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하루치 즐거움

by 모리댄


“커피 말고 맥주 마시러 가자.”

식사할 때 이미 마음을 굳혔다. 나는 다시 이 친구와 만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한 살 어린 친구였다. 그는 나를 만나기 전에 식사할 곳과 2차로 갈 카페까지 다 알아본 것 같았다. 그 친구는 어두웠다.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그 중간 사람이면 좋겠는데 어둡기만 했다. 내가 한없이 환한 사람이었으면 좀 달라졌을까. 지금 내가 가진 빛으로는 그의 어둠을 견디기 힘들었다. 또렷한 정신으로 또렷한 대화를 나누고 싶지는 않은 상대였다.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조금은 흐트러진 상태로 흐트러진 말들을 주고받고 싶었다. 그 친구는 내 말에 당황해했지만 이내 같이 적당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우리는 한 스몰비어에 들어갔다.



대부분의 호프집이 그렇듯 음악이 흘러나왔다. 주인이 그다지 확고한 음악 취향을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이돌의 노래도 나왔고, 팝도, 그러다 정준일의 노래도 나왔다. 노래 좋아해? 좋아해. 음악은 편한 주제였다. 굳이 따지자면 인디 쪽을 선호하기는 하지만, 웬만한 장르는 가리지 않고 듣는 내게 음악으로 한두 시간 대화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정준일을 좋아한다고 했다. 들어보니 정준일보다는 그 가수의 '안아줘'라는 노래를 좋아한 것 같았다. 나는 '좋은 날'이나 'plastic'도 들어보라고 했다. 그 친구가 좋아할 만한 가사와 멜로디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닮은 노래는 마음을 동하게 하는 법이다. 그는 마음에 들어했다. 마음에 든 척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상관없었다.



맥주를 들고 나누는 대화는 편안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면 짠. 서로의 잔을 부딪히면 됐다. 맥주여서 더 좋았다. 조그마한 소주잔으로 건배를 하면 마치 주먹을 부딪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너무 친근하다. 와인 잔은 너무 로맨틱하다. 나는 친근해질 생각도, 로맨틱할 생각도 없었다. 끝을 정해놓고 마실 주종으로는 맥주가 제격이었다. 두 잔에도 알딸딸해졌다. 처음 본 사람 앞이라는 것도 잊고 노래를 흥얼거렸다. 꿈도, 마땅한 취미도 없고, 자신의 학과는 따분하며, 평범한 일상을 벗어나고 싶지만 용기도 없다는 그 친구를 달래주기도 했다. 이 친구도 참 자기 포장을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어느새 열 시였다. 그만 일어나자고 말해도 괜찮을 시간이었다. 헤어질 즈음, 그는 다음 약속을 잡으려 했다. 나는 어물쩍 집에 들어가라며 그를 보냈다.

그 친구 이후에 소개는 받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그런 자리가 생기면 종종 맥주집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맨 정신으로 깔깔거릴 수도, 어색한 공기를 기꺼이 견딜 의지도 생기지 않는 상황이라면 필히. 맥주는 편한 사람들과 즐길 때면 기름이 되어 공기를 달아오르게 한다. 잠 안 오는 밤 혼자 마실 때는 소란한 마음을 재워주니 이불 같기도 하다. 그 날의 맥주는 하루치 즐거움이었다. 미래에 대한 부담 대신 채워주는 딱 하루치의 가벼운 즐거움.


다음날 아침 소변과 함께 배출해버리면 그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