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나이 듦에 대하여
나이 듦은 잃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처음으로 자신을 정확히 안다고 느끼는 시기이다.
어릴 때는 몰라서 불안했고, 청춘에는 막막해서 흔들렸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이 정도면 괜찮다는 마음이 조용히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그 마음이 언제 왔는지는 모르겠다. 어느 날 아침 문득, 자리에서 일어나다 온몸이 삐걱거리는 걸 느끼면서였는지도 모른다. 뭔가 깊은 데서부터 뻐근하게 올라오는 그 감각. 그때 불현듯 할머니 목소리가 떠올랐다.
"아이고 삭신이야. 삭신이 다 쑤신다."
어릴 때는 그 말이 참 낯설었다.
그냥 할머니가 늙으셔서 힘드신가 보다 하고
막연하게 넘겼다.
할머니 곁에 가면 늘 냄새가 났었다.
그게 삭신이 쑤시면 몸에서 나는 냄새인가 보다 생각했다. 삭신이 뭔지도 몰랐고, 그 냄새가 나면
할머니가 또 삭신이 쑤시겠구나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안다.
그건 할머니가 온몸 여기저기에 붙이고 또 붙이셨던 파스냄새였다.
나도 요즘 가끔 파스를 꺼낸다.
붙이면서 피식 웃는다. 이 냄새.
할아버지는 늘 손수건을 챙기셨다. 눈물이 자꾸 난다고 하셨다. 나는 그게 나이가 들면 마음이 약해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살다 보면 슬픈 일도 많아지고, 감정이 점점 헐거워지는 거라고.
그런데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노안이 오고 눈물샘에도 문제가 생겨서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른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조금씩 알게 된 것들은
참 많다.
할아버지가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으실 때
"할아버지 왜 울어요?"하고 물었던 기억. 할아버지는 대답 대신 그냥 웃으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 웃음이 얼마나 너그러운 웃음이었는지.
몸은 말보다 먼저 안다. 그리고 몸이 먼저 알게 되는 것들은 대부분, 내가 그냥 스쳐 지나쳤던 누군가의 하루였다.
할머니의 파스 냄새가, 할아버지의 손수건이, 이제는 그냥 냄새와 천 조각이 아니라 그분들이 조용히 감당하셨던 시간으로 읽힌다.
체력은 줄어들었을지 몰라도 감정의 체력은
오히려 단단해진다. 그 단단함이 나이 듦의
가장 조용한 선물이다.
흘려보냈던 것들이 보이고,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소중해지고, 이름도 안 붙여줬던 것들에 비로소 마음이 간다.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 또 눈가가 뜨거워진다.
이건 노안 때문이 아니다. 그냥 그리움이다.
사람의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은 더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