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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잘꾸 Nov 10. 2019

맥가이버와 기계치

용접, 공구, 드릴, 농기계, 조립, 전기, 미장


모두 나랑 거리가 먼 단어들이었다. 

익숙지 않아 잘하지 못했고 그래서 스스로 불편했었다. 장인어른은 나와는 반대였다. 웬만한 공구는 다루시고 직접 용접하여 창고도 뚝딱 지었고 버려진 폐 파이프나 고철을 활용하여 문고리나 간단한 농기구도 제작하셨다. 그러다 보니 마을 이웃분들은 잘 모르는 용접을 활용한 수리나 전기. 수도계량기나 모터 등이 고장 나면 장인어른을 찾고 도움을 구했다. 특히 용접 관련해서는 더욱 그러했는데 나는 처음엔 농사만 잘 지으시는 줄 알았다. 농부가 아니라 기계 관련 쪽으로 일을 하셨어도 잘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활 속에 묻어나는 아이디어


일을 하실 때도 남들보다 힘을 덜 들이고 쉽게 하는 요령을 금방 터득하셨고 그때그때 쉬운 방법을 찾아 능동적으로 일하셨다. 그와 반대로 나는 일단 느렸다. 뭘 하든지 간에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몸보다 먼저 머리로 생각하기 때문 이거 같다. 몸이 먼저 움직이지 않고 생각한 후에 움직이기 때문에 남들이 보기에 한 템포 느리다고 말해주었고 엄청난 단점이라고 생각하며 여태껏 살아왔다. 

마을에 나이 지긋하신 분과 비슷하고 크게 어렵지 않은 간단한 농사일을 동시에 한다고 할 때  속도만 비교하면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장인어른과의 이런 큰 차이점이 굉장히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처음 한두 번은 가르쳐주고 넘어가겠지만 장인어른도 사람인데 적지 않게 답답함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이야 이렇게 말하지만 막상 그런 순간이 닥치면 나는 내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한번 더 알려주면 되지 왜 그렇게 짜증부터 내실까?" 

"이걸 해봤어야 알지."

"모를 수도 있지 않아?" 

"이거 모른다고 그렇게 화낼 일이신가?" 


기계치는 바로 나였다. 

1종 보통 운전면허지만 스틱형 기어 1톤 트럭을 타면 시동이 꺼지기 일쑤였고, 예초기 칼날을 교체하면서 엉성하게 조립하였다. 지게차는 살면서 처음 운전해 보았고 말귀를 못 알아듣고 운전하다가 장인어른이 크게 다칠뻔한 적도 있었다. 트랙터는 봄에 신나게 탔지만 결국 창고 기둥을 로우더로 박아서 찌끄러트리고 일순간 집안 정전을 일으키며 전선을 끊어 버렸다. 내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의 바퀴도 펑크 나면 어떻게 할지 사실 자신이 없었다. 뭐만 했다 하면 일일이 손이 가야 했으니 체면도 면목도 서질 않았다. 

상황이 이렇기에 장모님은 '얘는 아예 기계는 잘 모르는 사람'으로 치부해 버렸고 장인어른이 안 계실 때 무언가 문제가 생겨서 나에게 도움을 어쩔 수 없이 구할 때면 이내 금방 말하셨다.


"안 되겠거든, 모르겠거든 그냥 놔둬!"

"괜히 일 더 크게 벌리지 말고!"


사실 모른다. 하지만 그냥 있을 순 없기에 살펴볼 뿐인데 도움을 요청하셨다가 '넌 잘 모르니 그냥 내버려 두어라'는 식으로 치부해 버리신다. 자존심 좀 상한다 사실. 

장인어른은 작은 것부터 한 개씩 시켜보셨다. 

"이것도 갈아봐라."

"이것 좀 교체해라."

만약 내가 혼자 끙끙댄다면 보시다가 해결하시곤 하셨다. 



어느 날 처갓집에서 사용하는 농기계 대리점에 견습?을 가게 되었다. 

'공구 이름이라도 알고 와라'라는 큰 과업이 주어졌고 점심을 얻어먹으며 일주일간 출퇴근을 했다. 

작은 농촌 도시의 대리점이라 사장님 내외와 수리 기사님 한분이 전부였고 인사를 하고 간단한 청소나 수리, 수리할 때 보조 역할을 맡았다.  사실 뭘 보조했는지는 명확치 않았다. 다만 청소와 공구 정리는 확실히 하고 싶어서 손을 많이 댔는데 사장님은 좋아했고 수리 기사님은 자주 쓰던 공구 위치나 동선이 바뀌니깐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다. 


여기서의 모든 모습이 결국 장인 장모님의 귀에 들어갈 테니 뭐든 열심히 하려고 애를 썼다. 

사장님은 무척이나 질서와 정리정돈 정해진 규칙이나 규범을 중요시하는 분이셨다. 수리를 할 때도 정확한 순서와 알맞은 공구를 가지고 하라고 하셨고 농기계 정비에서 어떤 점이 중요한지 꿰뚫고 계셨다. 

농기계를 판매하지만 농기계로 직접 농사경험이 있으신지 운용하는데도 웬만한 농부들보다 잘하는 것 같았다. 그간에 보고 듣고 직접 하시는 걸로 봐서 분명하였다. 

일주일 간의 견습? 이 끝나고 돌아가는 날 사장님이 말하셨다. 

"안서방 내가 봤을 때 자네는 대범한 사람은 아닌 거 같다."

"대범하진 않지만 청소나 정리하는 걸 봤을 때 나름대로 꼼꼼하게 처리하려고 애쓰는 거 같아."

그래서 보기 좋았다고 말하시며 한마디 더 덧붙이셨다.

"목소리가 커야 돼!" 

"목소리가 커야지 남들도 대화를 할 때 답답함을 느끼지 않아." 

"장인어른이 뭔가 일을 시켰을 때 답답함을 느끼지 않아야 해." 


내 목소리 지적은 군대에서 끝난 줄 알았는데 여태껏 변한 건 없나 보다. 목소리 톤이 부실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꾸만 부족한 점을 꼬집으면 왠지 감추고 싶은 치부를 건드리는 것 같아 기분 나쁜 감정이 아닌 뭔가 숨기고 싶은 콤플렉스를 들키고만 느낌이었다. 사람이 타고 난 인성이나 성격, 분위기가 군대나 회사 등 어떤 조직에 스며들어 바뀐 것 같아도 내면에서 살아 숨 쉬는 본질적인 바탕은 쉽게 변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타고 나는 부분인데 굳이 남들이 보기에도 바뀐 거처럼 가면을 쓰고 바뀌었다고 행동하며 살아야 할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기 직업이나 주위 환경 때문에 스스로의 본모습과는 다른 모습과 태도를 보이며 행동할 수 있겠지만 겉모습일 뿐이니 깊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이든 단점은 없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할 뿐이지 주눅 들 건 아무것도 없다고 다짐했다.

목소리가 크면 큰 데로 작으면 작은데로 얼마든지 생활하며 무언가 이룰 수 있고 다른 부분이 상쇄해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미세먼지 심했던 날 농기계 박람회



며칠 뒤 대리점에서 농기계 박람회를 열었고 주변에 계신 농민들을 초대하여 식사도 대접하고 신제품 설명과 작동법 등 시연회도 거치며 경품행사까지 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크게 바쁘지 않아서 참여했고 잔심부름도 조금 거들면서 구경도 하였다. 추첨을 통해 라면이나 롤 휴지 같은 상품도 주었고 나도 참여했다. 추첨권을 들고 있는데 이상하게 다 피해 가고 1등 추첨만 남겨놓게 되었다. 상품은 예초기였고 약 50만 원가량의 고가의 경품이었다. 대리점 본사에서 파견 온 직원분이 진행을 맡아서 1등 추첨을 발표했다. 


"마지막 1등 경품의 주인공은 바로바로.... 1204번!" 

"으잉?" 

" 나잖아?" 

부랴부랴 뛰어나가 예초기 상품을 타 왔고 옆에 계시던 장모님이 놀라서 펄쩍 뛰셨다. 집에 가져갔더니 장인어른은 놀라지 않으셨다. 다 알고 있다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시며 말하셨다.

"안서방이 대리점 가서 좀 거들어 줬다고 대리점 사장의 입김이 작용하여 겸사겸사 챙겨준 거 아니냐?"

"내가 보기엔 그런 거 같은데.."


장인어른의 추측은 빗나갔고 알고 보니 이러했다. 장모님과 함께 박람회에 참가하신 지인분께서 급한 볼일로 경품행사 추첨권을 맡기고 가버리셨고 그 추첨권을 내가 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잠시 동안 예초기의 주인은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시며 옥신각신 하시다가 그냥 우리가 쓰기로 결론이 났었다. 추첨권을 하라고 본인이 주었고 그때 행사 시간에 없었으니 미안해 할거 없는 사실이라고 받아들였으니까...

그렇지만 장모님의 호불호 강하고 주변 사람에게 빚지고 피해 주는 거 극도로 싫어하시는 성격상 그게 쉽게 되지 않았고 우리끼리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 비밀이랄 것도 없었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 당시 라디오 사연에 맛 들인 내가 손가락이 근질근질하여 참지 못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돌이켜 봤을 때 좋은 글감이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고 이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써 버렸고 며칠 뒤 라디오 방송국에서 당첨되었다며 전화로 간단한 인터뷰가 이어졌다. 설마 뽑히겠어라는 똥 배짱으로 처음부터 익명도 요청하지 않았기에 부랴부랴 걱정이 되어 익명을 요구하였고 기쁜 소식을 장모님에게 전하고 엄청한 구박을 받았다. 


왜 굳이 라디오 사연을 보내서 난처하게 만들었냐며 그때 추첨권을 맡긴 지인이 방송을 듣고 알게 된다면 서로 난처한 상황에 놓이는 게 심하게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급기야 라디오 작가와 1:1 통화를 하시며 상황을 설명하셨고 작가님은 털털하게 위로했다. 

"어머님 너무 걱정 마세요."

"저희가 익명 처리하고 사연자분 지역도 다른 곳으로 할 테니까 혹 그분이 듣는다고 해도 알지 못할 거예요."

장모님은 끝내 나를 원망의 눈초리로 보시며 마음이 불편해서 잠도 잘 안 온다며 안절부절못하셨다. 


경품 1등 예초기의 가격이 약 50만 원가량인데 사연 당첨 상품은 (50만 원 상당의 선물)이었다. 

50만 원 치 경품을 타고 그 스토리를 가지고 방송에 보내어 다시 50만 원 치 선물을 받게 된 것이다. 글을 잘 쓴다고 절대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사건이 생겼을 때 직감적으로 써야겠다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고 쓰고 싶을 뿐이었으니까. 


결국 방송은 나오기로 결정되었고 재미있는 사연으로 소개되었지만 장모님은 사연을 들으시며 내내 심각해하셨다. 또 다른 고민이 생겼는데 과연 이 상품을 본래 추첨권의 지인과 나눌 것이냐 말겠이냐를 두고 심각해하셨다. 다시 비밀에 부치기로 하고 넘어갔고 상품이 도착하기까지 장모님은 잊어버리셨는지 다시 언급하지 않으셨다. 


목소리가 작아도 지금은 기계치여도 나는 기죽지 않기로 했다.  신기하게도 내가 쓰고 싶은 순간이 왔을 때 글을 쓰고 라디오라는 매체를 통해 공유하고 즐거움을 느낄 때마다 운은 종종 곁에 와주었고 이벤트적인 기쁨을 벗어나서 좀 더 깊은 본질에 대해 스스로 묻게 되었다. 


"어라 이거 장난이 아닌데?"

"글 쓰는 게 이렇게 재미있다니."

"남들은 라디오 듣기만 하거나 관심도 없는데 난 왜 이리 참여하고 싶고 즐거울까?" 

"무언가를 적고 싶고 표현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계속 쓰고 싶은 이유는 뭐지?"

"남들이 비웃던 말던 내 소질은 혹시 글쓰기와 관련 있는 건 아닐까?" 


그날 밤 많은 생각이 들었고 글쓰기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비록 라디오에 국한된 글쓰기였지만 무언가를 계속 써내려 가다 보면 다른 글쓰기와 만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황사마스크 100개
견과류 세트
마스크팩과 다시팩 세트
백화점 상품권 20만 원
설렁탕 세트
어묵세트
타월세트


















이 모든 선물의 합이 5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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