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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르세데스 Oct 25. 2021

다시 적성을 살려 일하고 싶을 때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엄마로 산다는 것》 《엄마 말고 나로 살기》를 읽고


엄마가 되고 나서 슬픈 것 중 하나소속감이 없다는 것    

 

  엄마가 되고 나서 슬프고 우울했던 것 중 하나는 소속되었던 공동체로부터 점점 잊혀져 간다는 것이었다. 점점 내 이름으로 불리는 시간들이 줄어들고 누구 엄마라고 불리거나 아니면 아줌마라는 대명사로 불렸다. 둘째가 어린이집에 가고, ‘나만의 오롯한 시간’이란 이름의 날개를 달고 새로운 세상을 사는 듯한 행복감을 아주 잠시 맛보았으나 일을 하고 싶은 열망은 식지 않았다. 
   내 이름 불리는 곳에서 성취감을 느끼며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단 생각이 간절했을 때쯤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 늘 농담인 듯 진담인 듯 "나는 돈 벌어 오는 기계지."라고 이야기하며 ‘남편은 일, 아내는 집안일’이라는 가부장적 공식이 뼛속까지 새겨진 남편과 사는 나로서는 내가 일을 한다 해도 남편의 가사분담은 꿈도 못 꿀 일이란 걸 알았다. 아이와 함께 하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그래도 아이들 뒤치다꺼리에서 벗어나 일다운 일을 하고 싶어 틈나는 대로 지자체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모집공고' 글을 주시했고 지역 카페에 구인 구직 글에 알람을 해두고 글이 올라오면 확인하였다. 


   그러던 중 짧은 자유부인의 달콤한 시간을 뒤로하고 지인의 소개로 생각보다 빠르게 물류회사에 취업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아침에 어린이집에 보내고 밥을 먹고 출근을 하면 되었고, 5시에 이른 퇴근을 하고 아이들을 픽업하면 되었기에 일을 하면서 아이를 돌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내 통장에 매달 꼬박꼬박 찍히는 숫자는 참 여러모로 나를 웃음 짓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따금 할 일이 없으면 기존보다 일찍 퇴근할 수 있는 건 “나의 이름을 지키면서도, 너를 사랑할 시간이 충분한 그런 직업을 가지고 싶다.”《아이를 만나고 나는 더 근사해졌다. 173쪽 인용》 라는 간절한 나의 염원에 부합하는 것이어서 나로서 일하면서도 이이들을 돌볼 시간적 여유가 되는 일을 찾은 것에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책임감을 다해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물론이다.           



나는 아이의 성장과 나의 성장을 동시에 이끌어가는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은 물류센터로 들어온 주문 물품 리스트를 정리해 운송장으로 뽑아내고, 고객들에게 운송장 번호를 알려주는 컴퓨터 작업을 하는 간단한 일이었다. 처음 하는 일이라 실수할까 봐 긴장한 채로 마음을 졸이며 일하다가 한 5개월이 지난 시점부터는 ‘피킹(일명 포장작업)’ 작업을 주로 했다. 무거운 제품을 옮기고 포장하고 쌓는 일은 몸을 무척 고단하게 했지만, 마음은 가벼워져서 일하기가 수월했다. 하지만 물류량이 많아지고 점점 노동의 강도가 세지며 ‘왜 내가 일을 택했지? 이 일로 과연 나로 산다는 느낌을 받고 있나? 이 일이 나의 어느 부분을 성장시키고 있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일한 지 1년 2개월이 지날 때 즈음이었다. 의문의 답은 내가 찾아야 했다. 애초부터 내가 선택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내가 이러한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다 해도 아이를 돌보며 할 수 있는, 이만한 일은 없다며 나의 힘듦에 공감을 해주지 않았다. ‘역시 날 위로해주는 것은 책만 한 게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책을 만났다. 신의진 작가의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엄마로 산다는 것 이다.      


이미지출처 : yes24



  당신이 지금 어떤 모습이든가사와 직장 일에 지쳐 피폐한 모습이든직장에서 잘나가는 동료에게 뒤처지는 모습이든 상관없이 당신은 아이의 엄마로서또 사회와의 연결의 끈을 놓지 않고 성장해 나가는 한 인간으로서 충분히 잘 하고 있다그러니 초라해지지도자책하지도 말자아직 우리 사회가 그 가치를 제대로 보아 주지 못했을 뿐이지당신은 아이의 성장과 자신의 성장을 동시에 이끌어 나가는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95쪽)라는 문장을 보며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딱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다. ‘당신은 아이의 엄마로서 성장해 나가는 한 인간으로서 충분히 잘하고 있다’ 이 말만큼 위로되는 말이 또 있을까?

  내가 힘들었던 것은 많은 역할을 감당하고 있으면서 ‘이 많은 일을 해내고 있구나. 대단하다.’라는 인정의 말을 듣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함께 사는 배우자로부터 나의 수고에 대한 인정을 받고 싶었으나 함께 대화하면 서로의 일의 경중을 따지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삶이 많이 달라졌는데 남편은 달라진 것이 없는 듯 하다.  

   

  일, 육아, 가사 세 가지를 병행하면서 나의 삶은 많이 바뀌었는데 남편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남편의 우선순위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 남편은 자기 시간을 여전히 자유롭게 쓰고 가사일은 일주일에 한 번 분리 배출, 빨래 잔뜩해서 산 만들어 놓기 시전을 벌인다. 빨래돌리고 건조기에 넣는 것은 쉽다. 개고 제자리에 정돈하는 것이 힘든 일인데 남편은 쉬운 것만 해 놓고 집안을 어수선하게 만든다.

  아이들이 아파도 병원에 데리고 가고 밤에 간호하는 것도 나고, 집안의 세세한 일들을 처리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사실 그럴 거라는 것도 짐작했고 다 감수하더라도 돈을 사용하는 용처를 밝히지 않고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비상금을 가지고 약간의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싶어 워킹맘의 길을 택했다. 하지만 막상 겪고 보니 일까지 하는데도 여전히 모든 집안일은 내 몫이란 것 때문에 자꾸 목구멍으로 스멀스멀 억울함이란 녀석이 기어 올라왔다. 나의 유급 노동 시간이 늘어날수록 내가 집안일에 들이는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육아에 들이는 시간은 내 고용 여부와 거의 관계없이 일정했다.《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 54쪽 인용》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에서 정아은 작가는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노동을 ’일‘로 인정하지 않기에 경제학에서 상정하는 ’경제적 인간‘에는 전업주부로 사는 여성이 포함되지 않는다(96쪽)고 표현한다. 

 우리는 누군가의 엄마인 여성이 아이를 돌보는 일보다 자신의 일을 우선순위에 놓으면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한다또한 자신이 행한 가사의 대가를 바라면 가족을 위한 일인데 대가를 바라다니!’하고 비난의 시선을 보낸다반대로 남성이 자기 일을 우선순위에 놓거나 자신이 한 일의 대가를 바라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로 여기고 화제로 삼지도 않는다처음부터 여성을 배려하는 성으로 단정 짓고 돈이나 자기 이익을 챙기지 않을 거라고 가정하기 때문에남성을 계산하는 성으로 단정 짓고 돈과 자기 이익에 충실할거라 가정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97쪽》      


  여성이 아이를 돌보는 일을 우선시 해야한다는 사회적 잣대가 여성을 배려하는 사람, 남성을 계산하는 사람으로 규정짓기 때문에 오는 결과라는 것을 머리론 이해를 해도 막상 ‘배려와 희생’의 입장에서 지내려니 답답하고 억울하다. 여성이 물질적 대가 없이 한없이 베푸는 것을 사회가 강제하는 것이 부당해도, 혹은 이런 구조에서 오는 부작용과 폐해를 간과할 수 없어도, 현재를 살아가는 공동체의 형태는 가족밖에 없다고 말하는 정아은 작가의 말이 참 일리있게 느껴지지만 몇백 년을 여성의 숭고한 일을 경제적 가치로 상정하지 않고 있고 변화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은 참 인정하기 싫고 옅은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누구의 것도 아닌 당신의 풍요로운 인생을 위해     


  다시 돌아와서,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엄마로 산다는 것》 은 20년 동안 두 아이를 키우며 끝까지 일을 포기하지 않고, 아이와 자신 모두 행복한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또한, 소아정신과 의사로 일하면서 진료실 안팎에서 만난 엄마들, 특히,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자기를 돌아볼 시간이 없는 엄마들, 어쩌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자신 때문인가 죄책감 드는 엄마들을 만나서 나눈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특히, 엄마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말을 해주기는커녕 엄마가 좀 더 부지런해지면 되지 않냐고 충고하는 사람들에게 단 한 달만이라도 일하는 엄마로 살아보라고, 아이를 키우며 일한다는 게 회사와 가정, 나 자신과 아이 사이에서 얼마나 위태로운 외줄 타기를 하고 있는 일인지 이해하냐고 묻고 싶다(17~18쪽)고 말한다.    

 

  책을 읽으며 위로를 많이 받았던 것은 내 모습이 지금 어떤 모습이든, 가사와 직장 일에 지쳐 피폐한 모습이든, 직장 동료에게 뒤처지는 모습이든 상관없이 아이의 엄마로서, 또 사회와의 연결의 끈을 놓지 않고 성장해 나가는 한 인간으로서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말하는 부분이었다. 그러니 초라해지지도, 자책하지도 말자고. 아직 우리 사회가 그 가치를 제대로 봐주지 못했을 뿐이지, 아이의 성장과 자신의 성장을 동시에 이끌어 나가는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가슴 속에서 뭉쳐 있던 인정을 받지 못한 서운함이 불쑥 솟아올라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을 쏟아낼 뻔했다.


  더욱이 소아정신과라는 전문가적 위치에 있는 분도 아이 키우기에서는 우리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 더 깊은 위로와 공감을 준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중간중간 저자의 경험과 상담 사례를 보며 저자가 조언하는 글들을 보자니 직접 상담실에서 저자와 대면하며 내 상황을 이야기하고 조언을 받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더불어, 일하는 엄마로서 사는 녹록지 않은 과정을 이겨 내기 위한 첫걸음으로 ’스스로가 어떤 엄마, 어떤 아내로 살고 있는지 돌아보길 권하는(33쪽) 등 근본적인 가치에 대해 돌아보게 해주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원해서 선택한 것인지 점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일도 하고 아이도 잘 키우고 싶은데 주변의 상황 때문에 괴롭다면 혹시 당신이 이것을 택하면 저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흑백논리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꼭 아이와 직장 중 하나를 버려야 하는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 일반적으로 아이가 어릴 때는 아이 쪽에 무게중심을 두는 게 맞고좀 자라고 나면 자신의 자아실현이 아이만큼 중요해진다. (...) 처음에는 균형을 잡느라 잠시 비틀거릴 수도 있고그래서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그렇지만 인생은 긴 레이스다지금 잠깐 머뭇거리는 정도는 앞으로 남은 레이스에서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다그러니 부디 포기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그 누구의 것도 아닌 당신의 풍요로운 인생을 위해(68쪽)라는 문장을 보며 가슴이 먹먹했다. 

  특히 마지막 문장, ’누구의 것도 아닌 당신의 풍요로운 인생을 위해’라는 문장에서 희망이라는 이름의 풍선이 내 가슴에서 부풀어 오르는 듯 벅차올랐다. 

  정말 한동안은 그 풍선을 가슴에 품고 열심히 일했다. 이따금 일이 많아 버겁고 힘들어도 일은 내가 가치를 둔 것들을 하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라 생각하며 일할 수 있었다. 그런 마음가짐을 더해 준 것은 바로, 《엄마 말고 나로 살기》 란 책을 만나면서였다.         

 




경력단절 여성이 어떻게 세상 속으로 당당히 걸어갈 수 있을까?     


  앞서 소개한 신의진 작가의 책이 엄마라는 정체성에 갇혀 살지 말고 세상 밖으로 나올 것을 독려한다면 《엄마 말고 나로 살기》는 구체적으로 경력단절 여성인 우리네가 어떻게 세상 속으로 당당히 걸어갈지 방법론적인 것을 알려준다.

  2년이란 시간 동안 힘겹게 일과 육아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했던 내가 마침 ’적성을 살려 일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점점 고개를 들었을 때 책을 만났다.

  엄마로서의 의무 뒤로 여자로서의 모습과 사회인더 나아가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숨겨야만 했을 때 어떤 좌절과 상실을 겪어야 했던가그 마음들을 위로하고 싶었다나에게 보내는 위로이자 당신에게 보내는 위로다책을 통해 단순히 사회로 나가야 한다고다시 일을 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우리의 잊힌 모습들을 되찾는 여정을 함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나의 이야기지만 당신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프롤로그중)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불우한 시절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지금까지의 과정에 거쳐왔던 다양한 직업군(직업상담사, 커리어컨설턴트 대표, 작가, 강연가)을 거쳐오며 엄마라는 정체성 말고 직업인인 나로 사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일을 시작한 결정적인 이유는 돈도 돈이지만 나의 존재 가치를 그냥 멈춰 있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나를 잃어버린 내 삶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엄마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단 한 가지의 일도 하지 못하고 내 삶의 주파수를 오직 남편과 아이들에게만 맞추게 되면 엄마의 정체성은 기어이 흔들리게 된다분명한 것은 나를 잃어버린 엄마는 외롭다는 사실이다.”(59쪽)라는 말에 아이가 지금보다 한참 애기였을 때, 나의 삶인데 마치 내가 빠져있는 듯한 삶을 살았던 내가 떠올랐다. 


   저자는 일 자체에서 가져오는 성취감만이 아니라 또 다른 성취욕도 느낄 수 있고 더 나은 나로 발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일을 우리에게 수많은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는 도구로 생각해야지 일 자체를 본질이나 목적으로 생각하게 되면 인생이 비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82쪽)고 한다. 나는 아이를 낳고 새로운 직장을 찾았을 때 내 적성과 경력과 전혀 상관없는 일인 물류 쪽에서 일했다. 일 자체뿐만이 아니라 직장이라는 환경과 사람이 만들어내는 여러 힘든 일을 겪으며 ‘지금의 일 자체를 나를 발전시키는 본질이나 계기로 삼지 말자.’라고 끊임없이 되뇄다. 그냥 단순히 지금의 경험이 훗날 다른 경험을 할 때 어떤 모양으로든 활용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가끔 일하며 마음이 무너지고 이렇게까지 힘들게 일하며 살 필요가 있을까 싶을 때마다 오늘 나의 한계를 정할지 말지는 내 마음에 달렸다나에게 가장 용기와 확신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내가 되어야 한다남의 성공역사만 바라보며 살지는 말자.”(123쪽)라는 저자의 말이 생각났다.       


   

엄마도 꿈을 꾼다.     


  엄마라는 정체성에 갇혀 벽으로 둘러싸인 집안이란 한정된 공간에서 새로운 정체감 혼란을 느낄 때 비로소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됐다. 그러면서 내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의 꿈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직업인으로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에 이르게 되었다. 달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듯 우리의 꿈도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우리가 늘 그것을 외면하고 돌아보지 않았을 뿐이제는 꿈에게 친절해야 한다꿈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면 거기에 대답해야 한다꿈과의 관계를 회복한다면 꿈은 언제나 내 편이 될 것이다.”(145쪽)라고 속삭이는 듯한 저자의 말이 또렷하게 귀에 들어오는 걸 보니 다시 나도 내 적성을 찾아, 내가 꿈꾸는 일을 하고 싶단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고민하는 것에 집중하자 주변의 사람들이 나에게 그 고민에 관한 조언들을 쏟아놓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됐다. 어느 날 저녁 시간에 전에 함께 일했던 직장 상사분과 동료를 오랜만에 만났다. 각자의 삶에 바쁘다 보니 일 년에 한 번 정도 만날까 싶은데 만날 때마다 상사분은 나에게 “너 시간 날 때 미리 청소년지도사 2급 자격증 따놔.”라고 말씀하시며 “너는 청소년 쪽 일이 딱 맞아. 특히 청소년복지보다도 활동 쪽으로. 지금은 아이들이 어리지만, 곧 초등학교 가면 시간이 날 텐데 다시 적성을 살려 일하는 게 낫지 않겠어?”라는 말씀에 예전에는 웃으며 “맞아요. 저도 아이들과 함께 프로그램할 때가 즐거웠던 것 같아요.”라고 받아치는 것에 그쳤다면, 이번엔 “이제 와서 제가 다시 그 일을 할 수 있을까요?”라는 의문과 함께 ‘다시 그 일을 하고 싶어요’라는 마음을 담아 보였다.      


  결국, 나는 그 마음을 담아두기만 하지 않고 실행에 옮겼다. 바쁜 일상의 할 일 목록에 ‘청소년지도사2급 자격증 따기’라는 목표를 넣었다. 책을 읽고, 지인의 말을 듣고 실행에 옮기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엄마라는 신분으로 육아와 살림을 하고, 낮 동안에는 일하고, 쉬고 자는 시간을 쪼개 틈틈이 자격증 수험서를 보았다. 오랜만의 공부라 설레기도 했지만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 ‘딴짓’이 그렇게 하고 싶듯이 나도 마찬가지였다. 예쁜 표지의 책들에 눈이 가고, 아이들과도 더 시간을 보내고 싶고 집안도 더 정돈하고 싶었다. 그래도 모든 것들을 조금은 미뤄둔 채 공부를 하고 4주 후에 시험을 보았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행히도 과락을 너끈히 면하고 합격점수를 받았다. 곧 내가 사는 지역에 대규모 청소년 기관이 생긴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분의 지지가 있으니 다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지금은 2년 정도 했던 물류 일을 그만두고 휴식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딱히 재취업에 대한 욕구가 없지만 지금 이대로 만족한다.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을 벌어다 주는 실질적인 나의 직업에 한 발짝 가까이 가는 것은 좀 천천히 하더라도 내가 내면에서 간절히 원했던 일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이렇게 넉넉한 마음을 갖게 된것도 다름 아닌 ’책’과 함께 하는 성장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엄마 말고 나로 살기》의 저자가 “나의 존재 가치를 그냥 멈춰 있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싶지 않다고 했던 말오늘 나의 한계를 정할지 말지는 내 마음에 달렸고 나에게 가장 용기와 확신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내가 되어야 한다”(123쪽)고 했던 말을 떠올리며 어제와 다른 나를 꿈꿔본다.



앞으로 내게 다가올 미래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여자가 되자.    

 

  어떤 장소어떤 시간에서도 내가 주도권을 쟁취해야 한다주도권을 쟁취한다는 것을 예의 없이 마구잡이로 덤벼드는 걸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그것은 바로 내 안에 잠들어 있는 혹은 죽어 있는 자신감을 깨우는 일이다가만히 나를 뽑아 주기를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있다는 것을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큰 목소리로 알려야 한다그래야 누군가 당신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117쪽)

  저자는 기업체 채용 기간이 아닐 때도 꾸준히 자신의 이력을 업그레이드시키고 원하는 곳에 제출했다고 한다. 이 책이 결혼 후 변한 여성의 삶을 쓴 에세이지만 도움 될 만한 책으로 다가왔던 것은 직업상담가로서 일하면서 겪은 사례를 다루기도 하고 일하고자 하는 경력단절의 엄마들에게 도전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실질적인 조언을 하기 때문이었다.      


  “정작 청춘일 때는 도전 정신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는데 엄마가 되고 나니 세상에 무서울 게 하나도 없었다.”는 저자의 말에 무척 공감이 됐다. 과거에 내가 얼마나 잘 나가던 여자였는지 말하는 사람보다 앞으로 내게 다가올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는 여자는 얼마나 더 매력적인가누구에게나 미래는 있다지금은 화려하지 않고 지극히 평범한 일인지 모르지만 그것이 빛이 되어 나를 밝힐 수 있을 때를 기다리며 한 걸음을 떼어 보자.”(75~77쪽)는 문장에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꿈틀되는 것만 같았다.      

  나도 엄마가 되고 나서 없던 배짱이 생겼다. ‘내가 생살을 찢어서 두 아이를 낳고 이만큼 건강하게 잘 키웠는데 뭔들 못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 어렵다던 출산과 육아라는 큰 관문을 통과한 자체만으로, 세상에서 젤 힘든 육아라는 고통의 순간을 고비 고비 잘 넘기고 있는 엄마라서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리란 근거 있는 배짱 말이다. 출산과 육아에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있는 남성분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엄마라면 다 공감할 것이다. 


  2년이란 짧지도, 길지도 않은 일하는 엄마로 살아가면서 과연 내가 일하기 전으로 돌아가면 그때도 일하는 것을 선택할까 생각해보았다. 결론은 ‘하겠다’이다. 엄마가 되고 나서 아이를 키우며 인간을 이해하게 되고 내 마음대로 아이의 생각이나 행동을 좌지우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가까운 타인의 비위를 맞춰가며 온갖 짜증과 투정을 최대한 일관성을 유지하며 받아내는 것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회에 나가서 다양한 성격과 기질의 사람들을 두루 감당해 낼 깜냥이 있다고 본다. 실제로 부딪혀 보니 순간순간 사람 때문에 힘들기도 했지만, 밖의 사람에게 치이니, 안의 사람인 가족에게는 위로를 받고 따뜻함을 나누는 행복의 순간들을 더욱 감사함으로 느끼게 됐다.      



나의 꿈을 지지해 주고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들과의 네트워킹     


 저자는 나의 꿈을 지지해주고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과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네트워크를 만들어보라고 조언한다.

  나 또한 엄마들의 네트워크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남편과 아이들을 각자의 자리에 보내고 남은 시간을 누구와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서 엄마의 삶의 질과 가정의 삶의 질이 달라진다고 본다. 남편 뒷바라지와 아이들 치다꺼리에 지쳐 있다가 일명 ‘자유부인’이 된 엄마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시간이 나기 전에 미리 생각해두지 않으면 갑작스레 생긴 시간을 어찌 보낼지 몰라 핸드폰만 뒤적이기 일쑤다. 그러고 시간이 다 되고 다시 엄마의 이름표를 달았을 때는 허무하기 짝이 없다. 난 감사하게도 네이버 온라인카페에서 성장하기 위해 큰아이가 세 살 정도쯤 됐을 때부터 노력하는 엄마들과 ‘공부’를 했다.‘글쓰기’를 하기도 하고, ‘책 서평’을 쓰기도 하고 ‘영어 공부’를 하기도 하는데, 내가 이렇게 책을 좋아하고 글을 쓰는 것에 푹 빠지게 된 것도 카페 덕분이다. ‘엄마’라는 키워드로 쉽게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는 데다가 ‘성장’이라는 키워드로 어디서 볼 수 없는 찬사와 격려를 받으며 함께 나아갈 수 있었다. 지금은 오프라인 독서모임을 통해 책을 함께 읽고 소감을 나누며 서로의 생각을 공유한다. 활발한 SNS활동을 통해 책리뷰를 올리고 책으로 연결된 사람들과 좋은 가치를 나누며 함께 좋은 책을 읽고 연대하는 재미도 한 몫 한다.  

    

  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도 과거의 나로부터 떨어져 긍정적인 모습으로 변화하고 싶다면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네트워크 모임을 찾아 꿈과 비전을 서로 나누고 함께 성장을 이뤄나갔으면 한다. 그러면 제 속도대로 원하는 삶을 찾아 한 발짝씩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는 위치가 바로 엄마의 자리인 것 같다. 엄마이기에 타인을 세우고 살리고 함께하는 모든 것에서 수월할 수 있다고 본다. 무슨 일이든 사람과 어울려 효과를 내야하므로 충분한 역량을 키워 세상밖으로 나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용기내보길 진심으로 바란다.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엄마로 산다는 것》, 신의진, 걷는나무, 2014

《엄마 말고 나로 살기》, 조우관, 청아출판사, 2018


* 이미지 출처

Jeffrey Paa Kwesi Opare 님의 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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