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르세데스 Oct 25. 2021

타인으로부터
내 감정을 지키고 싶을 때

《지금 나를 위로하는 중입니다》를 읽고

     

한낮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다스리지 못한 불편한 밤을 보내고   

  

  “도대체 엄마보고 어쩌라고! 왜 너는 기어코 엄마가 머리끝까지 화가 나게 만드니?”

  아직도 목덜미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우리 집 아이가 7살이었던 어느 날 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누가 나 좀 재워줬으면……. 잠이 안 와. 잠을 자고 싶은데 잘 수가 없어.”

  지난 밤 아들의 흐느낌을 들으면서도 계속 모른척했다가 겨우 안아서 달래고 재웠던 못난 엄마가 나다. 아들이 감기에 걸리고, 비염까지 있어 가끔 밤에 자다가 코막힘을 호소하는데 칙칙이(나잘스프레이)를 뿌려주고 코뻥을 해줘도 코가 뚫리지 않는지 여러 이상한 소리를 내며 킁킁거리는데 나는 그만 짜증을 내고 말았다. 


  “도대체 넌 왜 엄마 말 안 듣고 옷도 잘 안 걸치더니 결국 감기에 걸려서는 여러 사람 잠도 못 자게 하니?” 사실 그렇게 말하는 내 내면엔 ‘갑갑함과 욕구 불만’의 문제가 있었다. 직장 내 스트레스를 책을 보고 글을 쓰며 달래는 내 시간이 요즘 절실하게 필요한데, 아들은 작은 불빛만 새어 나와도 잠을 못 자겠다며 짜증을 내고 엄마도 꼭 자기 옆에 붙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들기를 요구했다. 아이는 결국 나의 화에 투정도 못 부리고 훌쩍이며 잠이 안 온다고 속삭인 것이다. 어찌어찌 달래서 안아주고 토닥이며 재웠는데 아침에 잠에서 깨니 마음이 찝찝했다. 잤는데도 개운함이 전혀 없었다. 아들은 여느 때와 같이 행동했지만 나는 뭔가 모를 죄책감과 분노와 짜증에 속이 편하질 않았다.     


  꼭 간밤이나 아침에 아이들과 티격태격한 날은 이상하게 회사의 분위기도 썩 좋지가 않았다. 출근하자마자 어두운 분위기를 감지하고 사장님이 없는 창고에서 묵묵히 주변을 정리하고 일을 시작하려는데, 대리점 부장님이 “하령씨, 이제 여기 사장님 안 나올 거니까 이 운송장 물건 포장해서 보내요.”라고 하신다.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 간지 두 어 달 만에 출근하게 된 곳은 관내에 있는 물류센터였다. 한 마당에 대리점을 운영하는 사장님 부부와 직원들이 계시고, 난 대리점 사장님의 아드님을 도와 물류 쪽에서 일했다.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하원 전까지 아이 돌봄에 불편함 없이 일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이점이 있는 직장이었다. 더불어 내가 꿈꿔왔던 경제적 자유를 누리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고 엄마가 아닌 ‘나’로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래서 20킬로그램 육박하는 아이스박스를 나르는 등 몸을 쓰는 일을 하여도 그 또한 할 만했다. 하지만 어쩌다 가족 간에 소통이 되지 않아 불화가 생기면 업무는 업무대로 마비되고, 대리점 부장님이 답답하신 나머지 나를 붙들고 하소연이 이어졌다.     


  “어제 저녁, 아들이 엄마 아빠는 날 도와주지도 않고…….”하고 볼멘소리를 하길래 ”이 녀석아 엄마도 아침 일찍 일어나서 여기 와서 사람들 상대하고 얼마나 힘든데 넌 싹수없게 너만 아냐. “하니까 바로 성이 나서 나가 버리더니 관둔다 어쩐다는 엄포를 놓지 뭐야. 큰아들만 힘들게 하는 줄 알았는데 쟤가 더해. 아휴, 근데 하령씨한테 쟤가 일하는 거 안 가르쳐줘? 쟨 자기가 하는 거 혼자 할 줄 아니까 더 저러는 거야. 아휴.” 


  아이와의 사소한 문제로 인한 감정 소모, 회사 내의 사람들 간의 불화로 인한 감정 소모로 내 영혼이 점점 갈아 없어지는 듯한 느낌에 바로 손을 쓰지 않으면 어떤 작은 불씨가 불화살이 되어 나와 내 아이들의 삶을 쑥대밭으로 만들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회사에서 가까스로 업무를 하며 시간을 보낸 후 아이들에게 최대한 감정 동요하지 않고 필요한 것을 채워준 채 일찌감치 잠자리 분위기를 만들어 재웠다. 

  그러고 나서 《지금 나를 위로하는 중입니다》 를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읽기 시작했다. 한 중반쯤 읽을 때쯤 아래의 글을 마주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감정적으로 기생한다면   

  

  만약 누군가 감정적으로 기생한다 해도 내게 힘과 여유가 있고 또 기생하는 정도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다면 웃으며 받아줄 수 있다어쩌면 상대에게는 그것이 자기 인생의 괴로움을 처리할 유일한 방법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감정적 기생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범위를 넘어선다면 나 자신을 위해 상대를 끊어내야 한다나를 더는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삼지 말라고 상대에게 분명히 밝히고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그래야 내 삶에도 새로운 아름다움을 받아들일 여유와 공간이 생긴다.(135~136쪽)     

  감정적으로 기생한다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왜 내가 전에는 참을 수 있었고 이젠 못 참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때맞춰 비워야 하는 내 감정 쓰레기통을 비우지 못하고 계속 타인들로부터 채워짐만 받고 있었던 것. 책을 보며 ‘감정적 기생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범위를 넘어선다면 나 자신을 위해 상대를 끊어내자, 나를 이제는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삼지 말라고 상대에게 분명히 밝히자’라고 몇 번을 되뇌며 다짐했다. 이제는 타인의 감정에 휩싸여 나의 감정까지 휘둘리지 말자고 생각했다.      


  특히, 감정이 한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이처럼 지대하다분노와 낙담안타까움과 슬픔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내면에 잠재된 힘을 깨닫는다사람은 스스로 통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제대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 자기 자신에 대한 통찰력이 열리기 시작하면 사람과 관련된 기억이 내면 깊은 곳에서 점점이 떠오른다그런데 초기에는 그 사람이 나를 왜 그렇게 대했는가에 집중하고 집착하다가 더 깊은 고통에 사로잡히거나 훨씬 무력한 관계 갈등에 빠지기 쉽다.(...) 사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점은 그 사람이 나를 왜 그렇게 대했나가 아니라 나는 왜그 사람이 나를 그렇게 대하도록 내버려 두었나엉뚱한 점에 집중하면 통찰력이 생겨도 방향을 잘못 잡은 탓에 더욱 큰 좌절을 느끼게 된다.”(23~24쪽) 라는 문장은 회사에서 부장님이 나를 ‘감정의 쓰레기통’로 대했던 부분에 대해서 ‘나를 왜 그렇게 대했나’가 아닌 ‘왜 그렇게 하도록 두었나’를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부장님이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아무런 필터링도 거치지 않고 쏟아놓으실 때 그대로 받아내기만 했던 나에게 문제가 있었구나 깨닫게 됐다. 


  때마침, 다시 회사 내에서 똑같은 일이 불거졌다. 물류 사장님은 일을 이제는 못 하겠다고 나가버렸고 부장님은 또다시 나에게 내가 전적으로 도맡아 일해 달라고 요구하셨다. 예전과 같았으면 눈치를 보며 ‘내가 실수라도 하면 어쩌지?’라며 마음졸이고 어떤 것부터 손을 댈지 우왕좌왕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부장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씀드렸다. “부장님, 그동안 말씀을 안 드리고 참았는데 예전부터 이런 일이 불거지고 불화가 생길 때마다 저 양쪽 눈치 보느라 많이 힘들었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이제는 저한테 맡기면 되니 사장님에게(아들인 사장) 나가라 하지 말아주세요. 전 이 회사 입사하고 초반에 2~3개월 정도만 컴퓨터 작업을 해서 갑자기 모든 시스템을 저에게 맡겨버리시면 전 할 수 없습니다. 못하겠습니다.”라고 말이다. 그리고 사장님께도 전화를 걸어 상황이 어려운 건 알겠지만 사장님 대신 일하는 건 못하겠다고 덧붙이며 중요한 시점이니 못이기는 척 다시 들어와 일을 해결해주길 바란다고 말씀드렸다.      


  결론은 어떻게 됐을까? 나를 중간 다리 삼아 소통의 창구로 여겨 가며 일을 하던 두 분은 결국 내가 이제 그 역할을 못 하겠다고 단호하게 말씀드리니 나를 거치지 않고 바로 업무에 관한 협의를 하고 일을 해결해 나갔다. 예전의 나 같았으면 뒤로 혼자 빠지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다. 하지만 더는 감정 소모를 하고 싶지 않았고 내가 모든 걸 감당하기도 벅찼다. 그리고 하지 않아도 될 일에 대해선 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부당한 일이 아니란 것을 알았기에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내가 변화한 것의 배경엔 ‘책 읽기와 글쓰기’가 있다. ‘감정 쓰레기통’의 역할로 지쳐있던 내게 때마침 《지금 나를 위로하는 중입니다》 라는 책을 만날 수 있었고 글쓰기라는 창구를 통해 내 마음에 쌓여있던 묵은 감정들을 해소할 수 있었다.           

어떤 감정이었든그 감정을 더욱 깊이 이해할수록 새로운 자유를 얻게된다.    

 

  《지금 나를 위로하는 중입니다》 의 저자, 쉬하오이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살면서 겪은 수많은 일나의 인간관계에서 벌어진 감정의 드라마는 누구나 경험해보았음직한 것이라고 믿는다이 책을 쓰기 위해 과거를 돌아보고 정리하다가 오히려 아픈 상처를 헤집게 될까 봐 내심 걱정했지만감사하게도 그 과정을 통해 오히려 어떻게 선택하고 어떻게 자유로워질 것인지를 더욱 잘 배울 수 있었다먼저 가본 사람으로서 해주고픈 말이 있다당신의 인생이 힘든 일이 얼마나 많았든여태껏 얼마나 괴로워하며 살아왔든 상관없다장담컨대 그 일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될수록 당신은 새로운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24~25쪽) 라고. 그 말에 나에게 닥쳤던 온갖 힘들었던 일들을 한 발자국 떨어진 위치에서 볼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자유로워진 나를 기대할 수 있었다. 단순히 ‘너 지금 여러 감정적인 일들로 힘들지? 감정적으로 풀리지 않은 문제들도 널 짓누르고 있고. 사람은 누구나 힘들어. 그러니 힘을 내.’라고 위로한다기보다 ‘여기 그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 자, 이제 스스로 널 이해하고 자유로워지길 바라’라고 응원하는 듯한 저자의 마음씀에 한껏 마음이 누그러졌다.      

  책을 통해 나의 오래전 감정의 문제 원인도 알게 되고 변화의 물꼬를 트는 데 도움을 많이 받았다. 더불어 나를 둘러싼 부모, 자녀, 남편 등 가족들과의 문제를 다방면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더욱이 ‘나’로 개인적인 감정 문제와 ‘남편’과의 문제들에 접목해볼 수 있는 심리 효과들이 많아 문제를 직면하고 개선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남의 눈의 티끌은 보여도 내 눈의 들보는 보지 않는다     


  저자는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가 각자의 입장에서 상대를 끔찍이 사랑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고 말한다. 그들은 마치 흑과 백을 구분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양 매사에 시시비비를 따졌고 그런 뒤에는 자신에게 “잘못한 것은 저 사람이야. 그러니까 이제 떠날 수 있어.”(20쪽)라고 말했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남편과의 다툼은 늘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거슬리는 말 한마디’로 시작될 때도 많았다. 다툼이 거치고 감정이 거세지면 예전 일을 너나 할 것 없이 들춰내며 잘잘못을 따지기에 바빴다. 그런 다툼의 끝엔 앙금만 남고 상황만 일단락된 상태에서 ‘난 잘못 없어. 다 남편 잘못이야. 난 이런 삶에 미련 없어.’라고 생각했는데 마치 내가 써놓은 듯한 뒷부분의 문장을 보면서 많은 부부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인식하며 책장을 넘기며 몰입감 있게 읽어내려가던 중,     

  “...전쟁을 유발한 원인 제공자는 정작 자신이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 부부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면 둘 다 상처를 받고 서로 상대 탓을 한다그러나 사실은 자신이 관계에 어떤 독을 풀어놓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무지함이야말로 가장 큰 원흉이다. (...) 수년간의 결혼 생활을 통해 내가 배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눈앞에 벌어진 일을 그저 단순하게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이다모든 행동모든 관계의 배후에는 반드시 나름의 독특한 맥락이 있다그 맥락을 발견하고 읽을 줄 알아야 한다그뿐만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이 관계에 어떤 첨가물을 넣었는지 발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그래야 저 사람 왜 저래?’라는 답이 없는 질문과 고통스러운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89쪽) 라는 문장에 한동안 눈과 마음이 머물렀다. ‘아, 나도 남편을 불편하게 했겠구나. 남편과 이야기하면 벽에 대고 이야기를 하는 답답함을 느꼈는데 남편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구나. 남편의 행동과 말 뒤에는 나름의 맥락이 있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남편 탓’으로만 치부했던 잘못에서 벗어날 순 있겠다 싶었다.      


  책에서는 감정 표현을 어려워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해라고 말한다다기 감정을 솔직히 표현했을 때 소중한 사람이 무시하거나 오해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받아들여 줄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남편은 감정 표현에 서툴다. 나에게 섭섭함이나 불만이 쌓여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빨래가 안 되어 입을 속옷이 없다거나 샤워 후 발을 닦을 수건을 치워둔다거나 자신이 불편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짜증을 내는 것으로 표출했다. 하지만 지금은 나보다 감정을 잘 조절하고 전에는 상황설명을 생략해서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면 지금은 내가 오해할 여지가 있는 부분에 대해 잘 설명한다. 남편이 그렇게 변하니 나도 남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되고 남편의 행동을 관찰하며 대화를 해나가려고 하게 되었다. 책에서도 감정 표현에 대한 중요성과 표현했을 때 안정적으로 받아들여 줄 것이라는 믿음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보며 형광펜으로 밑줄을 쓱쓱 그었다.      


  남편과 관련해서 주목했던 많은 사례와 그에 대한 설명들이 도움이 되고 와닿았지만, 그중에서 주체적인 삶을 원한다면 나와 타인 사이에 적절한 경계를 그을 줄 알아야 한다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자신의 내면적 상상과 외재적 현실을 명확히 구분하고 경계 짓는 일도 중요하다따라서 어떤 문제는 단지 자신의 상상에 불과하며상대의 의도 또한 내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41쪽) 라는 문장이 제일 와닿았다. 


  남편에 대해서 내 기준대로 판단하고 생각하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에게 감정적으로 치우치거나 휘둘리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이 다시금 단단해짐을 느낀다.      

  사실 원만한 부부관계를 위해서는 내가 먼저 나만의 아집을 버리고 타인을 너그러이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수용적 태도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가 책에서 인용한 ‘달라이라마’의 말이 유독 마음에 꽂히는 것이 그런 생각 때문이다.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정서를 만드는 요소가 있습니다첫 번째는 이기주의입니다무슨 일이든 나를 중심에 두고 생각하는 것인데다른 말로는 아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두 번째는 내가 본 모든 것이 진실이라는 착각입니다이 세상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존재는 없습니다부정적인 감정조차 그러합니다이 사실을 깨달으면 마음이 지혜로워집니다.”(176쪽)     


  배우자감을 고를 때 이상형으로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이라고 정해놓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현실은 아니란 걸 독자들도 금방 눈치채셨으리라.

 저자는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을 이미 만났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일이만 우리 곁에는 이미 나를 잘 이해하고 조건 없이 받아들여 줄 사람이 있는데 바로 나 자신이라고 한다나의 마음속 상처 받은 아이를 보듬으며 함께 성장할 방법과 인내를 배우고 기르면 인생의 주도권을 내 손에 쥘 수 있다.(218쪽)고 말하는 문장을 보면서 어떻게 인생의 주도권을 내 손에 쥐는 것이 가능할까?,싶었다.      


  책에서 언급하는 대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해도 계속 그로부터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통해 나를 되찾을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지고 가족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관계가 달라지므로 상처밖에 없을 줄 알았던 원가족과의 관계에서 좋은 점을 몇 가지라도 찾아내 향후 인생의 상상 이상의 긍정적 도움을 주는 매개체로 삼아라.”(335쪽) 라는 저자의 말대로 실행한다면 보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많은 부분 성장하는 모습을 보게 되리라 믿는다. 앞으로는 과거의 상처, 원가족으로부터의 상처, 타인과의 관계 속에 아무런 방어 없이 받아냈던 상처들에 대해 무방비적으로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스스로에 대해 고민하고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지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지금 나를 위로하는 중입니다》 쉬하오이, 마음책방, 2020


     

이전 08화 육아를 잘 하고 싶을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