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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Nov 13. 2019

비몽(영화)

김기덕 감독 영화를 어떻게 봐야 하나

김기덕, 홍상수 두 감독은 한국영화감독 중 난해한 작품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많은 관객은 두 감독의 영화를 보고 어느 지점에서 재미와 훌륭함을 느껴야 하는지 곤란해하며 자신의 감상을 구체화하기 위해 비평가의 도움을 청한다. 비평가는 언제나 관심에 목이 말라 있다. 결국 두 감독의 영화엔 수많은 비평글이 뒤 따른다. 찬사 혹은 혹평 등 다양한 의견이 비평글을 통해 탄생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단순히 영화가 난해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분명 두 감독의 영화엔 사람의 감성을 자극시키고 매혹시키는 지점이 존재 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두 감독을 흔히 작가주의 감독이라고 하는데 작가주의 감독은 기존에 존재하는 영화 기법이나 관례보다는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을 더 중요시 여긴다. 그렇기에 관객에게 영화를 감상하는 새로운 태도를 요구한다. 이 새로운 관람 태도가 받아들여지냐 그렇지 못하냐에 따라 특출 난 감독인지 단순히 기괴한 감독인지가 결정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김기덕, 홍상수 두 감독이 요구하는 관람 태도를 수용하면 두 감독의 영화에서 많은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예술 작품에서 나름의 매력을 찾아내는 것은 언제나 기쁜 일이며 그렇지 못할 때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한창 주변 지인에게 영화 추천을 해줄 때가 있었다. 나도 재밌으니 너도 재밌을 거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김기덕 감독 영화도 추천해주었다. 나에 대한 신뢰로 김기덕 영화를 접한 지인 대부분은 다신 나에게 영화 추천을 요구하지 않게 되었다.  아마 그들은 김기덕의 다른 영화를 보지 않을 것이다. 나의 경솔한 행동 때문에 김기덕 영화의 가치가 절하되었다고 느꼈고 함부로 영화를 추천하는 것은 꽤나 위험한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여기서 그 위험한 일을 다시 해볼까 한다. 좀 더 신중하게....(홍상수는 나중에...)

 김기덕 감독이 요구하는 관람 태도가 무엇인지 말하기 앞서 스토리라는 것에 대해 알아볼까 한다. (줄거리나 이야기보다 굳이 스토리라 한 이유는 줄거리엔 항상성이 포함되어 있고 이야기엔 대화적 느낌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배경 상황과 인물의 선택이 맞물리면서 발생한다. 스토리는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발생한다. 어떤 인물이 24시간 집에서 먹고 자고 하는 곳에서는 스토리가 발생하지 않는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스토리는 흔히 우리가 '썰 하나 건졌다'고 말할 때 '썰'의 의미와 비슷하다. 대다수의 작품은 스토리가 발생하는 지점을 편집하고 꾸민 결과물이다. 스토리의 주요 구성물인 배경 상황과 인물의 선택 두 관계를 좀 더 살펴보자 흔히 말하는 호소력 짙은 스토리는 스토리를 이끄는 주도권이 인물의 선택보다 배경 상황에 주어져있다. 인물의 선택을 강요하거나 선택의 폭을 줄일 정도의 강력한 배경 상황이 주어지게 되면서 인물의 선택은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합리적으로 보이거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비극 작품에서 호소력 짙은 스토리를 많이 볼 수 있다. 대다수의 비극은 인물에게 굉장히 운명적이며 피할 수 없는 상황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인물의 선택이 스토리 진행의 주도권을 가지게 된다면 역동적이고 힘 있는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이를 간단하게 주체성 짙은 스토리라 명하겠다. 틴에이져 영화나 성장영화에서 주체성 짙은 스토리를 많이 느낄 수 있다. 주어진 배경 상황 즉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관습, 자신을 함부로 규정하려는 주변인들의 시선에 인물이 반항하고 이겨내는 모습에서 강한 주체성을 느낄 수 있다.

(이인성의 경주의 산곡에서)


 김기덕 감독 영화엔 인물이 자해나 자살하는 장면이 많다. 자해는 자신 몸의 통제권을 되찾기 위한 행위 중 하나이고 자살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정해버리는 주체적인 행위이다.(자살 만큼 인간의 주체성을 강하게 보여주는 행위가 또 있을까?) 이 점만 보더라도 김기독 감독이 주체성 짙은 스토리를 선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의 선호에는 긍정의 의미가 다소 약하다. 여기서 김기덕 감독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불편함 중 하나가 나온다. 인물의 주체적인 행동을 가감 없이 보여주다가 틴에이져 영화와 같이 인물의 성장이나 인물의 자의식 정립으로 끝맺는게 아니라 허무함, 덧없음의 반복으로 마무리를 맺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에서 물고기, 개구리, 뱀 몸에 돌멩이를 묶는 애기 스님이 성장하고 모든 업보를 주체적으로 털어낸 후 거둬들인 새로운 애기 스님이 물고기, 개구리, 뱀 입에 돌멩이를 쑤셔 넣는 장면을 보여준다. '

나쁜 남자'에서 한기는 선화에게 호감을 느끼자 선화를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로 즉 창녀 촌으로 끌어들이는 굉장히 주체적인 인물이다. 한기의 노력(?) 끝에 한기와 선화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트럭을 타고 선화의 몸을 또 다시 팔게 만드는 한기와 한기의 초연한 얼굴 표정으로 영화가 마무리된다. 인간의 주체성을 긍정도 부정도 안 하는 이런 김기덕 감독의 시선은 인간으로서 어찌하지 못하는 폭력적인, 운명적인 한계를 느끼게 한다. 이겨내고 극복한 고통은 양상만 살짝 바꾸어 다시 반복된다. 인간을 기만하는 듯한 이런 삶을 김기덕 감독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흐르는 주체성으로 표현한다. 김기덕 감독 영화는 이런 식으로 '삶은 고통이다' 라는 말을 절실하게 느끼게 만든다.

 김기덕 감독 영화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또 다른 점은 영화 설정 논리에 허점이 많다는 것이다. 재밌는 건 이 허점이 감독의 능력 부족이라 느껴지기보다는 의도적으로 설정 논리를 무시한다고 느껴진다는 점이다. 김기독 감독은 인물의 강력한 주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독특한 인물을 설정한다. 인물의 독특함을 보여주는 장면을 위해서라면 설정 오류 따윈 과감하게 무시해 버린다. 이 점은 '비몽'에서 많이 볼 수 있고 앞서 말한 김기덕 감독이 관객에게 요구하는 관람 태도가 무엇인지 말해준다. '비몽'의 주연인 오다기리 조는 영화 내에서 일본말로 연기를 한다. 그럼에도 영화에 같이 등장하는 한국인 배우와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 사실상 그냥 한국인 취급을 하는 것이다. 김기덕 감독은 오다가리 조라는 배우의 아우라가 필요하기에 언어 설정 오류 정도야 가뿐히 무시한다. 진(오다가리 조)이 꿈을 꾸면 란(이나영)이 몽유병 상태로 진의 꿈속 행동을 그대로 실현한다는 설정에서 란이 자기 전에 자신의 몸을 구속한다면 아무 문제 될 것이 없음에도 란이 그러한 선택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스토리가 진행이 된다. 인물의 강한 주체성을 보여주는 선택에 의해 스토리가 진행되는 김기덕 감독의 다른 영화와 달리 '비몽'은 몽유병과 원치 않는 이별이라는 강력한 배경 상황을 통해 스토리가 진행된다. 하지만 란이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으므로써 다시 주체성 짙은 스토리로 역전된다.(김기덕 감독의 주체성에 대한 고집을 잘 보여준다 이는 김기덕 감독 영화에 항상 따라오는 억지스럽다는 혹평의 원인이기도 하다.) 결국 란이 수갑으로 옛 애인을 살해한 후 정신병원에서 자살하는 장면과 자신의 잠을 이겨내기 위해 자해하는 진의 장면이 만들어진다.

영화 설정이 어떻든 간에 김기덕은 수많은 설정 오류를 무시하며 자신의 철학을 표현한다. 죽을 때까지 사랑하고 헤어지고 괴로워하는 인간의 숙명적인 반복의 고통을 강력한 이미지로 소비하고 허무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비몽'은 김기덕 감독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이 보게 되면 수많은 설정 오류가 거슬려 몰입해서 보기 힘들 것이다. 너무 억지스럽다는 비판을 김기덕 감독은 감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이런 단편적인 비난만을 하기에는 김기덕 영화의 가치가 아쉬울 따름이다. 그렇기에 나는 김기덕 영화를 보려는 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미지와 주체성 이 두 가지 만을 집요하게 보라고!

(장파의 My little riot 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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