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안, 네 휠체어는 프랑스에 있어
2023년. 졸업식을 시작으로 학생 하현태의 삶이 모두 끝났다는 것을 실감했다. 사회인 하현태의 기념비적인 여행을 위해 익숙한 일본은 뒤로 미루고, 인생 첫 유럽 여행을 고민했다. 하지만 비싼 물가와 10시간 넘는 비행이 커다란 문턱처럼 느껴졌다. 결국 고민만 늘어지다 2024년이 밝았다. 새해를 알리는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두려움과 걱정이 아닌 용기와 호기심을 근거로 모든 예약을 완료했다.
이 이야기는 사진첩과 더불어 블로그를 토대로 작성되었다.
때는 바야흐로 2023년 12월. 당시 마산즈 (20년 지기 친구들과의 단톡방) 중 한 명이 유럽 일주를 다녀왔다. 안 그래도 유럽 여행을 벼르고 있던 때였기에 그의 여행은 큰 자극이었다. 그렇게 무려 서유럽 5개국 일주라는 커다란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낯선 땅, 처음 듣는 유럽의 언어, 난생처음인 환승 등을 소화하기에는 부담감이 너무 컸다. 결국 일주 계획은 한 나라에 오래 있자는 계획으로 변경되었고, 최종적으로 프랑스와 영국이 남았다. 불어와 영국식 영어에 환상이 있어 두 나라 모두 매력적이었다. 특히 불어는 처음 접하는 언어라 유튜브로 기초를 공부했다. 물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언어의 장벽이라는 커다란 벽에 막히고 말았지만 말이다.
최종적으로 영국행이 결정되었다. 나는 유명한 여행 카페부터 유튜브 등을 보며 숙소와 코스 등을 공부했다. 그렇게 구글 지도가 빼곡해질 무렵 제야의 종이 울렸고, 그 소리를 들으며 모든 예약을 마쳤다. 마침내, 인생 첫 유럽행이 결정되었다.
2024년 3월 4일. 밤잠을 설쳤는데도 전혀 피곤하지 않은 몸으로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그랬더니 웬걸, 공항 인생네컷이 생긴 게 아닌가. 그렇게 L에게 선물 받은 옷을 입고 찍은 항공샷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3월 4일은 학기의 첫날이었는데, 이번 해는 여행 첫날이라니. 한껏 부푼 마음을 부여잡고 떠난 비행기는 곧장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인천공항 국제선. 고등학교 1학년 때 들르긴 했지만, 당시에는 단체로 움직였기에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었다. 정말, 정말 컸다. 곧장 환승이라 전체를 둘러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환승을 위해 갔던 길만 해도 김해공항 전체의 수십 배는 되는 듯했다.
직원의 안내로 도착한 게이트에 웬걸. 구석에 잔뜩 꾸민 사람이 주저앉아 있고, 건장한 남자 네다섯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녀의 존재를 처음 알아차린 건 엄마였다. 나는 설마, 하며 인터넷을 뒤졌는데 우왁. 뉴진스의 해인이었다. 인천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돌을 보다니. 심지어 같은 비행기라니!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운이 좋았다.
대망의 파리행 비행이 시작되었다. 영화 같은 기내 방송을 시작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첫 기내식이 나왔다. 전체적으로 좋았다. 초코빵인 줄 알고 남겨뒀던 빵이 블루베리였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식사를 마치고 화장실에서 셀카도 찍고, 모니터로 얼마나 왔는지도 찾아보니 14시간도 훌쩍 지났다. 비행은 전체적으로 무난했다. 딱 하나, 앞자리 승객이 14시간 동안 의자를 뒤로 꺾어두고 간 것만 빼면.
파리 샤를드골 공항에 도착해 로밍을 마치니 핸드폰이 막 울렸다. 소매치기 주의, 도난 주의, 마약 주의, 야간시간 도심 통행 주의, 집회 충돌 주의, 폭력 시위 주의. 근 10년간 보게 될 주의란 주의는 이날 다 본 것 같다. 그런데 하차부터 심상치 않다. 분명 내 휠체어로 이동을 신청했는데, 공항 휠체어가 나왔다. 게이트 앞에 앉아 기다리고 있으니 내 휠체어는 런던에서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분명 인천공항에서 말을 해두었건만. 그래도 시작부터 싸울 수는 없으니 일단 넘어갔다.
공항은 전체적으로 레드 카펫이 깔려있어 무척 고급스러웠다. 앞부분에는 비행기가 한눈에 보이는 쉼터도 있었다. 엄마는 첫 유럽 음식으로 유기농 커피를 마시며 심신을 안정시켰다. 그렇게 잠깐의 휴식이 끝나고, 런던행 환승이 시작되었다.
시작부터 싸늘하다. 한국이었으면 가장 먼저 줄을 서고 가장 먼저 입장했을 텐데, 파리에서는 직원이 안내해줄 거라며 안내 데스크 옆에서 기다리란다. 직원은 모든 손님이 줄을 선 후에야 도착했다. 심지어 파리에 도착했을 때 도와주던 직원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직원. 정말 기가 막힌다. 짐 검사를 맡을 때는 이분이 가져온 물통이 걸려 시간이 지체되었다. 거기에 더해 미안하다는 내색은커녕 노래에 맞춰 콧노래를 부르는 게 아닌가. 유럽인의 여유로움에 큰 충격을 받으며 간신히 환승 게이트에 도착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탑승 게이트 바로 앞에서 10분을 기다렸다. 찬바람을 직통으로 맞으며, 10분을.
여차저차 탑승한 비행기는 불어 방송이 울리고 있었다. 와, 나중에 영어 방송도 하긴 했는데, 불어와 기계음이 섞여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심지어는 괴상한 진동음도 계속되었다.
이런 비행 속에서도 한 가지 웃을 일이 있었다. 옆 좌석에 일본인 중년 부부가 계셨다. 예쁘게 꾸민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아내와 투박하지만 맞춰주는 남편. 그 모습에 부러움을 느끼고 있는데, 좌석 앞의 휴대폰 거치대를 사용하지 못해 두리번거리는 걸 발견했다. 말을 걸지는 못하고 무심한 척 거치대를 사용하니 이를 발견한 남편이 따라 하셨다. 이후 짧은 눈인사를 나눴는데, 엄마는 이것도 인연이라며 일본어로 말을 걸어보라 부추겼다. 낯이란 낯은 다 가리는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그저 웃어넘겼다.
마침내 영국에 도착했다. 영국. 해리포터와 매력적인 영어 억양의 나라. 잔뜩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에서 내렸다. 그랬더니 이번에도 공항 휠체어를 줬다. 심지어 2개나. 내 휠체어가 아닌 것도 기막힌데 심지어 두 개라니. 어이없어하는 우리에게 직원은 일단 어머니도 타라며 부추겼다. 하는 수 없이 우리 모자는 나란히 휠체어를 타고 짐을 찾기 위해 떠났다.
일단, 공항은 멋졌다. 귀족과 근위병, 검정 택시 운전사 등이 두 팔을 벌리고 ‘WELCOME’이란 커다란 문구로 우리를 환영했다. 그렇게 환영 포스터들을 뒤로하고, 대망의 짐 찾는 곳에 도착했다.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내 휠체어는 보이지 않았다. 직원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자리를 비웠다. 그렇게 모든 승객의 짐이 나왔고, 내 휠체어는 나오지 않았다. 그랬더니 직원이 돌아와 데스크로 나를 안내했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미안 네 휠체어는 프랑스에 있어.”
공항 휠체어를 빌려 달라고 해도 없다 하고, 공항 호텔은 자리가 없단다. 그러더니
“진짜 진짜 미안 여기 서류 줄게 택시 태워줄 테니까 홈피로 요금 청구해!”
라는 말과 함께 우리를 택시 타는 곳으로 안내했다. 와중에 회원가입이 필요한 히드로 택시와 우버 중 하나를 택하란다. 친절한 선택지에 아무거나 태워달라 말했더니 멋진 검정 택시를 태워주었다. 한 달 동안 엘리자베스 라인을 공부했는데,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영국의 밤길은 아름다웠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빨간 2층 버스를 구경하니 어느덧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앞이 공사 중이라 조금 떨어진 곳에 내린 건 참 웃기다.
호텔은 방도 좋았고, 위치도 좋았다. 다만 체크인과 동시에 “내일 에어프랑스에서 지연된 내 휠체어가 올 테니 오면 말해달라”로 시작했고, 전기 쓰는 법을 몰라 애꿎은 드라이기만 바꿨지만 말이다.
그래도 신났다. 커다란 거울 앞에서 L이 사준 니트를 입고 인증샷도 찍고, 청구를 위한 택시 영수증 사진도 찍었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오는 데 팁 포함 16만 원이나 들었다. 이 돈은 다행히 빨리 받았다.
첫날은 그렇게 져 물어 갔다. 여행 전용 잠옷인 김플 반팔 티를 입고 휠체어는 일찍 오겠지, 라는 헛된 희망을 품은 채. 진짜는 다음날이라는 걸 꿈에도 모르고, 잘도 잤다.
다음날. 데스크에 다시 휠체어에 대해 일러두고 조식을 먹었다. 소시지 크루아상, 머핀과 약간의 스크럼블, 그리고 오렌지 주스. 외국인으로 가득한 식당에서 밥을 먹는 와중에야 이곳이 영국임을 실감했다. 아, 내 그릇 사진을 본 동기 J는 내가 인종차별을 당해 부실하게 먹는 줄 알았다고 한다. 내가 채소를 차별한 건데 말이다.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이곳, 영국에서. 인생 핫초코를 만났다. 기계에서 나오는 거라 별 기대도 안 했는데 웬걸. 양쪽 호스에서 물이 아니라 초콜릿이 흘렀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본 적 없는 진하고 걸쭉한 핫초코 한 잔이 완성되었다. 향도, 맛도. 순수하게 초콜릿으로 가득한 한 잔이. 일 년이 훌쩍 넘은 지금 그 맛을 떠올리는 동안 입맛을 다실 정도로, 정말 인생 핫초코였다.
이후 유럽 배, 로 추정되는, 과일을 먹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휠체어는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그렇다고 하루를 날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 호텔 앞이라도 잠깐 걸었다. 공사 중인 도로를 지나 횡단보도 두 개를 건너 스타벅스에 도착했다. 그런데 스타벅스는 공사 중이고, 그 옆 현지인 카페는 줄이 밖까지 이어져 있었다. 설상가상 몸까지 지쳐 결국 방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늘을 수놓은 삐쩍 마른 나뭇가지. ‘Except cycles’라 적힌 신호등과 붉은 벽돌집들. 그것만으로도, 이곳이 영국임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방에서 잠깐 쉬다 보니 곧 휠체어가 도착할 시간이라 식당에서 피시엔 치프스를 먹으며 기다렸다. 약간의 감자튀김과 각종 소스, 그리고 팔보다 큰 대구 한 조각. 그 크기에 놀라 역시 영국이구나, 하며 또 한 번 놀랐다.
그런데 이 난리를 다 피우는 와중에도, 오전 9시 전에 도착할 거라던 휠체어는 아무 소식이 없었다. 결국 전화를 걸었더니, 기계음과 불어 섞인 영어가 나를 가로막았다. 결국 호텔 직원 ‘아미르’, 이 글을 빌려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한다, 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첫 번째 통화에서, 그는 부서와 담당 직원의 이름을 알아내 내게 알려주었다. 그런데 메일이나 번호로 연락을 준다던 그 직원은 1시간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결국 아미르에게 다시 전화해서 아래의 글을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오늘 안에 내 휠체어를 받지 못한다면, 난 나의 여행을 에어프랑스 때문에 완전히 망치게 된다. 분명 어젯밤 수하물 카운터의 직원이 오늘 오전 9시까지 내 휠체어를 보내준다고 했다. 나는 당신들의 업무에 굉장히 실망했다. 오늘 아침에도 직원인 레이첼이 연락을 준다고 했으나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도 없다. 내 휠체어를 당장 호텔로 보내달라.”
그때가 되어서야 2시 30분에 도착한다는 답을 들었다. 아미르는 나보다 더 화난 얼굴로
“가만히 두면 ‘다른 부서가 그럴 수 있죠,’ 하고 넘어간다. 그러니 절대 포기하지 마라. 계속 이러면 본사에 클레임 넣어라. 그리고 2시 30분에 안 오면 다시 전화해라. 그 모든 과정에서 도움이 필요하면 나를 불러라.”
라고 말해주었다. 영국에서 영웅을 만났다.
그렇게 2시 30분이 되었다. 휠체어? 안 왔다. 3시까지 기다려보자, 하며 로비에 앉아 20분을 기다렸다. 그랬더니 50분에야 도착했다. 영어를 할 줄 모르는 퀵기사의 손에 들려서. 그는 본인 확인도 안 하고 물건 사진만 찍고 떠났다. 그 결과, 내 휠체어는 오른쪽 브레이크가 부서져 있었다. 두고 보자는 마음으로 부서진 부분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이 손해 배상은, 여행이 다 끝나고 한 달이 더 지난 후에야 끝이 났다.
오후 3시가 넘어서야 본격적인 영국 여행이 시작되었다. 슬픔과 분노는 잠깐 접어두고, 곧장 대영박물관으로 향했다. 늦은 오후였는데도 길이 죽 늘어져 있었다. 잠깐 기웃거리니, 휠체어를 탄 나를 가장 먼저 입장시켜주었다.
대영박물관. 입구부터 범상치 않았는데, 내부는 더 웅장했다. 넓은 로비의 중앙에는 계단과 원형 기념품 가게가 있었고, 한쪽에는 카페가 있었다. 본격적인 구경에 앞서 기념품부터 둘러보았다. 시작부터 깃펜이 잔뜩 있었다. 당시 대학 동기 K가, 영상 편집 어플도 소개해줬다, 해리포터 깃펜을 생일선물로 보내줬었다. 이후 그 매력에 빠져 매일 썼던 덕에 깃펜을 보자마자 넋이 나갔다. 아, 다시 생각해도 그때 샀어야 했다. 첫날이라는 이유로 한국 갤러리 소개 책자, 투구 입은 러버덕을 구경하며 입맛만 다신 내가 바보였다. 와중에 깃펜은 안 샀으면서 시집은 샀다.
본격적으로 박물관 구경을 시작했다. 모아이 석상부터 로제타 스톤, 각종 아시안부터 이집트 유물까지. 소문대로 별의별 것들을 다 뜯어온 것 같았다. 특히 책을 통째로 파내서 배를 넣어둔 것과 이집트 석상 뒤의 거대한 책장은 무척 인상 깊었다.
첫 구경은 대강 끝내고 거리로 나왔다. 그랬더니 또 다른 예술이 시작되었다. 빨간 자동차, 낡은 벽돌 건물. 파란 대문과 뼈만 남은 나무들. 원형 지붕과 넓은 정원. 거대한 나무 사이사이의 벤치. 그리고 그곳에 앉아 쉬는 사람들까지. 나는 박물관만큼 아름다운 영국 거리와 사랑에 빠졌다.
마트에서 신라면과 과자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영국은 나무젓가락이 아니라 나무 포크를 준다. 박물관 기념품인 책갈피와 책을 정리하고, 남은 피시엔 치프스와 신라면으로 다사다난했던 둘째 날을 마무리했다. 부디 남은 여행은 무탈하길 바라며, 우린 다시 설레기 시작한 마음으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