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오사카, 교토, 그리고 오카야마, 후쿠오카

1. 꿈, 그리고 영화 같은 땅

by 하현태



미국을 다녀오고 1년이 지난 2017년. 2학년이 되었다는 사실은 후배가 생겼다는 설렘과 대입이 다가오고 있다는 압박감을 동시에 가져왔다. 1월부터 9월은 말 그대로 죽지 못해 살았다.

사진첩을 돌아보니 과반의 트와이스, 약간의 시, 그리고 조금의 일상이 남아있다. 고등학생 시절, 그러니까 2016년부터 2018년까지의 사진은 전부 이렇다. 일상보단 이상을 살았다. 도망치듯 시를 썼고, 아이돌 사진에 열광했다. 교실에는 그런 모습의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얼마나 암울한 3년이었겠는가.


아무튼 10월. 김플의 두 번째 메인 이벤트가 다가왔다. 일본어학과인 우리와 5반은 함께 김해공항으로 향했다. 40명 남짓의 우리는 각자의 설렘을 품고 비행기에 올랐다. 작년과 달리 공항에서 찍은 셀카가 두 장이나 남아있다. 그중 하나는 M이 물병으로 코와 입을 가린 채다. 작년과 달리, 친구가 생겼다.


도착한 일본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서둘러 버스에 오른 우리는 우선 밥을 먹었다. 그런데 이곳. 위치나 비주얼이 심상치 않았다. 말하지 않았다면 식당이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할 건물. 음식은 일본 돈까스인 듯 보이지만 어딘가 아쉬운 퀄리티. 당시 교장이 돈을 아끼기 위해 가족이 운영하는 여행사를 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그것이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것도 여행을 시작하자마자 말이다.


배를 채운 우리는 금각사로 향했다. 비 오는 금각사는 운치 있었다. 솔직히 이게 다였다. 비가 와서 그런가, 왜인지 더 울적해지는 기분이었다. 아, 같은 반 남자 C, L과 찍은 사진이 남아있다. 우리 반은 안 그래도 남학생이 적은 김플에서 제일 적었다. 3명. 원래 같았으면 단짝이 되었어도 모자라지 않을 인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은 연락도 안 한다. 인스타로 안부나 가끔 묻는다. 그마저도 인스타를 안 하는 C와는 정말 아무런 연락도 안 한다.


그렇게 구경을 마치고 자판기에서 코카콜라를 뽑았다. 그때는 몰랐는데, 다시 보니 교토의 랜드마크가 그려져 있었다. 맛은 뭐, 그냥 코카콜라였다. 아, 셀카가 두 장 남아있다. 금각사에서 뽑아온 부적을 들고 있는데, 무어라 적혀있는지는 모르겠다. 일본어를 꽤 오래 공부했고 대화도 가능하지만 읽는 건 여전히 어렵다. 특히 가타카나는 전혀 모르겠다.


이 사이의 사진이 없어 긴가민가한데, 도시샤 대학을 갔던 것 같다. 윤동주와 정지용의 시비를 구경했는데, 비가 와서 제대로 보진 못했다. 이때의 아쉬움은 작년의 교토 여행에서 풀었다.


아쉬운 시비 구경을 뒤로 하고 기요미즈데라로 향했다. 산과 언덕. 그곳을 두 단어로 요약하자면 산과 언덕, 그 자체였다. 비와 산과 언덕. 환상의 조합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게 아쉬워 언덕을 조금 올랐다. C와 L이 도와줬던 것 같다. 가는 길에는 상가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비가 그치지 않는 바람에, 그리고 오르막인 바람에 제대로 구경하진 못했다. 여하튼 우린 건물이 보이는 곳까지만 올라갔다. 나는 그곳에서 건물보단 아래를 내려다봤다. 침침한 하늘임에도 교토의 전경은 선명했다. 시원한 바람을 위안 삼아, 상가의 조명을 위로 삼아 버스로 돌아갔다. 오사카로 돌아가는 길에 귀 무덤을 지났다. 내려서 구경하진 않고, 차에서의 짧은 묵념으로 대신했다.


저녁을 먹기 위해 도톤보리에 도착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경로가 이상하다. 간사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교토로 가고, 다시 오사카로 돌아오다니. 일정이 참 난해했다.


아무튼, 처음 보는 도톤보리의 아케이드는 참 멋졌다. 수많은 건물이 지붕으로 이어져 뚫린 양옆과 달리 위는 막혀 있는 게 신기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회전 초밥집에 도착한 우린 흩어져 앉았다. 나는 C와 L, 그리고 5반의 L과 함께 앉았다. 당시에는 초밥을 먹을 줄 몰라 새우튀김과 달걀 초밥만 먹었다.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다. 나쁘지 않은 식사가 끝나자 밤이었다. 우린 숙소로 돌아갔는데, 잠깐 편의점에 들러 푸딩과 복숭아 물, 그리고 컵라면을 샀다.


저녁이 되자 3, 5반의 남자들이 한 방에 모였다. 방 구조가 무척 특이했는데 거실과 침실, 그리고 화장실이 니은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특히 화장실은 양쪽에 문이 있어 거실과 침실을 모두 다닐 수 있었다. 일곱의 남자들은 5반 담임 선생님이 주신 컵라면과 편의점 음식들로 친목을 다졌다. 특히 5반 L은 매사에 진지한 녀석이었는데, 선생님께 받은 컵라면의 소유권을 법까지 들먹이며 따졌다. 참다못한 내가 그냥 다 같이 먹자고 한마디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둘째 날은 대망의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가는 날이다. 우린 이른 아침에 1층 로비에서 모였다. 그런데 웬걸. C와 L, 그리고 5반의 남학생들이 감감무소식이었다. 문을 두드려도 열리지 않고, 전화도 받지를 않았다. 아뿔싸. 전날 술을 마셨더랬다.

약간의 소동이 끝나고, 아마 30분 늦었던가, 우린 지하철역으로 출발했다. 당시 유명했던 일본 개그우먼의 전광판을 찍으며 일본에 왔음을 실감했다. 이때 우메다에서 환승을 했는데, 엘리베이터를 찾느라 일행과 멀어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교과서로 배운 길 찾기 예문을 써먹었다. 그러나 현지인은 요시다 선생님처럼 느리지 않았다. 미기…. 히다리…. 무슨 뜻인지는 아는 단어들인데, 말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해석하는 데 애를 먹었다. 도착지가 바로 코앞에 있어 다행이었다. 인솔자는 우리가 없어진 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비가 적당히 내리는 USJ는 그 자체로 운치 있었다. 그 유명한 지구본을 구경하는 우산 쓴 M과 R의 사진이 남아있다. 독서토론 활동으로 친해진 둘은 그나마 숨을 쉴 수 있는 위안이었다. 표 검수를 끝내고 안으로 들어왔다. 내부는 정말 아름다웠다. 특히 입구 쪽은 기념품 가게가 늘어져 있고, 천장이 있어 비를 피하기 좋았다. 이때 사진을 하나 찍었는데, 웬 현지인 아저씨가 같이 찍혔다. 그런데 하필 중간에 계셔서 그분이 주인공인 것 같은 사진이 되었다.


구경은 잠시 미루고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으악. 우리 학교만 온 것이 아닌 듯 보였다. 앉을 데는 둘째치고 주문하기도 벅찰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간신히 구석에 앉아 피자 한 조각과 스파게티, 그리고 감자튀김이 세트인 메뉴를 시켰다. 맛은 그냥 놀이공원의 그것이었다.

비가 차츰 가라앉는 눈치였다. 우린 놀이기구보단 구경에 힘을 실었다. 미국처럼 꾸며둔 블록을 지나 미니언 파크를 보고, 공룡 놀이기구를 지나갔다. 거꾸로 매달려 타는 놀이기구였다. 머리 위는 그물이, 그리고 사람들의 행복한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대망의 해리포터 구역에 도착했다. 입구서부터 흐르는 음악은 가슴을 뒤흔들었다. 숲에 박힌 자동차를 지나 드디어 입구. 호그스미드를 배경으로 한 입구에는 지붕에 눈이 묻은 건물들과 호그와트로 향하는 기차, 그리고 승무원이 있었다. 다른 학교 아이들은 그들을 배경으로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나는 배경음악을 음미하며 영화 속 한가운데를 지났다.

그렇게 해리포터의 엑스트라가 되어 호그스미드를 거닐고 마침내. 호수 너머의 호그와트를 마주했다. 영화가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나는 그곳을 멍하니, 그저 멍하니 올려다보기만 했다가게의 창문에는 영화에서 본 만드라고라 모형이 있었고, 간식과 기념품 등을 팔고 있었다. 거리에 버터 맥주를 파는 노점이 있어 기념으로 한 잔 마셨는데, 솔직히 추억이 없었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맛이었다.

학교 구경을 마치고 호그스미드를 빠져나오니 퍼레이드가 한창이었다. 운 좋게, 휠체어라 그런지 양보받아, 맨 앞자리에서 구경했다. 거대한 앵무새 모형과 끊이지 않는 캐릭터들의 향연을 뒤로 하고 스파이더맨을 구경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옆자리에 공주처럼 입은 사람들의 사진과 함께, 밤이 오고 있었다.


10월의 USJ는 할로윈 축제 기간이다. 해가 사라지기가 무섭게 거리에 좀비가 떼로 나타났다. 자유롭게 활보하다 근처로 오는 관광객을 놀라게 하기도 하고, 철창 안에서 체험할 수 있는 곳도 있었다. 그때의 나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겁이 엄청 많아 멀리서 보기만 했다. 이후 갑자기 무대가 깔리더니 춤 공연이 시작되었다. 어두워서 영상과 사진으로는 잘 안 보이지만, 이것도 무서워 도망을 고민했다.


공연을 끝으로 폐점 시간이 다가왔다. 퇴근하는 좀비를 구경하며 우리도 슬금슬금 밖으로 나갔다. USJ에서의 하루는 꿈만 같았고,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나온 기분이었다. 이때 구매한 호그와트 후드티는 아직도 가끔 입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