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되기의 민낯》 《사랑하되, 애쓰지 말 것》를 읽고
내 삶의 답을 찾는 시간들, 나만의 언어를 찾아서
글을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과 감정이 글로 잘 표현이 되지 않을 때는 답답함을 느꼈다. 분명 나는 언짢은데 왜 언짢은지 어떻게 기분이 나쁜지 콕 집어 설명할 수 없을 때는 단순한 단어를 나열하거나 나에게 있었던 일들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며 이리저리 왔다 갔다 길을 잃고 헤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 채.
글로 내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려면 그에 따르는 언어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마음에서 외치고 있는 언어,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언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결혼생활로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헤맬 때 난 그 언어를 찾기 위해 책 속의 문장들을 유영하며 다녔다. 엄마가 되고 나서는 ‘내 삶의 답’을 찾기 위해 더욱 그런 시간들이 많아졌다.
삶에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기엔 뭔가 억울한 생각이 들고 이런 현실이 불합리하다고 여기면서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때 만난 책, 《엄마 되기의 민낯》은 내 현실을 다시 재조명하며 그 명명할 수 없었던 ‘답답함, 초조함, 막막함, 지루함’의 이름들에 해당하는 상황들을 고루고루 들여다보며 ‘아, 내가 그래서 이랬구나. 나만 그랬던 거 아니었구나.’ 느끼게 하는 책이었다. 제목처럼 엄마로서 겪었던 무수한 감정들을 날 것 그대로 잘 표현한 책을 읽으며 저자의 거침없는 표현에 감복하고 그동안 쌓여 있는 감정들을 분출하고 해소할 수 있었다.
내 생각과 결이 조금이라도 비슷한 책을 만나면 정말 반갑다. 난 지금도 내가 경험하며 느낀 것을 내 가치관과 사상에 맞게 다듬어 나의 언어로 만드는 데 익숙하지가 않다. 그래서 책을 통해 타인의 삶을 엿보고 저자의 생각과 가치관을 보며 내가 가진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길 원하는지를 탐구한다. 글을 쓰려는 이유도 나만의 언어를 만들기 위해서다. 내 생각과 주관이 없으면 복잡한 세상에서 타인의 생각대로 타인이 이끄는 대로 끌려다니기 쉽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그동안 내가 살면서 온갖 것들에 휘둘리며 상처받았던 것처럼 계속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나만의 가치와 철학을 가지고 주변 사람들과 자연스레 어우러지면서 살길 원한다. 그 모습을 또 아이에게도 대물림해주고 싶다.
작년에 은유 작가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었다. 평소 작가의 글을 좋아했던 터라 내가 사는 지역에 와서 강연한다기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글쓰기가 자기 구원이 될 수 있을까?’란 주제로 진행된 30분 강의에서 작가는 사소한 것들을 글로 다져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며, 행복한 일보다 슬프고 속상한 일, 억울하고 불쾌한 일 중심으로 글을 써 보라고 말했다. 우리가 슬픈 이유는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또한, 설명되지 않은 것들을 설명하려고 애쓰면서 자기 자신을 점차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왜 글을 써야 하는가의 물음엔 서사로 ‘자기 존재’를 뿌리내려야 하고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한 자는 누구나 약자라고 이야기했다. 당시 고개를 주억거리며 노트에 받아적는데 내가 책을 읽고 글로 정리하는 것에 대해 ‘아주 잘하고 있어. 그동안 힘들었던 것을 왜 힘든지 생각만 하다 만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감정과 생각을 붙들고 변화하려 애썼으니 잘한 일이야.’라고 스스로 칭찬하고 싶어졌다.
육아에서 한발짝 물러나있는 남편,
돌봄 노동에 대한 이렇다할 성과를 못 느끼는 아내
출산 후 나의 삶은 180도 바뀌었는데 남편의 삶은 여전히 변한게 없을 때의 그 허탈감을 나타낸 문장도 마주했고, 엄마들끼리의 관계 형성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문장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내가 하지 않아도 상관없고 하지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 변기에 소변이 좀 튀어도 양말을 뒤집어 아무 데나 던져 놔도 먹던 과자 부스러기를 그대로 두어도 아내가 애 재우느라 진 빼는 동안 수북이 쌓인 설거지나 난장판 된 장난감을 모른 척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깟 잔소리쯤이야 흘려들으면 그만. 얼차려 받을 일도 승진이나 연봉 불이익도, 아빠가 그것도 못 하냐는 사회적인 모욕도 없는데 왜 하겠나.”(120~121쪽) 라는 문장으로 남편들이 집안일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 있는 이유를 속 시원하게 설명한다.
‘독박육아 구원 프로젝트’라는 부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은 후반부로 가면, 돌봄 노동을 하면서 오랜 시간 고민하고 생각했던 것들을 엿볼 수 있다.
“돌봄 노동을 통해 겪는 자아 분열, 때로는 인격의 퇴행, 가시적 성장의 멈춤, ‘반성장’은 오로지 직진만을 허락하는 현대 사회에서, 오로지 긍정과 성장만을 찬미하는 발전주의 사회에서 극히 희소하고 귀중한 경험이다. 내가 뭉개지는 어둠의 시간 속에서 타인의 느린 걸음 또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돌봄의 시간, 나를 지워가는 시간, 그 침잠의 시간 속에서 우린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 간다.”(290~291쪽) 라는 문장에서 돌봄 노동을 하며 이렇다 할 결과물이 가시적으로 나오기 힘든 상황에서 흔히 말하는 ‘내가 없는 삶’이 보였다. 엄마들은 결혼 전 자신의 계획대로 움직이는 삶을 살았다면 아이를 낳고 점점 성장과 멀어지고 멈춰진 듯한 시간을 살아간다. 그래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뭔가 해보려고 노력하지만 ‘엄마’라는 역할에 갇혀 아이와 남편을 생각하다가 ‘만약 일하면 아이 어린이집 등·하원은 어떻게 하지? 만약 나는 일을 하는데 아이가 아파서 등원을 못 하게 되면 누구한테 맡기지?’란 문제에 봉착하게 되고 시도조차 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런 고민과 연결되는 문장 속에 지금도 일과 육아 사이에서 고민하는 엄마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그 방법으로 ’책 읽기와 글쓰기’를 택했다. 그것을 통해서 육아나 내 삶에 있어서 중심을 잡을 수가 있었다. 예를 들어 육아만 보더라도 많은 육아서와 인터넷 맘카페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정보 때문에 아이를 키우면서 이리 저리 갈피를 못잡고 흔들릴 수 있는데 책 읽기와 글쓰기를 하면서 나는 이런 신념을 가지고 이렇게 아이를 키워야겠다는 식의 가치와 방향을 설정해 불안해하지 않고 내 기준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었다.
저자는 자신을 잃어가는 참담함을 느끼지 않는 방법으로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다. 자기만족과 타인의 인정이 오갈 때, 일상 시간의 노동을 재조정할 때 우리 자신을 잃어가는 참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요즘 내 핸드폰 카카오톡 대화창 알림 중 제일 활발하게 울리는 것은 비슷한 또래를 키우고 있는, 전 직장동료이자 엄마들과의 대화창이다. 아이와의 사소한 일상부터 그때그때 속상한 일, 힘든 일, 진로 고민까지 다양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위로하고 공감한다. 같은 처지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과 나누는 소소한 대화가 가끔 무기력해진 나를 일으켜 세워준다. ‘신나리 작가‘도 ’독박육아 구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몇 가지를 언급하는데, “육아는 엄마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엄마가 잘 먹고 잘 자야 한다, 우린 가장 좋은 답을 알고 있다, 아이는 키우기가 아니라 함께하기다, 지치지 않기”를 말하며 자신은 “엄마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서, 나를 짓누르던 짐을 안팎으로 덜어내는 행동을 통해 조금씩 가벼워졌다.”(346쪽) 고 한다.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앞으로도 ‘책 읽기와 글쓰기’를 통해 내 안의 언어를 발견하고 단단하게 만드는 일을 계속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저자가 남편과의 합일점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것처럼 나도 당장은 불편하지만, 결혼생활에서 앞으로는 원망과 불평,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
엄마가 되어 나를 잃지 않기위해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되는 이들에게
《엄마 되기의 민낯》이 엄마에 대해 낱낱이 파헤치며 어떻게 엄마로서,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세워야 하는지 근본적인 고민을 해소해줬다면 ‘김은희 작가’의 《사랑하되, 애쓰지 말 것》이라는 책은 그 고민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한창 육아와 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흔들리고 있을 때 블로그 이웃의 책 소개 글을 보고, 제목에 매혹되어 궁금증이 일었다. 저자는 아이를 낳고도 7년 동안 워킹맘으로 일했고 5년 동안은 전업주부로 살았는데, ‘워킹맘이 좋을까, 전업맘이 좋을까?’라는 질문 사이에서, 둘 다 해보니 질문이 무의미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것은 단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거나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일 뿐이었다고 하면서 “워킹맘이든 전업맘이든 우린 다 똑같이 ‘엄마’다. 우린 다 똑같이 ‘일’을 한다. 장소가 집이냐, 회사이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래서 난 이제 더는 워킹맘과 전업맘을 구분하지 않기로 했다.”(288쪽)라고 말한다. 책을 읽으며 내가 엄마로서 느끼는 것들,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있는 부분들에 공감과 감동이 되어 좋았다.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었다.
“내게 닥친 고난, 실패, 어려움, 헛수고 하나하나가 쌓여 성공의 경험을 가져온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엄마 노릇은 보다 좋은 엄마, 보다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 주어진 소중한 시간이며 다시 돌아오지 않을 기회입니다. 아이를 통해 ‘진정한 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그로 인해 타인의 감정을 헤아려 보기도 합니다. 엄마 노릇을 하며 부딪치는 모든 어려움에는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76쪽)
‘엄마 노릇을 하며 부딪치는 모든 어려움에는 분명 의미가 있다’라는 말이 그동안 엄마 노릇을 하며 입버릇처럼 ‘아무 성과가 없는 것 같아. 결과물이 없으니 성취감도 안 생기고.’라고 푸념했던 내가 떠오르며 앞으론 그 말을 기억하고, 엄마 노릇이 힘들고 이룬 게 없다고 생각될 때마다 상기 시켜야겠다 싶었다.
친한 동생 중에 육아와 살림만 하면서 세상에서 점점 도태되어 가는 것 같다며 일하고 싶어 하는 동생이 있다. 내가 보기엔 결혼하고 육아에 전념하며 자신감을 많이 잃은 것 같고 육아와 일을 병행하려 하는데 비협조적인 남편 때문에 많이 힘들어 보였다. 나도 지나왔던 길이라 빨리 뭔가를 해서 열매를 맺고 싶어 조바심이 난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다. 이런 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저자의 책 속에도 담겨 있었다.
저자는 온전히 ‘나’만 남게 되었을 때 나에게 뭐가 필요할지, 나의 경쟁력이 무엇인지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고 그에 적합한 역량을 개발하는 일을 소홀히하지 말자고 이야기한다. 조급함을 버리고 오늘부터라도 마음이 가고 손이 가는 책을 읽어보며 나를 찾고 나의 핵심 역량을 찾는 여정을 시작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요즘 자신만의 ‘브랜드’를 찾기 위해 사람들이 본업 외에도 사이드잡에도 시간을 많이 할애한다. 얼마 전 들었던 강의에서 만난, 콘텐츠·커뮤니티 기획자, 백영선 대표가 사이드잡을 발전시켜 본업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그는 “제가 이렇게 일을 할 수 있는 건 그간 경험했던 것들 덕분입니다. 그리고 그간 만나왔던 사람들 덕분입니다.”라고 말한다. 백 대표는 자신의 전공이 아닌 취미로 ‘노래동아리’에서 활동했던 것을 살려 ‘축제’나 ‘공연기획’을 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사이드잡이다. 그리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일에 힘쓴다. 그가 만든 ‘퇴근 후 대학’이나 ‘릴레이 인터뷰’는 그의 핵심 역량을 십분 활용한 결과물이다. 그는 2020년 10월부터는 ‘각뛰함뛰(각자 뛰지만 함께 뛴다라는 뜻)’라는 이름을 내걸고 서로 응원하며 한 달 동안 마라톤 거리를 뛰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한다. 그가 사이드업을 더욱 크게 발전시킬 수 있던 것도 끊임없이 배우고,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았기 때문이다.
엄마이기에 충분히 가능하다.
엄마도 충분히 자신의 내재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엄마는 자신의 신체의 일부 같은 생명체를 낳고 키워봤고 그 생명체를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재능을 발휘한다. 몇 가지만 나열하자면, ‘아기 띠로 재우고 나서 차갑고 딱딱한 바닥에 깨지 않게 잘 내려놓기, 한참 입으로 푸푸 하는 시기에 인내심 있게 아기 이유식을 먹이고 무릎을 꿇고 식탁 밑을 기어 다니며 뒷정리하기, 바깥 외출 시 느닷없는 아기의 똥 폭탄 해결하기, 자기 전 물 먹겠다, 오줌 누겠다 하는 온갖 투정의 인내심 테스트에서 살아남기’ 등이다. 우스갯소리로 적었지만 정말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많은 능력이 필요하다. 그중 체력과 인내심은 단연코 으뜸이다. 그렇게 힘들게 아이를 키워낸 엄마들은 가족들의 건강과 안전은 물론이고 영양 있는 식사까지 뚝딱뚝딱 차려내는 슈퍼우먼이 아닐 수 없다. 때로는 아이들의 친구로 역할 놀이를 해야 하고 졸릴 땐 편안한 침대가 되어야 하며,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심리 상담사가 되었다가 친구들과의 고민을 듣고 문제에 대한 조언하는 역할까지 한다. 그리고 앎에 대한 인식과 지식수준도 높으며 자기 관리도 잘하는 엄마들은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다. 그러므로 책의 저자처럼 우선 마음이 가는 책을 읽어보며 나를 찾는 것부터 하길 바란다.
워킹맘으로 오랜 시간 일했던 저자도 자신의 모습을 재발견하고 자신만의 가치, 브랜드를 찾기 위해 독서하고 책을 쓴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나다움’을 찾기 위해선 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 또한 ‘책 읽고 글쓰기’를 통해 점점 ‘나다움’을 발견하고 있다. 아이를 재우는 것을 마지막으로 육아에서 해방되면 나의 고단함을 위로하기 위해 드라마를 즐겨보던 ‘드라마광’이었던 내가 ‘서평 블로거’로 거듭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틈틈이 삶에 지칠 때, 탈출구가 없어 보일 때마다 책을 찾긴 했지만, 책을 읽고 꾸준히 기록한 것은 불과 삼 년째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난 내가 꾸준히 즐겨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만족스럽다. 좋은 책들을 읽고 내 삶에도 적용해 가는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도 소중한 자산이 될 거라 믿는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많은 공감과 웃음을 불러일으킨 두 책을 만나 참 감사하다. 엄마의 목소리를 내는 책들이 더 많아져 이 세상을 누구보다 따뜻한 곳으로 만들어줄 엄마들이 더욱더 당당해졌으면 한다.
《엄마 되기의 민낯》, 신나리, 연필, 2018
《사랑하되, 애쓰지 말 것》, 김은희, 젤리판다,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