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지우개

by 한층

오늘 책상 위에서 오래된 지우개를 발견했다. 모서리는 둥글게 닳아 있었고, 곳곳에는 작은 연필 자국이 묻어 있었다. 한때는 날카롭게 글자를 지우던 지우개였지만, 이제는 수많은 순간을 지워낸 흔적만 남아 있었다.

지우개를 손에 쥐고 잠시 바라보았다. 나는 그 안에 쌓인 시간을 상상했다. 실수한 글씨, 다급하게 적은 메모, 그리고 조심스레 고친 문장들. 모두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지우개에 스며들어 있었다. 사라진 것은 종이에 남아 있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은 기억이 지우개 속에 담겨 있는 듯했다.


삶도 지우개와 비슷한 것 같다. 우리는 매일 실수를 하고, 후회와 아쉬움을 지우고 싶어 하지만, 흔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 한켠에 남아, 조용히 오늘의 나와 연결된다. 지우개처럼 보이지 않지만, 우리 안에는 사라진 순간들이 여전히 쌓여 있다.


나는 오늘 지우개를 바라보며 작은 위로를 받았다. 아무리 사소하고 흔적 없는 순간이라도, 그것이 지나간 자리에는 시간과 마음이 남아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흔적을 통해 우리는 조금 더 성장하고,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지우개를 다시 책상 위에 놓으며 생각했다. 오늘 하루, 나는 무엇을 지우고 무엇을 남겼을까. 지우개가 남긴 흔적처럼, 우리의 삶도 사라진 순간 속에서 작은 이야기를 품고 있음을 깨닫는다. 사라진 듯 보이는 것들 속에서도 삶은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오늘, 나는 오래된 지우개 덕분에 지나간 시간의 소중함과 사소한 흔적의 의미를 다시 느꼈다. 사라진 것들 속에서도 마음과 기억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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