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씁쓸한 뒷맛
학교로 돌아온 우린 죠토고 학생들과의 단체 사진을 끝으로 어딘가로 향했는데, 여기부터 기억이 흐릿하다. 더군다나 사진도 시간을 순행하지 않고 뒤죽박죽 섞여 있어 더 그렇다. 첫 번째 도착지는 오카야마 성이었던 것 같다. 비가 오는 바람에 바깥 구경은 여유롭지 못했지만, 정원이 무척 넓었고 성을 둘러싼 강과 카페가 예뻤다. 실내는 박물관처럼 꾸며져 있었다. 일본식 갑옷 등을 구경하고 끝이 보일 때쯤 대뜸 포토존이 나타났다. 공주님과 장수였는데, 나는 그 안에 들어가지 않고 엄마와 잠이 좋은 K가 들어갔다.
나쁘지도, 좋지도 않았던 오카야마 성을 마무리하고 구라사키 미관지구로 향했다. 그 길에 점심을 먹었는데, 음식 사진은 없고 여러 겹의 거울에 비친 내 사진만 있다. 싸구려 뷔페식이었던 것 같다.
미관지구는 정말 아름다웠다. 물론 그때는 몰랐지만 말이다. 양쪽 길 사이에 흐르는 강과 일본 전통 가옥들. 그리고 그곳에서 파는 음식과 액세서리 등에 매료되었다. 강을 잇는 다리는 우리의 포토스팟이 되었다. 난간에 기대 멍하니 강을 구경하던 중 잠이 많은 K와 사진을 찍고, M과 R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건물 외벽에 기대어 독사진도 하나 찍었다. 마지막으로 3, 5반의 남학생들끼리 한 장, 3반 남학생들끼리 한 장을 찍었다. 미국에 갔을 때보다 인물 사진의 비중이 높아졌다. 좋은 변화지만,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다. 주머니에 들어간 손도 나오지 않는다. 왜 나는 모든 사진에서 웃지 않았던 걸까. 무척 아쉽다.
저녁은 도톤보리로 돌아와 삽겹살을 구워 먹었다. 끝이 다가오는데도 한식이라니. 이번에는 R, 그리고 M과 함께 앉았다. 식사를 끝으로 밤의 도톤보리를 걸었다. 해가 없음에도 네온사인의 불빛과 활기를 잃지 않는 곳을 걷고 있자니 괜히 내 마음도 부풀어 오르는 기분이었다. 이후 유명한 대게 모형 아래에서 몇몇 여학생들과 5반 K와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은 대체 무슨 조합인지 모르겠다. 이후 다리 아래에서 3반의 단체 사진을 찍었고, 우리 반 여학생 과반과 함께 찍은 내 사진도 있다. 이건 또 왜 찍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방송부 K가 내 머리 위로 뿔 2개를 만든 건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야 알았다.
이 기억이 첫째 날의 것인지, 이날의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내 기억 속엔 돈키호테를 들른 게 첫날인데, M의 말을 듣고 나니 이때인 것 같기도 하다.
구경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근처 돈키호테를 잠깐 들렀다. 계단 위를 구경하러 간 동안 나는 휠체어에 앉아 졸고 있었다. 이 타이밍에 5반의 K를 만났다. K는 같은 시 창작 동아리였다. 그전부터 친해지고 싶었는데, 동아리를 핑계로 가까워져서 기뻤다. 아쉬운, 그리고 부끄러운 게 있다면, 직전 크리스마스에 그녀에게 까였다는 점이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렇게 피곤과 괜한 어색함을 빌려 어영부영 시간을 넘겼다. 방에 돌아온 나는 서둘러 잘 준비를 마쳤다. 온종일의 설렘이 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일본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부랴부랴 준비를 마친 우린 곧장 오사카성으로 향했다. 첫날부터 내린 비는 끝까지 우리를 괴롭혔다. 파란 우비와 까만 호그와트 후드티, 그리고 여행 내내 쓴 모자가 있어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더 힘들었을 것이다.
딱히 기억나는 건 없다. 성에 가는 길에 있던 성벽에서 사진을 찍고, 성 앞에서, 그리고 성의 꼭대기가 보이는 정문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게 전부다.
웃긴 건 다음 일정이다. 우린 정말 뜬금없이 안전 박물관에 도착했다. 초등학교 때가 마지막이었는데, 고등학생 2학년이 되어 이런 곳을 오다니. 그것도 일본의 마지막 날에. 정말, 아주, 뜬금없고 웃긴 일정이 아닐 수 없다. 아, 가는 도중에 나베를 먹었다. 그래도 식사는 확실히 일식이라는 점이 더 웃기다.
박물관은 뭐,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관람을 다 마치고 나타난 쉼터 같은 곳에서 찍은 사진이 전부다. 여기에 소형 소방차가 있었는데, 사고가 난 상황을 연출하며 찍은 남학생들의 단체 사진이었다. 나름 열연한다고 핸들에 머리를 박고 있는 친구가 웃기다. 나는 차에 타지는 못하고,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 쓰러져 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자세히 보니 C인 것 같다.
헵파이브 대관람차를 타러 가는 길, 도로에서 마리오카트를 발견했다. 카트 렌탈 가게 앞이었는데, 코스프레까지 한 3명이 카트를 타고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버스가 더 빨리 출발하는 바람에 움직이는 카트는 못 본 게 아쉽다.
대관람차. 마지막이 언제였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우린 표를 받고 차례를 기다렸다. 나는 엄마와 R, 그리고 M과 함께 탔다. 다시 생각해도 독서토론 활동으로 친해진 그 둘에게 이 글을 빌려 고마움을 전한다. 한 30분 탔던 것 같다. 아마 대학 입시를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싶다.
꽤 낭만적이었다. 다만 타고, 내리는 것이 큰 문제였다. 탈 때는 무탈했다. 그런데 움직이는 관람차에서 내리자니 문제가 많았다. 한번 자빠질 뻔한 뒤, 관람차 자체가 멈췄다. 그 덕에 안전하게 내렸는데, 지금 생각하니 웃기다. 나 하나 때문에 관람차 전체를 멈추다니. 아주 커다란 선의를 받은 기분이었다.
마지막 식사는 라멘과 작은 돈까스 두 알, 그리고 밥이었다. 미국에서도 그랬는데, 여행은 정말 좋았다. 다 좋았는데, 정말 다 좋았는데, 식사가 정말 마음에 안 들었다. 해외에서도 한식을 먹고, 중식 뷔페를 먹어야 한다니. 더군다나 일본은 여행사 직원도 불친절했다. 행복하기만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다만 씁쓸한 뒷맛은 어쩔 수 없었다.
이 여행을 끝으로 우리는 3학년이 되었다. 2018년은 정말 욕 나오는 1년이었다. 수시 5개에서 광탈했고, 남은 하나조차 예비 1번에서 탈락했다. 암울한 시간을 지나 정시에서의 합격 소식 덕에 나의 여행은 계속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고, 이렇게 글로 남길 수 있게 되었다. 행복하다. 남은 여행 역시 새롭고, 영원히 즐거울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