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첫 외박을 일본에서
셋째 날이 다가왔다. 이날은 아주 특별했다. 미국의 메리멕 고등학교처럼, 일본에도 자매결연한 죠토 고등학교가 있다. 그곳에서의 특별한 이틀을 위해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오카야마로 향했다.
한두 시간 걸렸나. 도착한 죠토 고등학교는 정말, 정말 애니메이션에서나 보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넓은 운동장과 초록 그물이 쳐진 테니스장, 교실 건물과 강당 건물, 그리고 전교생의 자전거가 주차된 곳. 특히 신발 사물함이 늘어져 있는 곳은 정말 만화 속 그것과 판박이였다. 딱 하나 흠이 있다면, 엘리베이터가 없었다는 점이다.
나무 계단을 타고 3층의 시청각실에 모였다. 짧은 설명을 듣고 기다리자 죠토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들어왔다. 한 달 정도 전, 우리는 홈스테이를 위해 죠토고 학생들과 짝을 맺었다. 물론 나는 시작부터 말이 많았다. 교장과 담임 선생님은 나 혼자만 죠토고 학생의 집에 넣자니 감당이 안 될 것 같았는지, 엄마에게 둘이서 호텔로 돌아가라고 말했단다. 당연히 엄마는 화를 내며, 물론 당시엔 조곤조곤, 나의 홈스테이를 추진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여행이 끝난 후에야 들었다. 다행히, 정말 다행히 나는 같은 반 C와 묶여 죠토고 학생 슌, 그리고. 신과 함께 할 수 있었다.
강당에 들어온 학생들이 자신의 짝을 찾아가는 것으로 교류가 시작되었다. 나는 C와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내심 못 찾기를 바랐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둘이 엮인 건 우리뿐이라 참 쉬웠던 것 같다. 그렇게 둘을 만나 어색한 일본어로 인사를 하고, 그들의 교실에 잠깐 들러 3반이라는 공통점을 찾았다. 이를 계기로 빠르게 가까워진 우린 운동장에서 L, 그리고 그의 파트너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참 조촐한 인원이다.
이후 우린 학생의 집으로 향했다. 누구의 집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전에 마트에 들렀다. 간단한 간식을 사고, 아이스크림도 사 먹었다. 이후 20분 정도를 더 들어갔다. 김해도 정말 시골이지만, 그곳은 더더욱 시골이었다. 어두워진 창밖에 건물은 사라지고 논밭의 실루엣만 보이기 시작할 무렵,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3층으로 된 집. 외부부터 심상치 않았는데, 내부는 더했다. 넓은 거실과 주방, 그리고 문으로 구분된 다다미방, 난간 없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보이는 좁은 2층과 사다리로 올라가야 하는 3층. 학교도 그랬는데, 이 집은 정말 만화 같았다.
우린 부모님이 준비해주신 가라아게와 쌈밥으로 든든히 배를 채우고 정신없이 구경했다. 아, 밥을 먹는 사이 집주인인 학생이 갑자기 LP판으로 클래식을 틀었다. 그러더니 눈을 감고 허공에 지휘하며 음악에 심취했다. 그 모습이 참 웃겼다. 고등학생의 허세는 정말 국경을 넘는구나, 싶었다.
2층으로 올라가니 신기한 것이 많았다. 특히 마트료시카와 더불어 러시아 군인의 모자가 있어 놀랐다. 우린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고, 마트료시카를 끝까지 꺼냈다. 그러자 갑자기 집주인이 로마의 투구를 꺼내와 머리에 쓰고 자세를 잡았다. 그러더니 C는 방독면을 가지고 와 머리에 쓰고 사진을 찍었다. 웃긴 녀석들이다. 아, 란도셀과 일본 학생의 모자도 보여줬다. 그것을 보고 새삼 일본에 왔다는 것을 다시금 체감했다. 3층에는 올라가지 못해 C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작은 다락방이었는데, 볼 게 참 많아 보였다.
구경을 마친 우린 난간에 걸터앉아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웬일로 셀카도 찍고, 아래층의 해먹에 누운 C의 사진도 찍었다. 이후 1층으로 내려가야 했지만, 내가 내려가기에는 난간이 없어 자칫 잘못하면 모두가 고꾸라지는 상황이었다. 나는 다쳐도 나만 다치자는 마음으로 앉은 채 내려가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엉덩이가 뜨거웠다. 안 다쳤으니 됐다.
한 달 전 그들과 이어졌을 때, 필요한 것이나 갖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말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민폐였지만, 나는 트와이스의 일본 앨범을 부탁했다. 식사와 구경이 끝나고 다다미방에 모여 앉았는데, 어머니가 종이 가방을 건네주셨다. 와, 정말 앨범을 사주셨다. 나는 신나는 마음으로 인증샷을 찍고 이리저리 훑었다. 당시 담임 선생님의 아들도 트와이스의 팬이라 내게 앨범 구매처를 물었다. 알았다면 나도 더 샀을 텐데. 이 점은 조금 아쉽다.
우린 자기 전까지 대화와 야구 보드게임에 빠졌다. 일본은 보드게임도 특이했다. 그렇게 1시간 정도 놀다가 우린 단체 사진을 찍고 함께 잠들었다.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그런데 소통의 오류가 생겼는지, 모두를 배려한답시고 화장실을 맨 마지막에 간 것에 사소한 문제가 생겼다. 모두가 신발까지 신고 나를 기다렸다. 나는 너무 놀라 치약을 삼키는지 뱉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급하게 준비를 마쳤다.
학교로 돌아온 우린 아쉬운 작별을 뒤로 하고 헤어졌다. 교복 차림의 둘과 여행객 차림의 우리, 그리고 어머님의 단체 사진은 지금 봐도 참 반대되게 어울린다. 아, 이날 가이드와 엄마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고 들었다. 가이드가 전날 이야기한 시간에 맞춰 버스에 도착했더니 늦었다며 화를 냈단다. 이 말에 엄마는 잠깐 화났다가, 허허 웃어넘겼다고 한다. 싼 여행사는 싼값을 한다.
여행사는 뒤로 하고, 넷째 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어가기보단 인생 첫 외박의 소회를 남기고 싶다.
상냥한 친구들과 부모님 덕에 내 인생 첫 외박은 대성공이었다. 친구가 우리 집에서 자는 건 수없이 많은데, 내가 친구 집에서 자는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동시에 C와 그렇게까지 친하지 않은 것이 아쉽게 다가왔다. 그렇지만 즐거웠고, 행복했다. 이날을 계기로 외박을 또 하고 싶었는데, 두 번째는 성인이 된 후에야 찾아왔다.
이런 경험을 어른의 사정 때문에 자칫하면 누리지 못할뻔했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엄마의 강행 돌파가 없었다면 남들 다 즐거울 때 호텔 방에서 잠들었을 것이다. 이 순간이, 고등학교 생활 중에서 몇 없는 행운의 순간이었던 것 같다.
친구가 생기면 집으로 부르는 버릇에 기대어 슌, 신과도 더 친해질 것 같아 기뻤다. 그런데 웬걸. 반년도 지나지 않아 연락이 끊겼다. 이 부분은 참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