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

by 이작가야


​커피잔을 들어 올리는 손끝에 햇살이 스친다. 유리창 너머로 들어온 오후의 빛.

그 빛이 손등 위에서 한 호흡쯤 머물다 사라진다. 나는 그 순간을 보았다. 보았다고 말하기도 민망할 만큼 짧은, 그러나 분명히 존재했던 시간. 찰나.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스쳐 보내며 살까. 지나가는 사람의 옆얼굴, 신호등 앞에서 들리는 누군가의 웃음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그림자. 붙잡을 수 없어서, 다시 올 수 없어서, 우리는 그것들을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낸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하루는 그 '별것 아닌' 순간들로 가득하다. 작업실에 혼자 앉아 있을 때, 문득 떠오른 멜로디 한 소절.

​그것은 어디서 온 걸까. 며칠 전 들었던 빗소리였을까, 아니면 아침에 스친 누군가의 목소리였을까.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순간

내 안에 무언가 스며들었다는 것만은 안다.




산책을 하다 마주친 길고양이가 나를 한 번 보고 재빠르게 돌아선다. 그 눈빛. 경계와 호기심 사이 어딘가에 있던 그 눈빛을 나는 기억한다.

왜 기억하는지 모른다. 그저 기억할 뿐이다.

찰나는 그렇게 쌓인다.


​어떤 날은 생각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언제였을까. 무대에 처음 섰던 날?

첫 앨범 발매일이 정해지고 손꼽아 기다리던 날?

아니면 누군가를 기다리며 설레던

어느 카페의 오후?

문득 생각한다. 중요한 순간이란 건 어쩌면 없는지도 모른다고.

다만 수많은 작은 순간들이 있을 뿐이라고.




​새벽 네 시, 작업이 끝나고 창밖을 본다. 하늘이 조금씩 밝아온다. 어둠과 빛의 경계. 그 경계에서 세상은 고요하다. 이 고요함도 찰나다.

몇 시간 뒤면 출근길 차들이 소란스럽게 거리를 채우고, 세상은 다시 분주해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이 숨을 고르는 순간일 것이다.




​그대도 그런 순간이 있는가. 별것 아닌데 자꾸 떠오르는 장면.

이유 없이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억.

왜 그때 그 순간을 기억하는지 설명할 수 없지만, 그것이 그대를 그대이게 만든 것 같은 느낌.


​우리는 큰 사건들로 인생을 정의하려 한다.

성공의 순간, 실패의 순간, 전환점이 되었던 결정들. 하지만 사실 우리를 만드는 건

그 사이사이에 있던 수많은 찰나가 아닐까.

스쳐 간 줄만 알았던 것들이 실은 우리 안에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우리를 만든 것은 아닐까.




​손등 위를 스친 햇살처럼, 바람에 날려간 꽃잎처럼. 그렇게 가벼운 것들이 쌓여서 우리의 무게가 된다. 찬찬히 돌아보면 알 수 있다. 그대의 인생은 그대가 스쳐 보낸 모든 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순간들은 결코 작지 않았다는 것을.

​그러니 오늘 스치는 것들을 조금만 더 자세히 보아주길. 그것이 그대의 내일을 만들 테니까. 찰나는 그렇게, 영원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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