 너희가 많이 보고 싶었다고 대놓고 고백하는 시간을 가졌다.

직접 고백을 하니 학생들도 한 명 두 명씩 나의 눈을 보면서 천천히 말해주었다.

"선. 생. 님  보. 고  싶. 었. 어.요"


나의 눈시울은 점점 빨갛게 변하고 있었다. 

특수학급에는 제자가 없다는 그 말이 적어도 나에게 무의미한 말이었다.

이곳에는 ' 더 귀하고 사랑스러운 제자가 있다'  내가 사랑과 관심을 주었던 그 시간들이 다 사라진 게 아니라 그 학생들의 손에 등에 가슴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는 것이다. 천사들만 가득한 우리 도움반 학생들이 나는 오늘도 여전히 너무 사랑스럽고 좋다.


나는 또 이렇게 조금 어른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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