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흐르는 삶, 열두 개의 쉼표 7

일곱 번째-친구관계

by 이작가야




25년 지기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친구라기보다

가족이었고, 가족이라기보다

두 번째 나였다.


그냥

살점이었다.





직장도 15년을 함께 다녔다.

그 애가 힘들어하는 일은 내가 했고,

하기 싫은 게 있다면 내가 했다.

그게 도움이라는 생각조차 해본 적 없었다.

그냥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체형이 정반대였다.

나는 상체가 발달했고

그 친구는 상체가 왜소했다.

자매처럼 지내던 우리는

속옷까지 같은 걸 사서

내 하의와 그 친구의 상의를 바꿔 가졌다.

그게 우리 사이의 방식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내 마음이 조금씩 공허해지기 시작했다.

내 옷이 예쁘다며 달라고 해서 줬더니

가져가자마자 당근마켓에 올라와 있었다.

맛있는 걸 먹으러 가면

자신이 너무 좋아하는 음식이라며

내 접시에서 골라 가져갔다.

외부 교육으로 자리를 비운 날,

직장으로 배달된 내 택배가 뜯겨 있었다.

동료 선생님들은 그러지 말라고 말려보았지만,

우리는 친구라서 괜찮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었다.

택배 상자 속 립스틱에는 사용감이 생겼고,

향수는 이미 친구의 손목을 지나간 뒤였다.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있었다.


단순히 친하다고 이러는 게 아니었다.

그 친구의 사고방식이,

인성이 문제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동시에 깨달았다.

나는 늘 다 들어주고, 다 해주었는데

그 친구는 내가 아플 때 나 대신 야근을 해주거나 도와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왜 그 친구가 하기 싫은 것까지

대신해 주었을까 나는 한 번도 계산해보지 않고 했던 것들이 그 친구에게는

계산이었다는 걸 알아버렸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나에게도 문제가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선한 마음은 언제나 아름답지만,

그 마음이 이용당하는 걸

눈치채지 못하면

결국 자신을 잃게 된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나의 열정과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

오직 나에게만 집중하기로.

지금은 그 친구와 연락하지 않는다.

25년의 시간이 아깝지 않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모르겠다.

가끔 삼각김밥을 먹을 때 그 친구는 삼각김밥을 벗기는 걸 못해서 '늘 내가 벗겨줬었는데'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체중이 좀 불어서 옷이 작아졌을 때

바보같이 그 친구가 생각나기도 한다.

'이 옷 그 애가 입으면 딱 맞겠다'





인간관계가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계속해야 하는 관계는 없다는 것을 이제 안다.

그리고 내 살점이라 믿었던 그 친구보다

이제는 나 자신을

조금 더 지켜야 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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