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시간을 배우는 방법

by 이작가야




남편과 차를 마시며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다.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아, 우리가 정말 그런 나이가 되었구나 싶었다.
남편의 지인 중 한 분이 작년에

정년퇴직을 했다고 한다.
그분은 집에 있으면 아내가 눈치를 준다고 했다.
점심을 챙기는 게 귀찮다며,
“당신은 친구도 없냐”,
“왜 밖에서 친구랑 점심을 안 먹냐”
그런 말을 듣는다고 했다.
평일에 집에 있는 게 여간 곤욕이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특별한 취미도 없어서
동네를 슬슬 산책하고 돌아오면
그다음 시간부터는 할 일이 없다고 했다.
텔레비전조차 지루하다고.






남편은 또 다른 지인의 이야기를 꺼냈다.
몇십 년 동안 직장인으로 살아오다
퇴직할 때가 되었고,
퇴직 후 계약직 근무를 제안받았지만
일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커
그 제안을 거절했다고 했다.
대신 그분은 집에 남았다.
출근하는 아내와 자녀들을 위해 음식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와 청소를 하며 하루를 산다고 했다.
그 모든 일이 의외로 체질에 맞는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퇴직 이후의 삶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사람마다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누군가는 비어버린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누군가는 그 빈자리에
새로운 역할을 자연스럽게 놓는다.
적응의 속도도, 방향도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 역시 퇴직을 하고 쉰 지 2년째다.
손가락과 어깨가 불편해져 퇴직을 결심했다.
결혼해서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니게 되면서부터 25년을 쉬지 않고 직장생활을 해서인지 처음 일주일은 휴가를 받은 것처럼 꿀 같은 날들이었지만
한 달, 두 달, 여섯 달 2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이력서를 다시 써볼까 하는 마음도
수없이 들었다.
내가 주부로 생활하면서 사업을 하고 있는 남편은 점심시간이면 집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날마다, 날마다.






노트북을 챙겨 카페에 도착한 후 공부할 준비를

다 했을 때 어디냐며 점심 달라는 전화를

받을 때도 있다
혼자 있을 때의 나는 비교적 단출하다.
점심이 당기지 않으면 건너뛰고,
어떤 날은 너츠 몇 알과 그릭요거트로 끼니를 대신한다.
유튜브로 외국어를 공부하다가
지루해지면 뜨개질을 하며 공포물을 보고,
글감이 떠오르면 노트북을 펼친다.
나만의 리듬, 나만의 하루다.
하지만 남편이 들어오는 순간
집의 공기는 조금 달라진다.
리모컨은 자연스럽게 남편의 손으로 옮겨가고,
화면은 스포츠 채널로 바뀐다.
나는 냉장고를 열어 반찬을 꺼내고
찌개를 끓이고 점심을 준비한다.
점심을 먹고 난 뒤에도
한 시간 넘게 텔레비전을 보다 나가곤 한다.
어쩌면 그것이 남편이 누리는 작은 행복일지도 모른다.
거실에 함께 앉아 있지만
내 시간은 잠시 멈춰 선 상태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남편이 점심을 먹으러 오는 게 불편하다.
하지만 밖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집에 오지 말고 밖에서 해결해요”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다.
그 말은 상처가 될 것이고,
나는 너무 이기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가족을 위해 고생하는
남편이 안쓰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 나이의 부부가 겪는
아주 조용한 갈등일까.
아마 이것은 사랑이 식어서도,
미워서도 아닌 이야기일 것이다.
서로 다른 시간의 온도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채 같은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는 이제 함께 있는 법 각자의 시간을 존중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하는 나이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퇴직 이후의 삶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생활일 뿐이다.
그 변화 앞에서 누군가는 숨이 막히고
누군가는 비로소 숨을 쉰다.
그리고 나는 아직 그 중간 어디쯤에
서 있다.
말하지 못한 마음을 품은 채로 오늘을 무사히 건너가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적응이다.

작가의 이전글분당까지 6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