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간 곳 또 가고 안 간 곳도 가고
6월이 지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빈칸에서 시시싯의 첫 글 전시도 하고, 이벤트에 당첨되어 이케아에서 하룻밤도 보내고, 난다 출판사의 영도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원고도 제출했다. 시시싯, 그리고 공포 소설을 쓰는 L 작가님과 함께 마우스 북페어에도 참여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흘러 크리스마스 언저리. 여느 해와 같이, ‘마산즈’에서 해외여행이 안건으로 올라왔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발단, 올해 전역한 공익 K가 연말에 일본 갈 사람을 구한다.
전개, 이게 무슨 헛소리지? 당장 하자.
위기, 톡방에는 6명이 더 있다. 작년 연말에 두 달 동안 유럽에 다녀온 K, 독일 교환학생에서 막 귀국한 S, 1년에 0번 보이는 J, 1년에 1번 보이는 U, 1년에 2번 보이는 S, 주 7일 근무하는 B.
절정, 엎어? 그래도 가자.
결말, 전역한 K, 나, 그리고 우리 엄마. 이렇게라도 가자.
그랬다. 나는 작년 크리스마스를 교토에서 보냈다. 남정네와 함께.
항공과 숙소를 예약하고 대망의 전날. K가 아침 일찍 일어날 자신이 없다고 우리 집에서 재워달란다. 어이가 없었지만, 23년 오사카 여행에서 라피트를 놓칠 뻔한 K였기에 안전을 위해 집에서 재웠다. 문제는 저녁 7시 즈음 공복인 채 왔다는 것이고, 그 늦은 시간에 맛초킹 순살을 시켜 먹었다는 점이다. 원래 이륙 전날 밤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데, 유난히 맛있어 보여 두 개 정도를 뺏어 먹었다.
그렇게 교토의 이곳저곳을 살피다 보니 다음날이 밝았다. 새벽부터 공항으로 향했다. 와. 김해공항에 사람이 그렇게나 많은 건 처음 봤다. 발권을 마치고 줄을 섰다. 아. 배가 아프다. 앞에 두 팀 정도 남았는데, 사고가 날 것만 같았다. 그 5분을 못 기다려서 화장실로 굴렀다. 기우여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끔찍한 시작이 될 뻔했다. 그에 비하면 줄을 다시 기다린 건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일본에 가까워지자 산과 도로 구석구석을 채운 눈이 눈에 들어왔다. 교토에도 눈이 오길, 화이트 크리스마스이길 바라며 하루카를 타러 갔다.
그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가 생겼던 걸로 기억한다. 분명 기계로 발권하면 된다고 했는데, 엄마는 사람에게 말해서 하라며 운전대를 돌렸다. 하는 수 없이 안내 센터에서 다른 외국인과 함께 줄을 섰다. 한 20분 기다렸나. 순조로운 듯 위태로운 듯 아무 문제 없이 소통을 이어가며 표를 받았다. 근데 발권의 모든 과정을 손으로 하는 직원이 참, 새삼 대단했다.
여름과 전혀 딴판인 창밖. 배경은 약간 흐릿했고, 건물의 윤곽은 더욱 확실했다. 코의 반만 들어와도 시릴 것 같은 바람을 상상하며 하루카에 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거의 만석이었다. 다행인 건 그들 중 대부분이 오사카에 내렸다.
무사히 도착한 교토역. 반년도 안 되어 재회한 교토 타워가 그렇게나 반가웠다. 우린 곧장 가와라마치로 향했다. 저번 여행을 교훈 삼아 관광지 바로 앞에 숙소를 잡았다. 체크인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는데도 일찍 들여보내 주셨다. 같은 층, 옆방. 우린 짐만 던져두고 겨울의 교토를 만끽하러 떠났다.
하루카에서의 한 시간 동안 하늘이 청명해졌다. 겨울, 교토. 건물 사이에서는 맑은 물소리가 흘렀고, 뼈만 남은 나무에는 하늘이 만개했다. 붉은 단풍도, 노랗고 초록인 나뭇잎도 빠트림 없이 마음에 담았다.
저녁을 먹자니 조금 시간이 어정쩡했기에 당장 눈에 보이는 아무 카페에 들어갔다. ‘KACTO’. 가게 깊숙이 들어가면 가모 강이 마중 나오는 곳이었다. 아, K는 카페보다 맛집 파였기에 따로 움직였다. 유명한 오코노미야끼를 먹으러 갔다나 뭐라나. 어쨌거나 나와 엄마는 핫케이크와 소시지, 베이컨과 스크램블이 세트인 메뉴와 티 한 잔을 주문했다. 영국에 다녀온 뒤로 티의 재미에 빠졌다. 그렇게 살얼음 낀 몸을 살살 달래고, 겨울의 교토를 만끽하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강 건너편이 금을 칠한 듯 반짝였다. 두꺼운 구름을 피해 번지듯 떨어지는 햇볕. 살얼음 낀 마음마저 살살 깨우더니, 하얀 김이 나오는 것도 잊고 서 있게 만들었다.
우린 한동안 멍하게 있다 다리를 건넜다. 블루보틀로 향하는 길에 큼지막한 절이 하나 있었다. 12월이 얼마 안 남은 무렵이었는데도 단풍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우린 그 길로 한 바퀴를 돌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관광객인 척을 했다. 그렇게 도착한 블루보틀. 다만 돌계단이 있었기에 올라가진 않았다. 막상 올라가도 썩 예쁘진 않았다. 나는 엄마가 찍어준 사진만 대충 보고 얼른 숙소로 돌아갔다.
돌아오는 길, 저녁을 식당에서 먹자니 끌리는 게 없어 편의점을 택했다. 컵라면과 명란 삼각깁밥, 그리고 푸딩과 달고나 아이스크림. 무엇 하나 빠트릴 수 없이 맛있었다. 특히 컵라면은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다. 귀국할 때 몇 개 사려 했는데, 이날 이후로 다시는 마주치지 못했다.
다음 날, 우린 또 따로 움직였다. K는 금각사 위주의 관광지로 향했고,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미처 다 못 본 시비를 보러 가기 위해 도시샤 대학으로 향했다. 시조역으로 향하는 길에 ‘2/7 kitchen’이란 작은 빵집이 있었다. 우린 빵 냄새에 홀린 몇몇 서양인과 함께 줄을 섰다. 공복이었기에 더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도착한 도시샤 대학. 그런데 이게 학교인지 공사판인지 모르겠다. 분명 이렇게 직진하면 되는데, 철문이 굳게 닫혀있다. 왜인지 경비원의 눈치도 보인다. 그렇게 몇 바퀴를 돌고 나서야 입구를 찾아 들어갔다.
마침내 정지용 시비 앞에 섰다, 아니 앉았나. 그 앞에는 태극기와 몇 개의 꽃다발이 있었고, 말보루 레드도 한 갑 있었다. 그때, 그러니까 7년 전에는 흘려 본 시비를 이제야 제대로 마주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흐린 날씨 탓이었을까, 아니면 고등학생의 치기였을까. 어쨌거나 확실한 건, 그때보다 훨씬 성숙해진 몸과 마음으로 마주했다는 점이다.
그 옆에는 윤동주 시비가 있었다. 꽃다발이 더 많았고, 말보루 레드는 똑같았다. 한글로 된 ‘추모객 여러분께’로 시작하는 주의문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렇게 떠나기는 아쉬웠다. 그래서 조금 더 둘러보는데, 웬걸. 도서관이 있었다. 우린 반가운 마음으로 무턱대고 들어갔다. 그리고 입구에서 ‘아, 나 여기 학생 아니지’를 깨달았다. 하는 수 없이 입구만 보고 나왔는데, 어머니가 화장실을 찾으신다. 맞은편에 편의점이 있는 건물. 당연히 화장실도 있겠지 싶었는지 곧장 들어가셨다. 나는 건물 옆 자판기에 주차되었다. 그렇게 외국인 가족과 함께, 그러나 따로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화장실이 있었고, 한결 가벼워진 미소로 학교를 떠났다.
정문에서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니 큰 공원이다. 우린 고민 없이 들어갔고, 너무 커서 깜짝 놀랐다. 아, 바닥이 자갈이라 아주 놀랐던가. 어쨌거나 우린 덩그러니 오른쪽으로 꺾인 작은 단풍나무도 구경하고, 성벽을 따라 걷는 사람들도 구경했다. 자갈 때문에 하는 수 없이 걸었는데, 걷는 재미가 있는 공원이었다. 물론 힘은 들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잠깐 걷다 보니 공원 안에 있는 카페가 있었다. 당연하게, 한 치의 고민도 하지 않고 들어갔다.
카페도 생각보다 컸다. 나는 오렌지 알갱이가 있는 탄산수를 주문했는데, 인스턴트의 그 맛이었다. 대신 내부가 고전적이면서 최신식인 느낌이라 보는 재미가 있었다. 한국인 무리도 여기서 스쳤던 것 같다. 해외에서 한국인을 참 안 만나는 편인데, 역시 일본은 달랐다. 어딜 가도 한국어가 들린다.
다시 나온 공원은 또 색달랐다. 우린 돌밭 때문에 걷고, 구르고, 걷기를 반복했다. 산책하는 까마귀를 보며 공원 밖으로 나가 걸었다. 밖에서 걸으니 공원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니시키 시장 옆, ‘우나기 소라’에 도착했다.
입구에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어머니는 이 식당 이후로 ‘입구에서 허리 숙여 인사해주는’ 식당을 찾으신다. 물론 그만큼 비싸다는 뜻이다.
메뉴는 한 마리, 반 마리, 3/4마리, 이런 식으로 나뉘어 있었다. 장어도 두 종이었다. 우린 다른 종 다른 크기로 주문했고, 장어가 들어간 계란말이도 주문했다. 장어가 박혀 있는 계란말이. 상상이나 되는가. 설명만 들으면 비릴 것만 같은 메뉴다. 생김도 썩 예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입에 넣으니, 와우. 비리기는커녕 식감과 양념이 정말 환상적이었다. 덮밥은 말해 뭐하겠는가. 최고의 장어 덮밥 탑 1이다.
식사를 마치니 한국인이, 특히 커플이, 참 많이 보였다. 나는 후자에서 강한 분노를 느꼈다. 어쨌거나 다시 온 니시키 시장. 역시나 사람이 참 많았고, 정리하는 분위기였다. 역시나 훑어만 보고 호텔로 돌아갔다. 그 길에 큰 크리스마스트리가 보여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트리만 슬쩍 보고 다시 나섰지만 말이다.
그렇게 가와라마치로 돌아왔다. 왜가리 한 마리가 건물과 도로 사이 작은 강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가와라마치를 음미하다 보니 호텔이 코앞이다. 그런데 작은 카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당연히, 고민도 하지 않고 들어갔다.
‘cafe Yoshiko’. 작은 입구만큼 내부도 정말 작았다. 노부부가 하시는 카페였고, 책상과 창틀에 아기자기한 소품이 놓여 있었다. 그 작은 공간은 다섯 명의 이탈리안 가족으로 시끌벅적했다. 우린 가장 구석에 앉아 핫초코와 커피를 주문했고, 여기서 또 인생 핫초코를 만났다. 상상만 해도 또 마시고 싶다.
아, 카페에 앉아 있다는 소식을 들은 K는 방앗간 못 지나치는 참새냐며 웃었다.
마침내 돌아온 호텔. 저녁은 스시를 먹을 예정이기에 아침에 산 빵과 티라미수 아이스크림으로 에피타이저를 즐겼다. 와. 역시 일본은 편의점 음식의 나라. 아이스크림이 정말, 정말 맛있었다.
우린 각자의 방에서 조금 쉬고, K가 찾은 식당으로 향했다. 출국 전날 밤 우리 집에서 찾은 곳이었다. 우린 그 짧은 시간에 액세서리 가게에서 우정 반지를 나눠 끼자고 설쳤다. 그런데 가격을 듣고 한 번 놀랐고, 남자끼리 뭔 반지냐며 기각되었다. 10년이 훌쩍 넘어 그런가 그런 걸 해보고 싶다가도 괜히 돋는 닭살 때문에 미루기를 또 몇 년이다.
아무튼 우린 스시와 하이볼을 주문했다. K는 그게 인생 첫 하이볼이란다. 나는 맛만 살짝 봤는데, 물맛이 너무 강해 너 다 먹으라며 밀어냈다. K는 적당히 맛있다며 스시와 함께 전부 마셨다. 와, 스시가 정말 맛있었다. 회가 정말 두꺼웠고, 밥이 정말 적었다. 정말 스시의 정석 그 자체였다. 한 판씩 다 먹었는데도 아쉬웠다. 우린 반쯤 실험 삼아 고등어 스시를 주문했다. K와 하나씩 나눠 먹었는데, 실시간으로 변하는 표정이 웃겼다. 첫맛은 꽤 비렸고, 씹다 보니 점점 괜찮아지더니, 삼키니 더 먹고 싶어졌다.
가게를 나서니 꽤 어두웠다. 해외에 나가서 이 시간까지 밖에 있었던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둘만 있었으면 5시가 되기도 전에 방을 안 나왔을 텐데, K가 있어서 이유 모를 용기가 생겼나 보다. 돌아가는 길에 스탠딩 어묵바를 발견했다. 다시 생각해도 웃기다. ‘서서’ 먹는 ‘어묵’ ‘바’라니. 어머니가 내일 저길 가자고 했는데, 못 찾아서 못 갔다.
전깃줄에 모인 새들의 배웅을 받으며 호텔, 이 아니라 편의점에 들어갔다. 저녁을 그렇게 먹고도 야식은 못 참았다. 컵라면과 샌드위치, 그리고 우유를 안고 마침내 돌아온 방. 나는 역시나 목욕 가운으로 갈아입고 야식을 즐겼다.
다음 날,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당일. 눈을 뜨기가 무섭게 교토를 거닐었다. 작은 나무에서 존재감을 여실히 뽐내는 단풍, 햇살이 물거품이 되어 가는 하천, 연하게 푸른 하늘과 흐릿한 구름. 빠트림 없이 사랑스러운 교토의 아침에 흠뻑 빠져 걷고, 또 걸었다. 오늘은 셋이 함께 움직였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에 유니클로도 잠깐 들렀다. 옷에 관심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묵묵히 따라다니기만 하는 K가 웃겼다.
그렇게 사이폰 커피를 먹기 위해 떠난 길. 교토 시청역에서 내려 조금 더 걸으니 여름의 토리이에 도착했다. 작게 보이는 옥빛 헤이안 신궁을 옆으로 제쳐두고 곧장 카페로 향했다. 그 길에 현지 마트가 보여, 우리 동네로 치면 탑 마트, 홀린 듯 들어갔다. 봉지 라면 몇 개와 과자, 그리고 후리카케와 후추 등을 샀던 걸로 기억한다.
마침내 도착한 ‘하나후샤 East점’. 무려 교토에서 최초로 사이폰 커피를 했던 곳이었다. 90년대가 떠오르는 외관, 꽤 깊고 넓으면서 엔틱한 내부. 담배를 피우며 신문을 읽으시는 어르신이 꽤 계셨고 한쪽 구석에는 담배 자판기가, 테이블에는 재떨이와 라이터가 있었다. 바 테이블에는 각종 주전자와 머신 등이 있었는데, 특히 사이폰 기구가 신기했다. 반대로 끼워진 통과 아래의 원형 관. 그리고 그 둘을 잇는 통로에서 커피가 역행과 순행을 반복했다. 바는 순식간에 보글보글 끓는 소리와 향으로 가득했고, 나는 그 영상을 보는 내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주문한 핫초코 두 잔과 커피 한 잔이 나왔다. 커피에는 우유랑 설탕을 함께 줘서 놀랐고, 핫초코에는 크림 같은 것이 둥둥 떠다녀서 놀랐다. 맛은. 내 인생 핫초코 탑 2다. 무려 냄비에 끓인 핫초코!!! 기성품 따위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인 깊이였다. 원래 얼어 죽어도 아이스인 나지만, 여기서만큼은 핫이 옳았다. 정말 달았고, 깊었다. 오래 앉아 있고 싶었다. 그러나 담배 냄새에 두 손을 들고 얼른 나와 아쉬웠다.
첫 끼가 커피와 핫초코였기에 슬슬 배가 고파왔다. 우린 곧장 근처에 있는 히노데 우동집으로 향했다. 이곳 역시 한국인이 꽤 있었다.
그렇게 2팀의 대기를 기다리고, 다 먹고 나오니 5팀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리를 안내받았다. ‘안에 앉겠냐, 밖에 앉겠냐?’라 묻길래 무슨 자리가 더 있나 싶어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보이는 넓은 자리를 지나 더 들어가니, 작은 공간에 딱 두 테이블만 있는 공간이 보였다. 주문을 마치니 먼저 오신 중년의 일본인 모녀가 식사를 시작하셨다. 그렇게 신기한 기분으로 니신소바와 카레 우동을 받았다. 니신소바는 고기가 달고 국물이 짰지만, 맛은 좋았다. 처음 사진으로 보았을 땐 그 비주얼에 크게 충격받았는데, 맛이 있어 더 놀랐다. 카레우동은 너무 짜서 한 입만 먹고 말았다. 그런 와중에 K는 약한 폐실 공포증을 앓았기에 내내 답답함을 호소했다. 물론 소바는 맛있게 다 먹었다.
식사를 다 마치고 여름에 못 갔던 젠린지로 향했다. 입구에서 티켓을 사니 입구까지 안내해주셨다. 이곳에서 신기한 경험을 참 많이 했다. 우선 목재로 된 건물이기에 신발을 갈아신었고, 휠체어도 갈아탔다. 여기서 일 차로 놀랐는데, 스님을 따라가니 엘리베이터와 리프트를 순서대로 소개받았다. 구경을 마치고 나갈 때는 버선발로 대문도 열어주셨다. 휠체어 덕에 이런 경험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역시 교토는 달랐다. 건물은 무척 아름다웠다. 중앙에는 잉어가 살고 있었고, 곳곳에는 단풍도 남아 있었다. 이, 삼 층 규모의 계단실을 내려다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정원으로 가는 길에는 일본 전통문화가 전시되어 있었다. 정원의 모래로 된 장식도 무척 아름다웠다.
건물을 다 둘러보고 나오니 더 넓은 후원이 있었다. 해를 품고 단풍잎이 떠다니는 넓은 호수는 보고만 있어도 속이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호숫가로 내려가 호수, 단풍, 절, 탑, 나무, 하늘, 구름을 하나의 프레임에 담아 오기도 했다. 그냥 가기엔 아쉬워 기념품 가게에서 향낭도 구매했다.
구경을 다 마치고 돌아가는 길, K는 야사카 신사로 향했고 우리는 호텔로 향했다. 그리고 그 길에서 정말 아름다운 풍경을 발견했다.
줄지어 늘어진 버드나무, 포토존처럼 툭 튀어나온 공간과 나무 의자. 여유로운 오리들과 행자교를 건너는 사람들, 웃음소리. 흰 잉크가 제멋대로 번진 하늘. 교토의 크리스마스는 어느 곳보다 따스한 초록이었고, 나는 여전히 그 공간에 살고 있다. 참고로 이곳이 행자교라는 사실을 방금 그것도 어느 유튜버의 교토 추천 영상에서 알게 되었다. 우연히 마주친 거리를, 거의 1년이 지난 지금 우연히 보다니. 이것보다 더한 운명이 또 있을까.
그렇게 30분을 빠져 지내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길을 떠났다. 오후에 예약한 향수 공방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눈에 보이는 젤라또 가게에 들어갔다. 와. 인생 젤라또를 만났다. 그런데 더 멋졌던 건 옆자리 커플이었다. 정말 너드미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남자, 그리고 일본 미인의 교과서 같은 여자가 마주 앉은 채 여행 계획을 짜고 있었다. 와. 배가 아팠다. 아이스크림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무튼 곧장 호텔에 들어갔는데도 시간이 남았다. K에게 구경하러 따라올 것이냐고 물었는데, 짐 정리와 향수는 관심 없다는 이유로 방에 남았다. 그렇게 엄마와 둘이 도착한 공방. 사실 전날에 갔었는데 예약 꽉 차 있었다. 그래 다음 날,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당일 오후에 예약하고 다시 찾아온 것이었다.
‘MY ONLY FRAGANCE 가와라마치’ 직원분과 대화하며 나만의 향을 만드는 공방이었다. 전날에 시향 했던 향을 토대로 비율을 추천받았다. 달콤한 향을 좋아한다고 하니 ‘9번’ 50%, ‘16번’ 30%, ‘40번’ 20% 비율을 추천받았다. 만드는 동안 혼자 오신 한국인 여성분과 셋이서 일본어로 혼여에 대해 이야기했다. 직원분이 ‘타이’를 자꾸 말씀하셨는데, 또 다른 뜻이 있나 싶어 파파고를 켰다. 정말 태국 혼여에 대한 이야기여서 크게 웃었다. 오사카에 사시는 직원도, 한국 여행객인 우리도, 교토와 사랑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완성한 향수에 ‘Letter In Diary’라는 이름도 붙였다. 여전히 쓴다. 달고, 깊고, 행복한 향이다.
저녁은 셋이서 야키니쿠를 먹자니 조금 부담스러워 야키토리를 결정했다. ‘Aburi Sakaba Hanabi’ 내부는 꽤 넓었고, 여행객이 많은지 중국, 한국, 유럽 등의 지폐와 어디서 왔는지를 표시한 세계지도가 붙어 있었다. 바 테이블에는 한국인 여성분이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었고, 옆 테이블에는 서양인 부부가 앉아 있었다. 아, 한국어 메뉴판도 있었다.
우린 정식 하나와 염통, 닭 껍질, 안심 등을 주문했다. 정식을 주문하니 반찬도 몇 개 줬는데, 나는 전혀 관심 없었다. 대신 염통, 그리고 닭 껍질과 사랑에 빠졌다. 염통은 쫄깃하고 풍미가 살아있었다. 닭 껍질은 꼬불꼬불해서 바삭할 줄 알았는데 무척 쫄깃했다. K가 버섯구이가 궁금하단다. 시험을 약간 망설이는 눈치였고, 나는 염통 하나 사주면 같이 먹겠다며 부추겼다. 덕분에 염통도 버섯도 더 먹었다. K는 여기서도 하이볼을 마셨다. 그리고 호텔에 돌아가는 길, 편의점에서 돈 봉투를 잃어버렸다. 액수가 적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마지막 날. 우린 잔뜩 투덜거리며 교토역에 도착했다. 아, 가는 길에 ‘2/7 kitchen’에서 빵도 샀다. 그렇게 역에 도착했지만, 승차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교토역과 이세탄 백화점을 구경했다. 원래는 맥도날드를 먹으려 했다. 이 건물에 있다는데, 도저히 보이지 않아 직원에게 물어봤다. 그랬더니 나가서 횡단보도를 건너야 한단다. 우린 그 귀찮음까지 이겨낼 자신이 없어 교토역 안의 카페에서 나폴리탄 파스타를 먹었다. 정말 옛날 나폴리탄 파스타 맛이 나서 놀랐다. 이후 서점을 구경했다. 히라가나를 읽을 수 없기에 책보다는 액세서리 위주였지만, 아무튼 향이 나는 책갈피와 엽서를 구매했다. K는 내내 보이지 않다가 시간이 다가오자 나타났다.
그렇게 발권을 마치고 여름과 똑같은 편의점에서 처음 보는 플러스 코카콜라와 빵을 샀다. 그리고 하루카에 타자마자 하나씩 꺼내먹었다. 특히 백화점 지하에서 산 고기 초밥이 정말 맛있었다. 배가 아프다는 이유로 작은 걸 산 것을 아직도 후회한다.
그렇게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필름 카메라도 찍다 보니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공항에 다 왔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비행기 표 발권까지 시간이 남았다. 우린 게이트 근처에 앉아 쉬다가, 쉬다가, 한국인들의 눈치를 보며 슬슬 줄을 섰다. 무사히 마치고 14번 게이트로 가기 위해. 트레인을 탔다. 면세점을 구경하고, 구경하고, 구경하느라 처음 보는 곳에 도착했다. 그렇다. 처음 트레인을 탔던 곳이다. 트레인을 타고 14번 게이트까지 갔다가, 그 길을 거슬러 굴러갔다가, 다시 굴러 게이트 앞까지 왔다.
마지막까지 알차고 즐거운 여행이었다. 크리스마스를 남정네와 교토에서 보낸 게 조금 아쉽지만, 그런 것 따위 아무렴 어때. 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크리스마스를 해외에서 보냈다. 그것도 오래된 친구 K와 말이다. 다음에는 다른 마산즈 친구들, 그리고 다른 대학 동기들과도 함께 오고 싶다. 그리고 당연히, 혼자서도.
내 꿈은 교토의 사계절을 모두 누리는 것이다. 한여름과 크리스마스를 지냈으니, 이제 봄과 가을만 남았다. 어머니는 자꾸 단풍도 봤으니 가을도 퉁 치려 하신다. 팔랑귀인 나는 한편으로 그런가, 싶기도 하다가 10월의 한가을을 만끽하고 싶다는 욕심에 자꾸 부정하고 있다. 내년에는 벚꽃 핀 교토를 구르고 싶다. 후년에는 낙엽을 밟고 싶다. 친구와 함께, 어쩌면 나 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