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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잘꾸 Nov 10. 2019

 다시 찾은 봄,  멈추지 않던 글

장모님은 위대했다.


봄이 오기 전 두 분은 여행을 떠나셨다. 


마을 몇몇 분들과 계모임을 이어 가셨고 겨울에서 봄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농한기가 찾아왔다. 어렵사리 시간을 맞추고 여행사를 통한 단체 패키지 여행지로 동남아 라오스로 떠나시게 되었다.  


"뭣 하러 외국까지 가는지 모르겠네."

"우리나라도 좋은 데가 얼마나 많은데."

"바닷가나 가서 바람 쐬고 회나 먹으면 되지 막상 외국 나가봐도 재미도 없어 가이드 따라다니기 바쁘고.."

장인어른이 옷 다 갈아입으시곤 불평을 하셨다. 


"다른 나라 가서 배울게 얼마나 많은데 가면 좋지 여보." 

"베트남 다낭을 한번 가봐야 하는데 옆집 미자가 만날 때마다 놀러 가자고 하는데 아주 애먹겠어." 

장모님의 최애 여행지는 다낭인 거 같았다. 


마지막으로 나는 여행을 떠나 본 것이 기억나지 않았다. 베트남 다낭이었던가? 가족끼리 난생처음 가보았던 기억이 났다. 이국적인 풍경과 전통시장의 먹거리, 자유로운 쇼핑과 이색 이동수단까지 동남아 도시들은 저마다 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라오스라 하면 혼자 생각하고 휴식하고 재충전하기 위해 좋은 곳이라며 추천하는 말들을 지인에게 자주 들었고 관련 책을 도서관에서 보고 언젠가 가볼 나라 중 한 곳으로 마음속에 저장해 놓았었다. 

1년의 고된 농사를 마치고 다시 새로운 봄의 시작 전 장인 장모님의 재충전의 시간을 축하드리며 아쉬운 대로 용돈을 드렸더니 극구 사양하시는 장모님이다.


"자네 마음만 받겠네." 

"받으면 좋겠지만 다음에, 다음에 그때 받도록 하겠네." 

"...... 그래도 장모님 식사라도 하실 때 보태쓰시라고."


용돈을 드려도, 안 드려도 불편해지는 이 마음. 


혼자 집에 있을 것을 염려하여 장모님의 냉장고 안 반찬 1차 브리핑이 끝나고 몇 분을 데우고 어떻게 꺼내서 어떤 접시에 덜어먹고 우편물이 어떤 것이 오는지에 대한 2차 브리핑 내용을 머릿속에 저장했다.


"잘 다녀오시고 조심하세요!" 

"그래 다녀오마."

"집 잘 보고 시킨 거 하고 쉬고 있어라."


혼자만 남은 텅 빈 처갓집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식탁 의자에 앉으려는데 엉덩이에 뭔가를 깔고 앉아 버렸다. 

아뿔싸 이건 장모님의 여행 손가방인데.. 모르시는 걸까? 

전화 연락을 드렸더니 크게 중요하진 않아서 괜찮다고 하셨지만 이내 1분도 안돼서 여행 경비가 몽땅 거기 있다며 차 타고 급하게 터미널 인근으로 가져오라고 하셨다. 


30분의 시간이 흐르고 허겁지겁 장모님께서 달려와 손가방을 낚아 채 가셨고 그제야 집으로 돌아와 혼자가 되었다. 

"장모님도 참 무전여행 가실 뻔하셨네." 

"공항 가서 알게 되었으면 어쩔 뻔했어." 


이젠 익숙하게 이런 상황이 오면 메모를 하고 라디오 홈페이지를 들어가 적당한 코너 안에 글쓰기 버튼을 누른다. 채 5분도 되지 않아 짤막한 사연이 완성되고 저장 버튼을 누른 뒤 장모님이 시키신 곶감 포장을 하기 위해 마당 옆 작업장으로 향했다. 얼마만의 혼자만의 시간이던가. 마음속이 너무 홀가분하고  머릿속에 그동안 감춰두던 생각들이 하나 둘 고개를 들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느라 바빠지고 있었다. 


장모님의 건망증은 메밀국수세트로 돌아왔다.




"농사 지어보니 좀 알겠어?"

"언제까지 여기서 두 분과 살 수 있을까?" 

"이사 오려면 돈이 00 정도 있어야 되는데 대출받을 거야?"

"대출이 되겠어?"

"덜컥 사버린 집이 생각대로 쉽게 팔려줄까?"

"전세로 살걸 덜컥 집을 사버린 것은 아닐까?" 

" 이 동네 집값이 높은 이유를 당최 모르겠다니깐."

"농사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3일 뒤 두 분은 무사히 돌아오셨고 간식으로 챙겨 가셨던 과자와 망고 말린 먹거리를 잔뜩 사 와서 나눠 주셨다. 라오스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던지 고생만 했다며 툴툴거리셨다.


"길거리에 쓰레기가 얼마나 돌아다니던지..."

 여행 내내 현지 가이드도 불친절하고 잠자리도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가이드가 쇼핑 관련 목적지로만 유도하며 억지 쇼핑을 은근 강요하며 팁만 두둑이 받아 챙겼던 모양이었다. 


" 그동안 뭐 먹고살았나?"

"출발할 때 경비가 들어있는 가방을 놓고 가서 자네가 연락 안 했으면 공항 가서 알았을 거야."

"어휴 나도 치매가 올라 그러나 참 애먹겠어."

"자네도 평소 깜빡깜빡하던데 혹시 치매 오는 거 같으면 빨리 병원 가봐야 돼."

"요즘은 젊은 사람도 30대만 넘어가면 치매 오는 사람이 그렇게 많단다."


(네 장모님, 덕분에 가만히 앉아서 사연 또 쓸 수 있었어요.)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크게 깜빡하신 이야기 있으면 부탁드릴게요.) 

마음속으로만 말했다. 


장모님의 라오스 여행 후기를 들어 드리다가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장모님 혹시 여행 관련 재미있는 스토리 있나요?" 

"왜?" "또 어디 쓰려고?"  하시며 기분 좋게 웃으셨다. 

"그래 내가 생각나는 거 있으면 바로 말해줄게."

"선물은 자네랑 반반 나누면 되겠네." 



잠시 뒤 생각이 나셨는지 얘기해주시며 혼자 계속 웃으시던 장모님이 사연 글감을 제공해 주셨다. 

"이건 내가 저번에 계모임 여행 갔을 때 가이드가 해준 얘긴데.."
아는 지인분이 첫 해외여행을 가셨는데 마을 이장이라 여러 개의 여권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모두들 순박하고 해외여행은 처음이라 마을에서 제일 가방끈 길고 똑똑한 이장님에게 모든 걸 맡기고 안심했는데 글쎄 이분이 나름 머리를 쓴다는 게 공항에서 여권 잃어버릴까 봐 여권 모두 구멍을 내서 묶어서 들고 가지고 갔다가 공항에서 결국 출국심사가 막혀서 여행은 못 가고 이장 자리를 내려놓게 되었다는 웃픈 스토리였다. 


장모님의 지인 얘기는 캠핑 텐트로 돌아왔다.




장인 장모님 덕분에 글쓰기를 멈출 수 없었다. 


훗날 장모님께선 여행 모임의 이름을 짓기 위해 고민을 내게 털어놓으셨다. 함께 농사짓던 아주머니들이 의기투합하여 만든 모임인데 명확한 이름이 없어서 뭐가 좋을지 내게 물으셨다.  장모님은 '고추작목반'이 좋은지 아니면 다른 이름이 어울릴지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브라보!


고민이 있을 때는 쓰는 것이 해결책이 되었다. 

나의 소통과 글쓰기의 해방구인 라디오가 있기에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장인 장모님만 있으면 글감이 멈추지를 않았다. 살아오시고 또 생활하시는 자체가 소중한 글감이 되어주었다. 수많은 원석을 가지고 계셨고 그걸 다듬고 포장하여 이름 모를 작가님에게 간택받는 임무는 나의 몫이었다.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장모님은 라디오 청취자의 도움을 받아 여행 모임의 이름을 갖게 되셨다. 

그렇게 '비주류' 모임은 탄생했고 글쓰기와 라디오의 긍정적인 힘을 믿기 시작했었다. 

라디오는 글쓰기에 대한 재미에는 오랫동안 타오를 장작을,  쓰고 싶다는 내 안의 열망에는 기름을 부어주었다. 



장모님의 작명 고민은 커플시계로 돌아왔다.












반갑지 않은 미세먼지와 함께 되돌아온 봄. 


반갑지 않은 녀석의 잦은 출현에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오토바이 타는 순간이면 마스크를 해도 입속으로 벌컥벌컥 PM2.5 너란 녀석을 들이마시는 거 같아 숨을 잠시 참아 보곤 하였다.  미세먼지 좋음, 보통, 나쁨, 매우 나쁨으로 공기는 색깔별로 나뉘는데 안타깝게도 오늘은 매우 나쁨으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대기질 얼굴 상태는 잔뜩 찡그리고 화가 나신 장인어른의 얼굴을 닮아 있었다. 


먼지 따위는 소화제처럼 마셔야 한다는 장인어른 앞에서 엄살을 부릴 수는 없기에 트랙터에 올라타서 논갈기 하러 출발했다. 겨울 내내 묵혀 있던 논자리들은 저마다의 속살을 드러내며 또다시 1년의 시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농부가 될 수 있을까? 

잘 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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