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거대한 자유의 나라
다섯째 날은 미국의 과거를 돌아보는 날이었다. 필라델피아로 이동한 우린 가장 먼저 미국 독립기념관에 도착했다. 친구들은 기념관 앞의 넓은 잔디밭에서 자유롭게 사진을 찍었다. 그중에서 특히 점프샷이 유행처럼 번져 곳곳에서 ‘하나, 둘, 셋!’과 찰칵 소리가 정신없이 메아리쳤다. 나는 독립기념관이 그려진 100달러 지폐를 들고, 독립기념관을 배경으로 한 장 남겼다. 그리고 무리 지어 뛰고 있는 친구들을 찍었다. 엇박자로 펼쳐지는 양손과 굽혀지는 무릎이 제법 웃겼다. 나는 엄마와 찍은 사진만 수두룩하고, 딱 한 장. 반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 있다. 10명과 청일점인 나. 다시 봐도 파격적인 성비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는데, 이때도 내 바로 옆에는 K가 있었다. 아무튼 이 사진을 끝으로 우린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이었던가, 식당가였던가. 아무튼 우린 필라델피아 치즈 스테이크 샌드위치를 먹었다. 이때 미국인의 덩치에 대한 비밀이 풀렸다. 정말, 말 그대로, 두 사람이 나눠 먹어도 하루는 족히 걸릴 듯한 크기였다. 맛도 대단했다. 굉장히 짰고, 무척 자극적이었다. 돌도 씹어먹을 고등학생 1학년이라지만, 나와 엄마는 반도 못 해치우고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니 야외 테이블에 참새가 한 마리 앉아 있었다. 그 결과 사진첩에는 샌드위치 사진은 없고, 참새 사진만 여섯 장이나 남아 있다.
이후 유펜 대학으로 이동했다. 그 길에 찍은 굉장히 개구쟁이 같은 표정의 내 사진이 있어 유심히 보니, 정말 어렸다는 걸 새삼 체감한다. 학교 구경은 평탄했던 걸로 기억한다. 학교 단체 사진을 찍고, 유펜의 거대한 로고를 보며 캠퍼스를 걸었다. 로고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는 사람들. 무엇 하나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학교에 테니스장과 야구장이 있었다는 점이다. 지금에야 한국 대학교에도 있다는 걸 알지만, 그때는 정말 큰 충격이었다. 역시 미국은 대단하구나, 하고 지나갔던 것 같다. 아, 우리가 방문한 시기가 무슨 행사 시기였던 것 같다. 넓은 풀숲에 풍선으로 만든 놀이기구와 푸드트럭, 테이블 등이 즐비해 있었다. 함께 즐기지 못해 아쉽다.
그리고 그 유명한 LOVE 조각상 앞에서 일본어학과 남학생들의 단체 사진을 찍었다. 두 반이 모여 무려, 열하나. 심지어 2반의 2명을 합친 수였다. 정말 새삼, 파격적인 성비였다는 걸 느낀다.
다음날 해가 뜨기 시작할 무렵, 우린 백악관으로 향했다. 백악관! 아쉽게도 공사 중이라 펜스가 있긴 했지만 멋진 곳이었다. 이곳에서 같은 반 K와 J는 준비한 한복을 입고 있었다, 이날 산대배기의 공연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잠을 잘 자는 K와도 한 장, 귀를 긁으며 한 장, 반 친구들과 한 장의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보니 또 다 같이 찍은 사진이 영 없진 않다. 아무튼, 그렇게 우린 국회의사당으로 걸었다. 멀어지는 백악관은 그것마저 아름다웠다.
가까워지지도 않았는데 오벨리스크의 존재감은 뚜렷했다.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기념비, 그리고 호수의 규모는 입이 벌어지지 않고는 배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마주 보고 있는 제퍼슨 기념관 역시 웅장했다.
조금 지친 나는 계단에 쭈그려 앉아 오벨리스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 한복을 입은 또 다른 K와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을 본 큰이모가 표정을 보며 놀렸다. 별생각도 하지 않는 얼굴이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쭈그려 앉은 나의 독사진도 하나 남아 있다. 표정이 참, 장관이다.
그렇게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비를 지나 링컨 기념관으로 향했다. 아, 이곳은 계단이 참 많았는데 놀랍게도 옆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새삼 느꼈지만, 미국은 휠체어도 다니기 정말 좋은 곳이었다. 아무튼, 웅장한 링컨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영어로 된, 당연히, 연설문도 찍었다. 그게 끝이었다. 아, 호수는 아름다웠고 오벨리스크는 여전했다.
이후 박물관이 즐비한 곳으로 옮긴 우린 또 자유롭게 풀어졌다. 나는 가장 먼저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으로 향했다. 들어서자 보이는 코끼리의 기세에 조금 압도되었다. 그렇게 한참을 구경한 후, 근처의 항공우주박물관도 다녀왔다. 공중에 떠 있는 비행기 모형도 멋졌지만, 이상하게 이곳을 회상하면 화장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남자 화장실은 미국인만큼 거대했다. 그리고 양변기 칸막이의 바닥이 붕 떠 있었다. 아, 변기도 조금 높았다. 뒤꿈치를 들고 앉아야 겨우 앉을 수 있었다. 새삼 웃긴 경험이었다.
관람이 모두 끝나고, 백악관 근처 공원에서 산대배기의 공연이 있었다. 빨간 한복을 입은 K와 J가 양옆에 서고, 그 사이에 대여섯의 복장을 차려입은 산대배기가 공연을 시작했다. 그들에게도 특별했지만, 나에게도 와닿았다. 미국의 중심에서 한국 음악을! 같은 애국심도 있었지만, 그냥 동기들의 공연이 멋졌다. 공원에 누워 사진도 찍고, 엎드려서 찍고, 별별 포즈로 사진을 찍으며 숙소로 돌아왔다.
휠체어에 앉아 다니다 보니 친구들과 눈높이가 안 맞다. 사실 이건 핑계고, 그냥 친구들에게 같이 사진을 찍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백악관 뒤, 워싱턴 기념탑도 보이는 어딘가에서 찍은 사진이 하나 남아 있다. 이 사진의 행방을 묻기 위해 오랜만에 K에게 연락도 했다.
아무튼 그 사진은 휠체어에 앉아 있는 내 주위로 반 친구 여럿이 쭈그려 앉아 높은 것을 올려다보는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 사진을 찍자고 제안한 사람은 방송부의 K다. 문득 이번 에세이를 적으며 그날의 사진들을 돌려 보는데, K와의 추억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삼 고마우면서도, 왜 그때그때 표현하지 못했는지 아쉬움만 남는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왔지만, 이렇게 보내기에는 아쉽지 않은가. 삼 반의 몇몇이 한 방에 프링글스도 먹고, 누워서 수다도 떨었다. 알고 싶지 않은 같은 반의 커플을 알게 된 게 이날이었던가. 다른 방으로 다 같이 이동했는데, 어쩌다 보니 나와 그들만 남게 되었다. 텔레비전에는 공포 영화가 나오고 있고, 둘은 나란히 누워 있고, 나는 뻘쭘하게 소파에 앉아 겁에 질려 있었다. 정말 다행히 구조 신호를 들은 엄마의 손에 이끌려 구출되었다. 그리고 잠에 빠지기 직전, 그 둘이 뻘쭘하게 방문을 두드렸다. 나는 자다 깬 목소리로 더 놀자 부추겼고, 엄마는 그냥 자라며 돌려보냈다. 다시 생각하니 또 웃긴 에피소드다.
슬슬 끝이 보인다. 글을 쓰다 보니 떠오르는 일화들로 추억을 덧씌우는 재미가 있다. 생각만큼 암울한 건 아니었던 것도 같다. 물론 10월에 한정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