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은 날!
11월 30일, 11월의 마지막 일요일 아침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엄마와 함께 교회에 갈 준비를 하고, 예배 후 점심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던 평범한 주일이었다. 익숙한 부엌,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카레 냄새, 그리고 도마 위를 구르는 칼질 소리까지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그 사소한 한마디가 날아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대파는 왜 이렇게 잘게 썰어 넣니?"
엄마는 웃으며 던진, 그저 지나가는 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내 마음속 어딘가에 있던 뾰족한 가시가 툭 건드려졌다. 평소라면 그냥 넘겼을 그 말이 유독 '잔소리'처럼 따갑게 박혔다. 나도 모르게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던 화가 튀어나왔다. 날 선 나의 반응에 엄마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렇게 화를 내냐"는 엄마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내가 너무 예민했나.'
금세 밀려오는 후회에 나는 어색한 공기를 바꿔보고자 일부러 엄마에게 말을 건넸다. "엄마, 당근 상태가 좀 안 좋은 것 같아." 화해의 제스처였지만, 엄마는 들리지 않았는지 대답이 없었다. 그 순간, 묘한 배신감과 서러움이 왈칵 밀려왔다. 나는 풀려고 노력했는데 엄마가 무시했다는 생각에, 방금 전의 미안함은 순식간에 뜨거운 분노로 뒤바뀌었다. 더 이상 그 공간에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나는 쾅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교회 문을 닫고 나와버렸다. 권사님이 들어오시는 모습이 스쳐 지나갔지만, 예의를 차릴 겨를도 없었다. 그때의 나는 오직 '화가 난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지독히도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짐을 챙겨 나오고, 남편에게 하소연을 쏟아내고, 맛있는 밥을 먹으며 기분을 풀어보려 애썼다. 하지만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들여다봐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찜찜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날 일을 쉬려고 했지만, 집에 혼자 남겨지면 온갖 잡생각이 나를 괴롭힐 것만 같아 도망치듯 출근을 자처했다.
역시 사람은 생산적인 일을 해야 시야가 넓어지는 법인가 보다. 업무에 몰입하다 문득, 어제 두고 온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분노가 거품처럼 꺼진 자리에 뒤늦게 슬픔이 차올랐다.
나이 들어 점점 작아지는 엄마의 뒷모습. 평생을 자식들을 위해 사느라 이제는 이조차 온전치 않아 임플란트에 의지해 식사하셔야 하는 엄마. 그 약하고 여린 존재가 내 모진 짜증을 받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어제 내가 닫고 나온 건 단순히 교회 문이 아니라, 늙고 병약해져 가는 엄마의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
'내가 또 별것 아닌 일로 엄마에게 상처를 줬구나.'
후회가 밀려왔지만, 못난 자존심은 끝까지 내 발목을 잡았다. 수화기를 드는 일이 왜 그리도 무겁게 느껴지던지. 한참을 망설이다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용기를 냈다. 평소보다 한 톤 높은, 애교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엄마, 미안해."
사실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내 잘못만은 아니라고, 여전히 나는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일까. 엄마를 이겨서 내가 얻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점점 작아지고 약해지는 엄마 앞에서 나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와의 통화는 싱거울 정도로 따뜻하게 끝이 났다. 엄마는 언제나처럼 나를 받아주었고, 우리는 극적인 화해를 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그제야 꽉 막혀 있던 가슴이 뚫리는 기분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엄마와 부딪히는 일이 잦아진다. 서로가 변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더 예민해지고, 엄마는 더 약해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오늘 나는 다짐한다. 한 발자국만 더 물러서자고. 이해하고, 양보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지우자고.
시간이 조금만 더 더디게 흘러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 엄마가 더 이상 늙지 않기를, 이 소소한 다툼조차 그리워질 날이 너무 빨리 오지 않기를 기도한다. 오늘, 나는 엄마에게 짐으로써 비로소 사랑을 지켜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