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린 방식의 유대감

by 이작가야



섬뜩한 키워드가 소환한 기억

최근 유튜브에서 접한 '뒤틀린 방식의 유대감'이라는 키워드가 뇌리에 박혔다. 섬뜩한 괴담 채널에서 들었지만, 정작 그 키워드가 소환한 것은 30년 전, 가장 순수하면서도 가장 복잡했던 나의 학창 시절이었다.

우리의 만남은 시대적 운명이었다. 우리는 같은 동네에 살았기에 국민학교 때부터 자연스럽게 친구로 지내왔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당시, 전국적으로 시행되던 중학교 무시험 추첨제(평준화)에 따라 응시만 하면 무작위 추첨으로 학교가 배정되었다. 근처 여자 중학교 두 곳 중 한 곳으로 내가 배정되었고, 놀랍게도 그 친구도 같은 학교로 배정되었다. 이 추첨의 우연이 우리의 끈끈한 관계를 중학교까지 이어주었다.


10여 년간 함께한 시간

그 친구는 어려서부터 유독 나를 따랐다. 나는 국민학교 때부터 그랬듯이 중학교에서도 자연스럽게 그녀와 가장 가까운 친구로 지냈다.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친구의 부모님은 선생님께 찾아와 나와 같은 반이 되도록 부탁하셨고, 우리는 3년 내내 같은 반 친구로 지냈다.

이 관계는 고등학교에서도 이어졌다.

내가 고등학교를 들어갈 무렵은 학력고사 시절이었고, 각 고등학교가 자체 시험으로 학생을 선발하던 때였다. 나와 친구는 같은 고등학교에 학력고사 시험을 치렀고 친구는 점수가 커트라인 안에 들지 못했지만, 친구의 집안은 꽤 부유했기에 학교에 기부금을 내고 후기나 대기자로 기다리지 않고 나와 함께 전기에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우리는 함께했다.

나는 중학교 입학부터 고등학교 졸업 직전까지 교복 자율화를 경험한 세대였는데,

친구는 내게 자신이 안 입는 옷을 주었고

나는 그 옷을 고맙게 입고 다녔다.

볼펜과 연습장도 사주고 분식집도 같이 다니는 등 친구는 나에게 많은 것을 나눠줬다.

나는 함께 있어주었고, 친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우정을 표현했다.

학교를 졸업한 후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가끔 만났던 시간까지 합치면, 우리는 15~6 년간
함께 시간을 보냈다.


돌이켜보면 보였던 신호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미 그때부터 무언가 뒤틀린 신호들이 있었다.
내가 다른 친구들과 분식집에 가면 며칠 동안 그녀는 심드렁해 있었다. 학교가 끝나 집에 가는 버스에서 빈자리가 한 자리밖에 없으면,

그녀나 나 아무나 앉고 앉은 사람이 가방을 받아주면 되는데, 한 자리만 남을 때면

둘 다 앉지 말자고 우겼다.
그때는 그저 친구의 타고난 성격이나 고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그 친구만의 소유물이어야 한다는,

그녀만의 배타적인 표현이었던 것 같다.


우정이 아닌 다른 무엇이었음을 알게 되다.

졸업 후 나는 S기업에 입사했고 그 친구도 한 회사에 입사해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우리는 틈만 나면 가끔 만났다.

그 관계가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던 어느 날,
나에게 결혼할 남자가 생겼고

친구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내가 기대했던 축하와 기쁨 대신 돌아온 것은

"결혼 안 하면 안 돼?"라는 충격적인 절규와

며칠 밤낮 우리 집 앞에서 울다가 돌아가던

그녀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저 친한 친구로서 함께 있어주었을 뿐인데, 친구가 나에게 이럴 수 있나?'
실로 충격이었다. 그때 나는 배신감, 혼란,

그리고 묘하게도 죄책감까지 뒤섞여 있었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내가 너무 많이 함께해 준 게 잘못이었을까. 아니면 결혼을 하겠다는 내 선택이 이기적인 걸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나는 깨달았다. 10여 년간의 끈끈함이 단순한 우정이 아니라, 내가 곁에 있어주는 것을 기반으로 한 병적인 의존이었음을. 그녀에게 나는 세상과의 안정적인 연결고리이자, 자신을 지탱해 주는 필수적인 존재였다.

나의 결혼은 그녀의 삶을 지탱하던 시스템을 파괴하는 행위였던 것이다.

결혼식 사진 속 그녀의 부재는 그 충격적인 단절을 말해주었다. 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함께 있어주었지만, 그녀는 그 우정 위에 자신의 안정감을 구축했고, 내가 내 삶을 찾아 떠났을 때 그 관계를 우정으로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30년 만의 재회와 '뒤틀린 목적'의 반복

오랜 세월이 흘러,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착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고, 두 아들을 낳고 행복하게 산다는 소식을 전했다. 진심으로 반가웠다. 마음 한구석에 묵혀두었던 염려가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 반가움은 잠시였다.
안부 인사 끝에 덧붙여진 자신이 다니는 종교 단체의 행사 참여 요청. 30년 만에, 진정한 관계 회복이나 안부가 아닌, 자신의 종교 활동을 위한 목적으로 다시 나를 찾았다는 사실은 나에게 깊은 불편함을 안겼다.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했지만,
며칠을 전화로 부탁해 왔다.

그제야 나는 확신했다. 우리의 관계는 결국 뒤틀린 우정이었음을. 과거 그녀는 내가 곁에 있어주는 것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응답했고, 현재 그녀는 나의 참여를 얻기 위해 30년 만의 연락이라는 감정적 수단을 사용했다.

그녀도 나름대로는 진심으로 감사했을 것이다. 의존이 병적으로 변한 것도 그녀가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이해한다 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녀에게 나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무언가를 채워줄 수 있는 존재였다는 것. 내가 그녀를 순수한 마음으로 대했더라도, 그녀의 행동은 그 관계를 뒤틀린 방식으로 규정하고 있었다는 것.



10여 년간 함께했던 시간들이 주는 무게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친구의 번호를 스팸으로 분류했다. 30년 만에 다시 찾아온 뒤틀린 유대감을, 나는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공포스러운 유대


'뒤틀린 방식의 유대감'은

가장 인간적인 곳에 있었다.
우리가 함께했던 그 모든 시간들은

서로에게 아름다운 추억이었지만,

그 기저에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 상대방을 소유하려는 근원적인 뒤틀림이 존재했다.

물론 이것은 추측일 뿐이다. 정의되지 않은 것을 내 방식대로 결론짓는 것이니까.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이럴 수도 있구나"라는 섬뜩함을 안겨주는, 가장 현실적이고 공포스러운 인간관계의 민낯이 아닐까 하는

나름대로의 해석을 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사라지는 것들의 품격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