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런던, 그리고 교토

5. 우연이 운명이 된 여행

by 하현태



영국 여행이 끝나고 평화로운 나날을 보냈다. 문래동으로 시시싯 엠티도 가고,『우리는 왜 일기 속에 편지를 쓰나요』도 출간했다.

그렇게 6월. 우리는 조금 갑작스럽게 3박 4일의 교토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계기는 무척이나 뜬금없다. 그냥, 여름의 교토가 보고 싶었다.


그렇게 새로 산 작은 디지털카메라와 함께 오사카에 향했다. 우선 김해공항 라운지에서 소시지와 핫초코, 신라면부터 먹고.

간사이 국제공항에 도착해 라피트를 타러 가는 길. 나는 그 길이 참 좋다. 특히 승차장의 음료 자판기가 그렇게나 정겹다. 오사카에 도착하니 해가 저물고 있었다. 23년에 K 남매, 그리고 동기 Z와 함께 걸었던 길을 다시 걸었다. 도착한 곳은 그때 갔던 소고기 오마카세 집. 너무 좋았던 나머지 1년 만에 또 갔다.

직원이 많이 바뀌어 알아보는 사람이 없던 게 조금 아쉬웠지만, 메뉴도 확 바뀌어 있었다. 애피타이저로 주는 육회부터 각종 부위와 특수부위. 찍어 먹는 붉은 달걀과 후식인 냉면, 차, 아이스크림까지. 훨씬 맛있어졌다. 아, 중간에 술도 주문했다. 원래 계획에 없었는데 바 테이블에서 너무 맛있게 마시고 있는 외국인 커플을 본 엄마가 탐이 났다. 그렇게 종업원에게 커플이 마시고 있는 술을 물었고, 여차여차 알아내어 같은 것으로 주문했다. 와인에 콜라가 섞인 것이었는데, 나름 맛있었다. 식사를 마치니 완전 밤이었다.


우린 1년 전과 같은 길을 걸었다. 그때와 같은 로손에서 아이스크림과 푸딩, 빵 하나를 안고 다른 호텔에 들어갔다. 아침에 바로 교토에 갈 계획으로 잡은 크리스탈 호텔. 그런데 데스크 직원이 김해 사람이다. 이런 곳에서 김해 사람을 보다니. 신기하고 웃겼다.


다음 날, 우린 해가 뜨자마자 곧장 도톤보리를 떠났다. 생각해 보니 글리코상 앞에서 사진을 찍지 않았다. 이 사실을 교토행 기차 안에서 깨달았다. 대신 대관람차의 옆면을 배경으로 다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찍었다.

그때와 같은 절, 같은 구로몬 시장을 구경하고 난바역에 도착했다. 우린 역 안의 도토루 카페에서 햄 치즈 토스트와 커피로 아침을 채웠다. 주문까지는 순조로웠는데, “먹고 가십니까 가지고 가십니까”를 빠른 일본어로 들으니 순간 멍해졌다. 다행히 엄마가 옆에서 툭툭 눈치를 준 덕분에 무사히 끝마쳤다. 일본어로 말하는 건 쉬운데, 듣고 읽는 게 어려워서 문제다. 신문 읽는 사람과 드라마 보는 사람. 출근 준비에 정신이 없는 사람들 틈에서 아침을 먹으니 기분이 묘했다. 역시 여행은 이런 재미가 있다.


우메다역에 도착한 우린 한 달 전부터 공부한 루트를 따라 교토행 티켓을 구매하고 승차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플랫폼은 맞게 왔는데, 어떤 차를 타야 하는가를 모른다. 주위에는 아이가 많아 정신이 없는 일본인 대가족 무리뿐이었다. 어쩌나 하고 바퀴를 구르고 있었는데, 기관사 한 분이 나타났다. 나는 서둘러 그에게 어떤 차를 타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분은 웃으며 이번에 오는 차도 교토에 가긴 하는데, 다다음 열차가 초고속이라 더 빠르니 그것을 타라고 대답해주셨다. 다행이었다. 그렇게 그 가족과 함께 다다음 열차를 기다렸다.

그런데 일본 승차장, 기차와의 칸이 웃기다. 우리나라나 다른 곳은 철로 된 문이 있는데, 여긴 4개의 줄로 되어 있다. 진짜. 줄로 되어 있다. 기차가 오면 이상한 기계음과 함께 줄은 위로 올라가고 기차 문이 열린다. 이런 것까지 아날로그할 필요는 없을 텐데 말이다.

기차 여행에는 간식이지. 카페 옆에서 사 온 작은 주먹밥을 하나씩 나눠 먹었다. 안에는 가라아게 비슷한 튀김이 있었는데, 바삭하지 않았다는 것만 기억난다.


1시간 정도를 달려, 마침내 교토에 도착했다. 교토역 구경은 문제가 아니었다. 가방과 함께 6월의 교토를 헤맬 수는 없었다. 우린 곧장 지하상가를 통해 지하철로 갈아탔다. 그리고 곧장 신풍관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곧장 호텔로 온 건 옳은 선택이었다. 체크인 시간에 딱 맞추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우선 도착했다는 것에 의의를 뒀다.


과연, 신풍관이 요즘 가장 핫한 이유를 알았다. 규모도 꽤 크고, 무엇보다 중정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잠깐 둘러보니 점심을 먹을 때가 다가왔다. 빵과 주먹밥은 밥이 아니지 않는가. 시내를 배회하며 맛집을 찾아갈 생각이었다. 6월의 교토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우리는 한 바퀴 앞에 땡볕을 두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신풍관 안에 있는 서양식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교토에서의 첫 끼가 서양식이라니. 뭐, 코스 형식에 맛도 좋았으니 나름 만족이었다.


중정을 구경하니 체크인 시간이 다가왔다. 에이스 호텔. 사실 이번 교토 여행은 이곳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풍경이 좋은 곳으로 배정해달라고 하니, 이곳은 다 좋으니 고층으로 준단다. 과연, 그 말이 맞았다. 넓은 방과 높은 창밖. 창 앞의 나무 소파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턴테이블이 있었다.


나는 가방을 던져두고 사용법을 익혔다. 이거 열고 저거 누르고 이렇게 올리란다. 영어로 된 활자가 그렇게 술술 읽힌 건 처음이었다. 마침내 돌아가는 LP판과 들려오는 음악에 나는 잠깐 정신을 잃었다. 방에 5개의 판이 있었는데, 머무는 동안 전부 들었다.


쉬며 정신을 차린 우린 니시키 시장으로 향했다. 예쁘고, 맛있는 것도 많았다. 그런데 국적 불문하고 사람도 너무 많았다. 안 그래도 좁은 길이 더 좁아 지나다니기 힘들었다. 스시를 하나 살 생각이었는데, 조금 늦었다고 남은 게 없었다. 결국 입맛만 다시고 호텔 옆 백화점에서 사기 위해 서둘러 빠져나왔다.

그 길에 꽤 큰 문구점 비슷한 곳이 있었다. 1층은 좁았는데, 지하는 꽤 크다고 안내되어 있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안 보인다. 아무 생각 없이 나왔는데, 직원이 급하게 따라 나오셨다. 안쪽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된단다. 그 친절을 두고 그냥 갈 수는 없었기에 안내받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향했다.

와. 생각보다 더 컸다. 그리고 무엇보다 LP판을 파는 곳이었다. 안 그래도 턴테이블을 구매할까 말까를 고민하던 차였기에 더욱 천국 같았다. 낯익은 가수의 얼굴과 좋아하는 노래들이 많았다. 케이팝 앨범도 있어 조금 놀랐다. 마음 같아서는 두세 개 정도 사려 했는데, 턴테이블이 없어 입맛만 다셨다.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백화점으로 가는 길. 마침 햇빛이 건물 옥상과 마주 보고 있었다. 거울로 된 건물과 연한 검정의 건물이 노랗게 물드는 풍경이 매우 아름다웠다. 일본은 전혀 새롭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교토는 달랐다. 교토는 색달랐다. 교토는, 아름다웠다.


노란 햇볕과 인공적인 조명으로 알록달록해진 신풍관 중정에서 시간을 보내고 방에 들어왔다. 다이마루 백화점에서 산 스시와 약밥, 만두와 컵 야끼소바, 그리고 컵 카레 라면까지. 과할 정도로 샀고, 정말 과해서 라면은 다 남겼다. 그래도 스시가 정말 맛있었다. 한국에서는 절대 안 사 먹는 백화점 스시인데, 역시 일본은 달랐다.

그렇게 밤의 신풍관을 구경하고, 호텔 로비에 앉아 사진도 찍었다. 방에 돌아와서는 잠옷 가운으로 갈아입고 나무 소파에 앉아 LP를 들으며 과자를 먹었다. 이 모든 행위가 꿈에만 그리던 교토 그 자체였기에 하는 내내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우린 3박을 전부 다른 호텔에서 했다. 이 좋은 에이스 호텔을 두고 옮겨야 한다는 슬픔을 당고와 아이스크림으로 달랬다. 꽃 모양 토핑을 올려주셨는데, 어떤 걸 할 건지 직접 고르는 형식이었다. 색만 생각하며 골랐다. 정말, 색만. 나는 그게 초콜릿인 줄 알았다. 입에 넣는 순간 달콤함이 퍼질 줄 알았다. 그렇다. 팥, 쌀, 빨간 콩. 그런 것들이었다. 잔뜩 실망하고 차와 당고만 먹었다. 총 다섯 개의 당고에 네 종류의 소스와 토핑이 올라가 있었는데, 엄청 쫀득하고 소스도 잘 어울렸다.


중정 구경을 마저 하고 블루보틀로 향했다. 지하철이 호텔 건물과 이어져 있어 다행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리는 순간부터 시작이었다. 정오의 교토. 찜기에 들어온 줄 알았다. 초등학생 때 갔던 한여름의 홍콩보다 심한 습함과 더위였다. 역에서 헤이안 신궁까지의 길이 그렇게 길 줄은 몰랐다. 양산 행렬과 함께 교세라 미술관 근처에 도착하니, 주황색 토리이가 그 길을 지키고 있었다. 건물 오 층 높이의 커다란 토리이. 더위를 잠깐 잊게 할 정도로 웅장했다. 물론 잠깐이었다. 햇빛의 쨍함이 훨씬 거셌다.

신궁이 보이긴 하는데, 도저히 갈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옆 교토 국립 근대 미술관에 도망치듯 들어갔다. 바로 맞은편이 교세라였지만, 그런 걸 따질 여유가 없었다. 일단 실내만 보고 급하게 들어갔더니, 음. 잘못된 선택이었다. 혹 교토에 가게 된다면 이곳은 절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념품 가게에 욱일기가 판매 중이다.


한껏 더러워진 기분을 토리이로 달래며 얼른 나왔다. 그렇게 다시 걸어, 마침내 도착한 헤이안 신궁. 생각보다 아름다웠고, 생각만큼 웅장하진 않았다. 토리이가 너무 컸나 보다. 아무튼, 가까이 갈수록 학생과 관광객이 많아졌다. 우린 그들 틈에 끼어 입구를 구경하고, 기념품 가게를 구경했다. 그리고 도저히 밖을 나돌 수 없어 빠르게 동네 맛집을 찾아보았다.


그렇게 스시집과 일본식 서양 음식점 두 군데를 찾았고, 조금 더 가까운 양식집에 들어갔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가게가 꽉 찼다. 한 10분, 식당 안에서 기다리다 마침내 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함박스테이크와 오므라이스를 주문했다. 집사님처럼 차려입은 웨이터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맛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그동안 먹었던 경양식 함박스테이크와 오므라이스는 몽땅 가짜였다. 이게 진짜다. ‘그릴 코다카라(グリル小宝)’라는 식당이다. 교토에서 오므라이스와 함바그를 먹어야겠다면 꼭 이곳에서 먹길 당부한다. 고기는 부드럽고 계란은 폭신하며 소스. 특히 소스가 정말 맛있다. 채소를 안 먹는 내가 여기서는 오므라이스 속 채소도 전부 먹었다. 제발 먹어달라. 교토에서 인생 경양식 집을 찾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정말 뜻밖의 행운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침 나온다.

아, 스시집은 휴무였다. 이 집을 알게 된 건 어쩌면 운명이었나 보다.


점점 늘어나는 대기 줄을 뒤로 하고 수많은 파랑과 초록을 지나, 마침내 도착한 블루보틀. 특유의 파란 병이 그려진 간판을 지나니 건물 두 채가 우리를 반겼다. 앞쪽의 건물에는 병과 커피 등 굿즈가 즐비했다. 그것도 모르고 커피를 주문하려 서성거리니, 안쪽 건물로 안내받았다. 뻥 뚫린 정면과 깊어지는 내부. 2층에도 켜져 있는 조명과 북적이는 사람들. 햇빛을 피해 최대한 안쪽으로 들어간 우린 음료 두 잔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다시 초록의 품으로 들어갔다.


본래 계획은 난젠지와 젠린지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입구까지 가 보니, 세상에. 오르막이다. 햇빛과 한층 더 가까운 그곳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우린 살기 위해 옆길로 샜다. 초록의 세로 틈으로 흐르는 얇은 물줄기. 유유자적 날아가는 커다란 새. 땀을 닦으며 뛰어가는 교복 입은 학생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생겼다. 센과 치히로에 나올 법한 게아게 터널을 나오니 커다란 도로가 우리를 반겼다. 그리고 바로 코앞에 역이 보였다. 역 입구는 터널에서 조금 오른편에 있다. 1차 충격. 계단뿐이다. 엘리베이터는 맞은편에 있단다. 그리고 더 큰 2차 충격. 횡단보도가 없다. 왼쪽으로 훨씬 더 내려가야 간신히 오르막과 내리막투성이인 삼거리 횡단보도가 있었다. 목적지를 바로 앞에 두고 먼 길을 떠나야 할 때의 심정이란. 그것도 이 땡볕 더위에. 불평을 늘어놓아도 새 횡단보도가 생기지는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왔던 길을 거슬러 내려가고, 다시 올라왔다. 직진이면 충분한 길을 돌고 돌아 마침내 도착했다. 일본인 두 분과 같이 엘리베이터에 탔고, 타자마자 날씨에 대해 불평했다. 나도 자연스럽게 끼어들어 같이 교토의 여름을 탓했다. 정말. 끔찍하게 더웠다.


교토시야쿠쇼마에역에 내린 우린 그나마 시원한 아케이드로 들어왔다. 좁은 헌책방도 구경하고, 인공적인 그늘에서 그나마 숨 쉬며 스마트 커피로 향했다.

아케이드 안에 있어 자칫 놓칠 뻔했다. 입구와 달리 깊어지는 내부에 놀라며 안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주방이 훤히 보이는 자리에 앉아 팬케이크와 아이스 초코, 그리고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아이스 초코는 그냥 인스턴트의 그것이었다. 그러나 팬케이크는 생긴 것부터 차원이 달랐다. 애니메이션에서나 나올 법한 비주얼. 중앙에 놓인 버터를 중심으로 연갈색 테두리가 먹음직했다. 메이플 시럽을 천천히 흘리자 더욱 만화 같았다. 전혀 텁텁하지 않은 식감과 버터와 시럽이 달콤하게 어우러지는 맛. 더위를 이겨낸 보람이 넘치는 시간이었다.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가모 강 바로 옆인 폰토초로 향했다. 과연. 골목길 구석구석이 아름다웠다. 특히 좁은 건물 틈으로 비쳐 들어오는 노란 햇빛이 무척이나 따사로웠다. 강에 가까워지니 더위도 조금 물러나는 듯했다. 그렇게 기와 틈을 채운 하늘을 올려 보며 폰토초 공원에 도착했다.

입구가 큰 나무 두 그루로 이루어졌는데, 역광이 비추어 무척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공원 자체는 작았다. 그러나 우물에서 물을 마시는 까마귀와 세로로 곧은 가모 강을 보고 있자니 한층 새로워지는 기분이었다. 적당히 서늘한 공기를 한가득 삼키며 포만감으로 가득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양쪽으로 반짝이기 시작하는 조명과 건물 틈, 그리고 연하게 보이는 달과 함께 숙소로 향했다.


그 길에 스시집을 발견했다. 정말 우연히 찾은 곳이었다. 얼른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으니, 먼저 오신 일본인 할머니와 잠깐 대화를 나누었다. 해외에서 현지인과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 꿈에만 그리던, 그런 평범한 일이 나에게 벌어졌다. 한국은 이런 더위가 지속되다가도 10월이 되면 갑자기 추워진다는 이야기로 물꼬를 텄다. 그리고 이 가게에 대해 궁금해진 어머니가 내 입을 빌려 질문했다. 할머니는 이곳 스시를 자주 드신다며, 이 가게가 거의 100년은 되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조금 더 기다리니 할머니가 주문한 메뉴가 먼저 나왔다. 음식을 받은 할머니는 직원에게 이 가게의 역사에 관해 물었고, 정말 거의 100년이나 되었단다. 어머니는 신기하다는 듯 나를 봤고, 나도 신기하다는 듯 가게를 봤다. 교토에서의 우연은 늘 운명이 되었다.


건물 틈으로 보이는 주황 햇빛과 함께 도착한 아사이 교토 시조 호텔. 다 좋은데, 입구가 애매하게 지하에 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없다. 한참을 헤매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왼쪽의 리프트를 사용하란다. 대영박물관에서 봤던 그런 리프트였다. 그렇게 덜그럭 소리를 내며 간신히 입성한 호텔. 입구와 달리 다소 이국적인 분위기였다. 특히 로비의 바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방에 들어왔다. 다다미 형식에 메트리스 두 개가 올라가 있었다. 우선 포장한 스시를 먹었다. 과연. 거의 100년을 살아남은 이유가 있는 맛이었다. 허기를 적당히 채우고 로비의 바로 향했다. 나는 논알콜 칵테일과 교토 수제 맥주 하나, 그리고 태국식 감자튀김을 주문했다. 교토에서의 마지막을 만끽하기에는 충분한 맛이었다.


방으로 돌아와 가운으로 갈아입고 야식을 즐겼다. 이치란 컵라면과 부르봉 알포트 미니 초콜릿. 동창 K에게 소개받은 초콜릿 과자로, 무척 맛있어 이후 보일 때마다 사 먹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몇 번 봤는데, 가격이 말도 안 되게 차이 나서 매번 망설였다. 물론, 매번 사 먹었다. 그렇게 조촐한 야식을 끝으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마지막 호텔을 뒤로 하고 일찍이 교토역으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도, 걸어도 같은 시간인 거리. 마지막이기도 하니 우린 걷기로 했다. 과할 정도로 높은 하늘. 만년필로 장난쳐 놓은 듯 흐트러진 흰 구름. 그리고 찜솥 더위. 여행을 온 사람과 여행에서 돌아가는 사람이 스치는 길. 우리는 그 길을 걸어 근처의 커다란 절을 잠깐 멈췄다. 다시 걸으려 했는데, 역을 바로 앞에 두고 횡단보도를 지날 힘이 나지 않아 실내로 피신했다. 평범한 쇼핑센터였고, 정말 더위만 피하고 다시 역으로 향했다.


돌아오기 싫었던 교토역. 마지막으로 교토 타워를 찍으려 하는데, 웬 할머니가 내가 있는 방향으로 녹차를 뿌렸다. 나는 ‘이게 말로만 듣던 혐한인가,’ ‘얼른 사진 찍고 싸워야지,’ 하며 빠르게 마무리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는데, 이미 엄마가 째려보면서 쫓아낸 후였다. 더 웃긴 건 하루카 표를 발권하려고 줄을 서 있었을 때 일어났다. 뒤에서 웬 고함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아까 그 할머니가 시비 붙어서 싸우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오 혐한인가 싶었는데, 그냥 동네마다 있는 이상한 할머니였다.

발권을 위한 줄에서 두 번째 사건이 펼쳐졌다. 내 뒤로 서양인 커플이 내 앞의 한국 사람들에게 영어로 무언가를 물어봤다. 앞에 분들 당황했고 나는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엄마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현태야 옆에.” 하며 내 어깨를 친다. 나도 모르게 질문을 던졌다. 이야기를 나눠 보니 여기가 JR 표 발권하는 줄이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 영어는 할 줄 알지만, 교토역은 처음인 남자. 의사소통은 되는데 여기가 그 줄인 맞는지 몰라서 대답하지 못했다. 그랬더니 앞에 있던 한국인 남성분이, 아까 당황했던, 저기 안내 센터로 보내라고 이야기해주셨다. 그래서 정리해서 대답하려 했는데 외국인 두 분은 “뭐 맞겠죠~” 하고 쿨하게 줄을 서 계셨다. 어찌어찌 해결은 되었다. 다만 그 긴 줄을 다 해치우고 나서야 옆에 있는, 줄 하나 없는 기계가 JR 표를 발권해준다는 걸 알았다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한바탕 3개 국어로 소통하니 허기가 졌다. 더군다나 아침도 거른 상황이었다. 무사히 발권을 마치자마자 편의점에 들어갔다. 우린 기차 안에서 먹기 위해 주먹밥, 메론빵, 콜라, 카츠샌드, 그리고 초콜릿 빵을 샀다. 그리고 그 많은 걸 다 먹었다. 역시. 편의점 음식은 일본이다.

장난감 같은 건물들, 학교 운동장들, 바다를 순서대로 지나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공항 편의점에서 타마고 샌드와 보리차를 샀다. 끝의 끝까지 먹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구름 사이에서 샌드를 먹으니, 마치 비행기 샌드가 된 기분이었다. 오후 5시 비행기. 멀리서부터 조금씩 노랗게 익어가는 구름을 구경하며 김해로 돌아왔다.

6월의 교토를 보고 싶어 떠났던 여행에서 수많은 우연을 경험했다. 그 모든 순간이 마치 운명처럼 반가웠고, 또 아름다웠다. 나는 그 여행을 잊지 못해 그해 겨울, 다시 교토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