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자연과 아쉬움, 그리고 다음의 땅
일곱째 날. 다가오는 끝을 애써 외면하며 코넬 대학교로 향했다. 코넬은 다른 곳보다 공원이 드넓었다. 오르막이 꽤 있었고, 현대적인 콘크리트 건물과 옛것 같은 벽돌 건물과 탑이 어울리게 드문드문했다. 특히 공원에 주저앉은 세 명의 남자들이 인상 깊어 사진으로 남겼다. 마음 깊은 곳까지 씻겨주는 공기를 맡으며 사색하고, 이를 공유하는 친구들. 그 모습만큼 부러운 것 또 없었다.
이렇게 IVY 리그 투어가 끝이 났다. 머릿속에 딱 하나의 기억이 아른거리는데, 어디의 것인지 가물가물하다. 어느 대학 기념품 가게 앞이었다. 엄마는 기념품을 더 둘러보겠다며 나를 나무 옆에 놓고 떠났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던 건지, 1반 남자애들이 나를 끌고, 문자 그대로 휠체어를 끌고. 그들의 테이블에 합석시켰다. 안 그래도 남학생 수가 월등히 적어 똘똘 뭉친다지만, 문제는 나와는 어색하다는 점이다. 음, 그래도 덕분에 혼자가 아니었다. 그래도 덕분에 잠깐이나마 함께였다. 이 글을 빌려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아무튼 코넬 대학교의 김플 단체 사진을 끝으로, 이날 일정이 모두 끝났다. 남은 건 길고, 긴 캐나다행 버스뿐. 와, 정말 길었다. 체감상 10시간은 넘긴 것 같은데, 구글 지도를 검색해보니 코넬 대학에서 3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럴 리 없다. 분명 엄청나게 길어서 죽을 것 같았는데, 고작 3시간이었다니. 이렇게나 멀미가 무섭다.
우리는 버스로 국경을 넘었다. 버스로 국경을! 모든 게 처음이라지만 이것만큼 색다른 건 또 없었다. 우리는 육로의 출입국관리소에 멈춰 여권을 확인했다. 꽤 큰 터미널 같은 곳이었는데, 여권과 사람을 일일이 확인하여 시간이 조금 걸렸다. 아무튼 넘어가니 밤이었다.
캐나다 여행은 나이아가라의 야경으로 시작되었다. 붉은색, 파란색, 노란색 조명이 들어온 폭포는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흐릿하게 빛나는 건물들의 네온사인은 반칙일 정도로 조화로웠다. 첫인상이 좋다. 멀미만 안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다. 참고로 다음 날 아침, 폭포에 도착하자마자 배탈이 나 꽤 고생했다. 역시 장거리를 차로 움직이는 건 나랑 안 맞다.
다음날이자 마지막 날이 밝았다. 아쉬움은 잠깐 멀리 두고, 우리는 다시 나이아가라로 향했다. 아침에 본 나이아가라는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기억날 것이다. 그 소리, 공기, 광경. 무엇 하나 잃을 수 없다. 번개가 치는 듯 요란한 소리. 그것을 따라가다 눈이 멈춘 곳에는 장대비가 시원하게 내리고 있다. 거리가 있음에도 피부로 느껴지는 상쾌함. 연신 귀와 마음을 울리는 소리, 공기, 광경. 지금도 숨을 들이쉬면 그날의 공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다.
넋을 두고 있을 수만은 없다. 우리는 배를 타고 폭포의 중심으로 향했다. 캐나다의 빨간 우비를 입은 우리는 손을 조금만 더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나이아가라를 목격했다. 얼굴을 두드리는 물세례는 가슴을 두드렸고, 수면에 닿아 쪼개지는 햇빛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황홀했다. 도착한 지점은 전망대였다. 지금 찾아보니 AERO CAR라는 케이블카를 타는 곳이었다. 낙엽과 여러 갈래로 쪼개지는 물줄기가 참 아름다웠다. 이 근처 기념품 가게에서 메이플 시럽을 사고 토론토로 향했다.
토론토에 도착하자마자 확실히 캐나다와 미국은 꽤 다르다고 느꼈다. 미국이 빽빽한 빌딩 숲이라면, 캐나다는 듬성듬성, 그러나 올곧은 빌딩 공원 같은 느낌이었다. 아쿠아리움도 보고, 마음 같아서는 무리에서 떨어져 이곳에 가고 싶었다, 거리도 활보했다. 도착한 CN 타워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는 명성에 맞게, 꼭대기에는 유리 바닥 전망대가 있었다. 겁이 무척 많은 나는 멀찍이 떨어져 있었고, 엄마는 아예 그곳에 눕기까지 했다. 무서워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친구, 걸어가자마자 돌아오는 친구도 있었다. 창밖과 발아래로 번갈아 본 캐나다는 무척 아름다웠다. 호수 덕분에 뻥 뚫리는 기분을 느끼며 토론토 시청으로 향했다.
시청과 시청 앞 광장에 자유롭게 풀린 우리는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특히 시청 안이었던가, 한쪽 벽이 못으로 만들어진 원형 작품이 있었다. 가까워질수록 뾰족해지는 게 무척 신기했다. 이후 토론토라는 큼지막한 글자에서 혼자 사진도 찍고, 동아리 단체 사진도 찍었다. 1학년의 10월에 나는 두 개의 동아리에 소속되었었다. 하나는 ‘PSYworld’라는 심리학 동아리였고, 다른 하나는 ‘토론토’라는 토론 동아리였다. 그렇다. 우리 토론토는 큼지막한 토론토 앞에서 손으로 T를 만들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 근데 나는 이 사진의 원본이 없다. 사진을 찍는 우리를 옆에서 찍은 사진만 남아 있다. 토론토 대학도 갔는데, 딱히 기억에는 없다. 미국의 대학들처럼 공원은 거의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저녁으로 또, 또 한식을 먹고 공항으로 향했다. 진짜 다 좋았는데, 밥이 맨날 중식, 한식인 게 너무 화났다. 교장과 학년 장 선생님을 탓할 수밖에 없었지만, 아, 더 쓰려니 더 화가 나 이만 줄이겠다. 아무튼 공항에 도착한 나는 헤드폰을 하나 사고 비행기에 올랐다.
이렇게 나의 첫 미국, 캐나다 여행이 끝났다. 이번 여행을 세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하나, 사진 속 내 얼굴들이 참 못났다.
둘, 사진이 얼마 없어 참 아쉽다.
셋, K와의 사진과 추억이 꽤 많아 놀랍다.
특히 세 번째가 꽤 놀랍다. 이 글을 내 동창들이 얼마나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읽는다면 그들도 놀랄 것이다.
미국. 다시 생각해도 다시 가고 싶은 곳. 나는 여전히 그곳을 그리워한다. 아, 그렇다고 고등학교 시절이 그리운 것은 전혀 아니다. 김플에서의 3년 중 딱 저 한 달만 그립다. 어쩌면 그 사람들도 그리운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