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이 알려준 관계의 미학
해가 바뀔수록 휴대폰 속 이름들은 더 이상 늘지 않아. 오히려 조용히 멈추거나, 때로는 의도적으로 줄어들지. 나이 듦은 무언가를 더 채우는 일이 아니라, 비로소 내게 남겨야 할 것만 담아내는 과정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어.
스무 살의 나는 북적이는 약속 속에서만 살아 있다고 믿었어.
연락이 끊기면 관계도 끝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좋았어. 친구 목록이 많아야 '괜찮은 사람'처럼 보일 거라 착각했지. 그래서 마음도 없이 모임에 참석했고, 안부를 의무처럼 건네며 나를 계속 소진시켰어.
어른이 되어 보니, 친구라고 믿던 사람들 중에는 내 취미를 응원해 주기보다 질투하거나, 나를 이해하기보다 가볍게 평가하는 이들이 있더라.
"그 나이에 뭘 또 배우냐."
"왜 그렇게 힘들게 사냐."
그 말들이 쌓일수록 나는 알게 됐어.
그들의 마음가짐이 내 삶에 단 한 가지의 좋은 영향도 주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람들의 삶의 마음가짐이나 추구하는 방향이 나와 달랐고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는 건 누구나 같은데 의미 없이, 혹은 허탈하게 보내지는 게 아쉬웠어.
그래서 조용히 거리를 두기 시작했지.
휴대폰에는 아직도 많은 이름이 남아 있어.
그들을 떠나보내지 못해서
잡고 있는 것이 아니야.
다만, 그 수많은 이름을 정리할 만큼 여유로운 시간이 나에게 아직 없을 뿐이야.
조금씩, 조금씩 비워가려 해.
사람을 잃는 게 두려워 꽉 쥐고 있던 손을 펴는 일. 그게 외로움이 아니라 성숙이라는 걸,
이제야 알겠어. 관계는 채우는 게 아니라
남기는 거더라.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들만 남기는 것.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건 나니까
곁을 비워내는 용기가, 결국 나를 채우는 방법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