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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잘꾸 Jul 30. 2020

글쓰기를 만난 라잘꾸  


글쓰기를 만난 라잘꾸.


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  

순전히 혼자 생각하고 지어낸 말인데 읽을수록 머릿속으로 되뇔수록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 듯했다.

"글쓰기가 나를 구원할 거야."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나 스스로를 글쓰기 따위가 어떻게 도와준다는 것일까?


꿈이 없이 살아왔다. 목표도 없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잘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엄청나게 잘하는 일이나 재능은 '천재' 혹은 '영재'라도 불려지지 않는 이상 이번 생은 다시 태어나야 되지 않을까 싶다.

갈고닦고 싶은 나만의 즐거운 일, 평생을 매진하고 싶은 주제에 대해 지금껏 안갯속을 헤매듯 살아왔다. 포기했고 잊고 살았고 무감각해졌고 돈이나 안정된 직장, 빵빵한 통장잔고가 최고라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감성적이고 예민한 성격이 사회생활에 발목을 잡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딱히 느끼진 못했지만 살면서 점차 깨닫게 되었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괜스레 마음이 설레며 문구점에서 멜로디카드나 각종 예쁜 카드를 모았고 방에 불을 끄고 반짝거리는 트리를 바라보며 감상에 빠지곤 했다. 여행에 대한 지나친 낭만도 품고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모든 모습을 감성적으로 연결 짓고 그런 글이나 사진을 무척 좋아했다. ‘추억’이란 단어가 좋았고 손편지 쓰는 걸 재미있어했다. 꽉 막힌 답답한 공간에 갇혀 있으면 온몸이 가려우면서 아토피 증상이 일어났다. 나는 몸도 마음도 예민한 사람이었다.   


몇 해전 직장보다 귀농이 나을 것 같아 무턱대고 농사짓는 처갓집에 처가살이를 시작했다.

한 겨울 반복적 농사일을 할 때면 라디오를 습관처럼 들었다. 오전부터 해질 무렵까지 듣다가 남의 사연을 듣고 피식 웃곤 했다. 웃음과 감동을 주는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다 선물 소개가 항상 나올 때면 장모님은 한마디  하셨다.


“듣기만 하지 말고 라디오 사연을 한번 써보게!”  

“선물이 여기 널렸다네!”

멋쩍게 웃고 말았다.

글이란 걸 학창 시절 외엔 잘 써본 적도 없고 쓸만한 얘기 거리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날 밤 무심코 있던 내 머릿속에 번뜩 스치는 에피소드가 하나 떠올랐다.

그날 밤 사연을 보냈고 까맣게 잊어버렸다. 다시 한 달 하고 보름이 지난 1월의 한 겨울 아침에 02로 시작하는 전화를 받았다. 무심결에 받았는데 뭔가 이상했다. 여자 목소리였지만 자주 찾아주던 김미경 팀장도 아니었고 다짜고짜 내가 나인지 확인하셨다.

“축하드립니다.” “00 라디오입니다.”

“보내주신 사연이 오늘 아침에 소개되니 꼭 들어보세요!”     

“네?”

“제 글이 라디오에 소개된다고요?”      

그날 오전 내내 기분이 붕 떠 있었다.

방송에 편집 하나 없이 소개되고 혼자 일하며 듣다가 킥킥 대며 웃었다. 내가 혼자 썼던 글이 전국에 방송이 되고 누군가 듣고 있다고 생각하니 온몸이 간질간질해 죽을 거 같았다. 묘한 기분.

이걸 말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장모님에게 말했더니 펄쩍 뛰시며 놀란 눈으로 말하셨다.     

“라디오 사연이 소개되는데 쉬운 게 아니야!”

“어디 장모 얼마나 깠는지 한번 들어보세!”     


그날 저녁 장인어른은 거실에 누워서, 장모님은 컴퓨터 앞에 귀를 기울이며 민망해하는 나의 최초의 라디오 글을 듣고 놀라셨다. 선물을 받게 되었고 어쩌다 한 번의 행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라디오 상품이 도착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흘렀고 지루한 그 기다림을 견디지 못해 한 가지 꾀를 내었다.     

“어차피 선물 받기까지 오래 기다리는데 그 시간에 다른 글을 또 써보자!”

“여러 개의 선물이 차례대로 온다면 기다리는 지루함이 없어지겠지.”     

두근거리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선물을 받기 위해 쓴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글 쓰는 자체가 재미있어진 것이다. 물론 방송에 나오는 것도 신기하고 떨리는 느낌을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내가 쓴 글을 누군가 듣고 봐주지 않을까?’ 기대하며 글감을 찾아 헤맸다. 글을 쓰면 쓸수록 그 깊이에 빠져 들었고 라디오 사연이 아니어도 글을 계속 쓰고 싶다는 강렬한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미웠던 감성적이고 예민한 성격이 라디오 글쓰기엔 엄청난 장점으로 다가왔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각도와 미세한 순간을 잘 포착해 이야기로 풀어냈고, 다각도로 상황을 묘사하며 글에 감정을 입히는 일탈이 신기했다.


라디오를 지금도 들으며 즐겁게 글 쓰는 재미에 빠져 살고 있다. 다른 사람이 쓴 재미있는 이야기가 10이라면 내가 직접 쓰고 소개된 사연의 재미는 100이었다. 비교할 수 없는 글쓰기에  흥미를 붙여버린 난 쓸 공간을 찾아 헤매었다. '브런치'란 곳도 알았고 필사 모임에도 가입하고, 주 1회 50일 글쓰기도 참여했다.  취미 이상의 관심으로 꾸준히 라디오에 글을 써 보낸지도 1년 6개월이 되었다.


우연한 기회나 환경에서 때론 우리는 길을 발견하기도 한다. 잃어버린 길 위에서 최고의 교훈을 배울 수도 있고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나의 글이 누군가의 커피 한잔이 되는 순간과 내 보잘것없는 글도 쓸모가 있다고 느꼈던 순간을 라디오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그 작은 감동과 기쁨은 분명 새로운 출발점이 되고 계속 글을 써보라고 날 채찍질했다. 라디오와 글쓰기, 그 길 위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을 통해 내 삶도 멋지구나, 나도 소중한 사람이구나 라고 깨달으며 글을 쓰고 작가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 마음속의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인정받는다는 건 멋진 일이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삶을 바라보는 인간의 방식이 그 삶을 결정한다)     


나는 글쓰기를 우연히 만났고 이제는 글 쓰는 삶을 바라보며 계속 써 내려가고 있다.

글을 쓰고 있는 순간 가슴이 심하게 설레기 때문이다.



*라디오 잘하는 꾸러기(라.잘.꾸)

라잘꾸*


라잘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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