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 넘도록 어깨에 묵직한 통증을 달고 산다. 어떤 날은 묵직함보다 찢어지는 통증일 때가 더 많지만~
가벼운 가방 하나 메는 것도,
긴 머리를 빗어 내리는 것도 고통이다.
자다 뒤척이는 것도 예삿일이 아닌 나날들.
그런 내게 고등학교 총동창회 체육대회가 닥쳤다.
나는 남녀공학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그것 때문인지 선후배 관계도,
친구 관계도 특별히 더 돈독하다.
세개 기수가 한 팀으로 묶인 인원은 53명이다. 선배기수 15명, 우리 기수 28명, 후배기수 10명.
많이 모인 기수가 추체가 되어 준비.
당일에 최종 참석한 인원은 46명이었다.
임원이자 기수 총무인 나는 나에게 소속된 팀원들
50인분의 음식을 준비했다.
성격이 급해서일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일까.
아픈 어깨를 대신해 온몸의 근육을 끌어다 배추 8kg의 겉절이를 만들었다.
아픈 어깨로 인해 장도 3일에 걸쳐 보게 되었다.
어깨에서는 '적당히 하라'는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상추를 씻고, 고추를 자르고,
순대를 찍어 먹을 소금을 배합하는
그 모든 과정은 내 어깨에 지우는 짐이었지만,
사람들을 잘 먹이고 싶고, 마음을 나누고 싶은
나의 진심이었다.
체육대회 당일,
행사장 한쪽에서 어묵탕 냄비에 불을 피웠다.
어묵 110개와 물떡 30개가 순식간에 동이 났다.
여자 친구들은 간 보면서 하라고 걱정했지만
늘 그래왔듯 감으로 끓여낸 어묵탕 국물은 찌는 더위에도 인기 폭발이었다.
도와주는 남자 친구들의 손을 빌려
무거운 냄비를 옮기며 나는 깨달았다.
'내가 다 해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으니
그 빈자리에 타인의 다정함이 들어온다는 것을.
어깨가 아파서 손을 내밀었더니
누군가는 김밥을 찾아와 주었고,
누군가는 순대를 찾아다 주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무거운 김치 통을 대신 들어주었다.
8kg의 겉절이가 금세 바닥을 보이고,
즉석에서 오이고추를 버무리니
다른 기수 선후배들도 기웃기웃.
심지어 얻어가기까지 했다.
"역시 총무님 손맛"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워 줄 때 신기하게도 밤새 욱신거리던 어깨의 통증이
잠시 잊혔다.
한 친구가 말했다.
"SNS 피드만 보면 놀러 다니고, 네일아트나 하고, 노래나 하며 세상에서 제일 편하게 사는 줄 알았더니, 살림꾼이네. 의외다 너.
음식 준비해 온 거 다 맛있어. 고생했다."
음식은 먹는 순간 사라지지만
그 온기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다.
뒷정리를 마치고
싹싹 비워진 곰솥과 김치통을 보며
안도감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체육대회 전부터 총동에서 계획된 일이었지만
이날 나는 생각지도 못한 감사장과 꽃다발까지 받았다.
집으로 돌아와
어깨에 뜨끈한 온찜질 패드를 올린다.
아프지만 충만한 저녁.
나의 어깨가 오늘 참 수고 많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