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번외 : 아빠와 둘이
2016년 12월. 생일도, 축제도 모두 끝나고 다가온 크리스마스이브에 아빠와 단둘이 후쿠오카로 떠났다. 김해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상큼하게 비행기 연착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잠깐 기다린 아빠는 그것도 지루했는지 그냥 국내나 돌까, 라는 망언 아닌 망언을 뱉기도 했다. 물론 여행은 신나는 마음으로 떠났다.
후쿠오카에 도착하자마자 보인 건 마츠리에 쓰이는 것 같은 장식품이었다. 이후 버스를 타고 안내소에 도착한 우리는 호기롭게 렌트카에 도전한다. 여기로 갔더니 저기로 가라 하고, 저길 갔더니 여기로 돌아오란다. 이걸 한 번 반복한 후에야 질문을 주고받았다. 아빠는 일본어를 꽤 했다. 나도 꽤 했다. 당시 별명이 성적은 안 나오면서 말은 잘하는 놈이었으니 말 다 했다.
이전 직원은 국제 면허증이 없어도 된다며 이곳으로 안내했다. 그랬더니 이번 직원은 국제 면허증이 필요하단다. 나는 당시 수업시간에 배운 일본어 표현 ‘없으면 안 되는 건가요?(なければならないのか)’를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혀가 꼬여 결국 말하지 못했다. 아빠는 영어로 대화를 시도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결국 우리는 택시를 타고 캐널시티로 향했다. 아, 택시 승강장에서 휠체어 옆에 나란히 쪼그려 앉아 함께 사진도 찍었다.
도착한 캐널시티는 들었던 것처럼 한 건물 안에 모든 것이 있는 곳이었다. 우선 도착하자마자 인증샷을 찍고 내부로 들어갔다. 중앙에는 커다란 분수가 있다. 시간을 맞춰 오면 공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선 허기를 달래러 아무 식당에 들어갔다. 나는 카레와 기본 우동을, 아빠는 토핑이 가득한 우동을 시켰다. 첫 끼였던 탓에 두 명이 세 개를 시켜도 적당했다. 맛도 썩 나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후 다시 분수가 보이는 곳으로 왔다. 그랬더니 분수대 앞에서 악기를 준비 중이었다. 우린 2층에서 그것을 내려다보며 함께 사진을 찍었다. 키가 아주 큰 아빠 덕에 일어서서도 고개를 치켜올려야 했다. 음, 참 어렸다.
아빠는 이때부터 셀카봉을 들고 다니게 된 것 같다. 그 덕에 난간 밖으로 카메라를 꺼내 내 사진도 몇 장 찍어주었다. 하나는 눈을 감고 있고, 다른 하나는 안전봉이 절반이지만 말이다.
체크인을 마치고 한나절을 돌아다녔다. 후쿠오카에 오기 전, 캐널시티의 5층인가 6층에 라멘 가게가 가득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린 저녁으로 라멘을 먹기 위해 그곳으로 향했는데 이런. 엘리베이터가 없다.
하지만 두 철없는 남정네는 포기하지 않고 무려 휠체어를 타고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는 기행을 보여주었다. 과정은 꽤 순조로웠다. 그런데 도착할 무렵, 작은 턱에 걸려 우당탕 앞으로 자빠졌다. 근처에서 수군거리며 도움을 주기 위해 뛰어올 정도로 나름 심각했지만, 나는 이 상황이 웃기기만 했다. 더 웃긴 건 막상 도착한 곳에서 마음에 드는 메뉴를 못 찾았다는 점이다. 내려갈 때는 안전하게 휠체어 따로, 나 따로 갔다. 혼자 타고 가 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내려갈 때 사고가 나면 정말 큰 사고인지라 참았다. 이 에피소드를 들은 엄마는 기가 찬다는 듯 웃었다. 나름 진지했던 우린 그 웃음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이때의 추억은 여전히 회자 되는, 우리만의 헤프닝으로 남아있다.
해가 지기 시작하니 분수대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알록달록한 조명과 크리스마스 장식의 반짝임이 캐널시티를 수놓았다. 우린 건물 안팎을 둘러보며 야경 구경에 심취했다. 실내 상가로 들어온 우린 이것저것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 특히 애니메이션 굿즈 앞에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이 무렵 체육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강당의 큰 스크린으로 ‘하이큐’를 처음 틀어주었는데, 이후 한동안 유행이었다. 때마침 상가에서도 하이큐가 방영되고 있어 찍은 사진이 있다. 다른 건 아무것도 안 찍고, 딱 저 모니터만 찍었다. 이때의 내 감성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저녁은 이치란 라멘이었다. 그 고생을 하고, 돌고 돌아 결국 이치란이었다. 당시에는 그 맛과 가게의 콘셉트가 참 매력적이었다. 독서실 칸막이에 나란히 앉은 우린 같이 사진도 찍고, 셀카도 찍었다. 음식 사진도 찍었는데, 필터를 끼고 찍는 바람에 그저 희기만 하다. 이게 음식은 맞나 싶은 허연 국물과 면 위로 뻘건 양념이 묻어있다. 다시 생각해도 이때의 나는 이해할 수 없다.
호텔에 돌아와 대충 정리를 마친 우린 다시 나왔다. 로비 앞 빨간 우체통 사진도 찍고, 건물 밖 야경도 찍었다. 특히 캐널시티 분수를 배경으로 함께 찍은 사진이 참 좋다. 아래층에서도 찍고, 위층에서도 찍었다. 함께 찍고, 혼자 찍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인물 사진이 참 많다. 요즘은 명소만 찍고 내 사진은 잘 안 찍는데 말이다. 아무래도 둘이 떠난 첫 여행이라 그런 듯싶다.
다음 날은 아침부터 밥이 아닌 아이스크림과 파르페로 시작했다. 유명한 카페였던 걸로 기억한다. 일본에서 먹은 첫 파르페여서 그런지 아침부터 잘 넘어갔다. 아빠도 그 카페가 마음에 들었는지 셀카를 하나 찍었다.
그리고 대망의, 대망의 트와이스 굿즈를 구매했다. 당시의 나는, 지금도 여전히, 트와이스의 열성 팬이다. 공식 팬카페에도 가입했고, 앨범이 나올 때마다 종류별로 전부 구매했다. 교실에 굿즈 달력을 놓고 생활할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이 무렵이 일본에서도 인기를 얻기 시작한 때라 굿즈도 정말 많았다. 한참을 고심한 끝에 스티커 패키지 2개와 커다란 포스터 무더기를 구매했다. 머그컵과 볼펜도 이곳에서 구매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 모든 굿즈는 포장도 뜯지 못한 채 침대 밑에 모셔져 있다.
캐널시티를 다 돌아본 우린 근처의 절로 향했다. 우린 입구와 내부를 가리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 이 여행은 함께 찍은 사진이 참 많아 좋다. 여기저기를 둘러본 후 나무에 소원을 적은 종이도 묶어두었다.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대학 입시와 건강과 관련된 것일 듯싶다. 이후 시내 이곳저곳을 누볐다. 공원과 시청에서 찍은 아빠의 셀카와 하품을 하는 내 사진이 참 웃기다.
저녁은 캐널시티에서 유명한 다코야키와 붕어빵이었다. 맛은 기억나지 않는데, 한입에 삼킨 다코야키가 너무 뜨거워 뱉었던 건 기억난다. 저녁을 먹은 사진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여행은 끝이 났다. 바로 다음 사진이 집에서 찍은 기념품이니 말이다.
우리 가족은 어머니, 아버지라는 단어가 어색할 정도로 친하다. 저녁만 되면 한 침대에 누워 엉키는 게 하루 루틴일 정도로 말이다. 이 모든 건 아빠의 호칭 덕이라 생각한다. 아빠는 나를 부를 때 ‘야’, 라거나 ‘아들’이 아닌 ‘현태’라 부른다. 이름을 불러주는 것. 나는 이 점이 정말 좋다. 이름을 부르면 괜히 더 다정해지고, 이름을 들으면 괜히 더 웃게 된다. 아빠 덕에 나는 세상의 모든 단어 중에 내 이름을 가장 좋아한다. 그리고 이 다정함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으로 친구를 부를 때도 늘 이름으로 부른다.
앞으로도 이름을 부르고,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 아빠에게 받은 다정함을 모두와 느끼고 싶다. 우스갯소리로 엄마는 나와 둘이 있어도 아빠와 있는 듯한 기분이라고 한다. 내가 생각해도 우린 참 많이, 특히 말투가, 닮았다. 콩 심은 데 콩이 나는 건 당연한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